[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한자는 조선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에서도 사용되는 것에 비해 한글은 조선만의 글자이며 조선인만 소통할 수 있는 글자였다. 그러다 보니 한글은 조선의 비밀을 담는 글자로도 사용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1539년(중종 34년), 역관 주양우가 중국 북경에서 중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중에 그 사실이 밝혀져 주양우는 나라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목으로 추국을 받았다. Preventing the Spread of Hangeul in China While Chinese characters were used in China, Japan, and Korea, Hangeul was unique to Korea and could only be used by Koreans for communication. Because of this, Hangeul was also used to encode Korea’s secrets. In 1539 (the 34th year of King Jungjong’s reign), an incident occurred where a Korean interpreter named Ju Yangwoo taug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527년(중종 22년), 당대 으뜸 학자인 최세진이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를 펴냈다. 《훈몽자회》에는 3,360자의 한자가 실려 있는데, 그 한자의 뜻과 음을 한글로 달았다. 그리고 이 책 시작 부분에는 ‘훈몽자회인’과 ‘범례’가 실려 있는데, ‘범례’ 끝부분에 ‘언문자모’라 하여, 그 당시 한글 체계와 용법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당시 사대부들은 어려운 한자를 익히느라 애를 많이 써야 했다. 하지만 《훈몽자회》 덕분에 사대부들은 혼자서도 한자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한글은 한자 교육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Publishing Hunmongjahoe, a Guide to Explaining Hanja in Hangeul In 1527 (the 22nd year of King Jungjong’s reign), Choi Sejin, one of the greatest scholars of the time, published Hunmongjahoe, a textbook for learning Hanja. The book contains 3,360 Hanja characters, with their meanings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506년(연산 12년) 연산군은 양반과 천민을 구분 짓지 않고 여성 인재를 모집했다. 집권 초기 연산군은 한글을 사랑했지만, 자신을 비방하는 한글 벽보를 보게 되면서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백성들뿐 아니라 연산군 자신도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기 말을 백성들에게 쉽게 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로부터 일 년 뒤 연산군은 각 관청에 양반과 천민을 구분하지 않고 한글을 아는 여성을 뽑으라는 교지를 내리며 다시 한글 사용을 허락했다. 가부장적인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던 조선시대에 한글을 아는 여성을 나라의 인재로 뽑은 것은 굉장히 혁신적인 일이며, 한글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사건이다. Selecting Women Who Know Hangeul as National Talents In 1506 (the 12th year of King Yeonsan’s reign), King Yeonsangun made an unprecedented move by recruiting women as national talents, regardless of their social status, be it yangban (a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