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발행인] 우리 신문은 어제 “익산 미륵사지 석탑, 정비 끝내 완전한 모습 공개”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일제강점기에 덧씌운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9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해체ㆍ수리하기로 결정되었다.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1년부터 본격적인 석탑의 해체조사에 착수하였고, 무려 19년의 대공사 끝에 복원을 마치고 공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가운 기사 뒤엔 감사원이 미륵사지 석탑 복원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해 언론이 이 문제로 한창 시끄럽다. 어제 오늘 올라온 기사들의 제목을 보면 “20년간 복원한 미륵사지 석탑 ‘원형과 다르다’”, “230억 든 미륵사지 석탑 주먹구구 복원… 감사원 ‘설계와 달라’”, “일관성 없이 보수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원형과 달리 땜질 복원된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등으로 꾸지람 일색이다. 물론 엄청난 예산을 들여 중요한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을 원칙대로 하지 않고 대충했다면 당연히 꾸지람을 들어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한 진단은 물론
[우리문화신문=고명주 작가] 모르고 틈만 있으면 기어코 기어나오는 너 누군 잡초라 무시하고 밟고 가겠지 너에게도 소중한 세상이 있는 줄 모르고 밟혀도 뽑혀도 그래도 죽지 않는 너 누군 고생만 시키는 몹쓸 거라 하겠지 너에게도 피워야만 하는 삶 있는 줄 모르고 모진 추위 지나가고 또다시 만나게 될 너 누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손사래 치겠지 너에게는 너를 보고 싶어 다시 피는 줄도 모르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연말 일이 있어 교토에 갔을 때 우에노 미야코 시인으로부터 책한 권을 받았다. 《한우를 사랑해요》라는 한글 제목의 책이었다. ‘한우를 사랑한다고?, 뭐하려고?, 먹으려고?’라는 궁금증에 돌아오자마자 책장을 넘겼다. 지은이는 농업 평론가이자 축산 학자인 마쓰마루 시마조(1907 ~ 1973) 씨로 도쿄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 축산과장을 역임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귀가 솔깃했다. 경력으로로 보아 한국의 한우를 잘 아는 인물이다 싶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자니 짐작대로 마쓰마루 씨는 ‘한우의 매력에 빠진 사람’ 이었다. “‘우리 고장에는 시커멓고 키 작은 소가 많아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지방에서는 ‘이전에는 시커먼 소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 누렁소만 길러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소는 꺼먼 소로 와규(和牛)라고 하지만 한국소는 누렁소로 한우라고 한다. 지금 일본에 있는 누렁소는 한국에서 건너온 소로 한우는 우수한 소질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소인데 일본인들이 잘 알지 못해 주어진 보물을 몰라보고 무심하게 지내왔다. 목축학자로서 풍부한 소질을 가진 한우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일본의 소년소녀들 그리고 모든 일본인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그것이 왜? 무슨 연유로? 하는 데까지는 아직 도달하지는 못하였지만 영상은 일부러 장형을 선택하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강지평의 논리는 결론을 추이하지 못하였으니 다만 의심이요 추측에 불과한 것일세.” “하오나, 당시 어전에서의 기록은 사관들과 상감마마를 비롯한 내관의 입을 통하여 확인하였습니다. 그들의 증언 역시 평소의 영상과는 확연히 구분되어질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하여 이다.” 서애 유성룡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두명은 조선의 임금이 도발적이면서도 영민하고, 교활하면서도 애틋한 선조가 낙점한 인물이란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강두명. 그는 아마도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을 향해 도전하고 있으리라. 어쩌면 그의 입을 통해 발설되는 모든 말들은 선조의 의중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명나라 사신들의 무례한 행동을 오랜 기간 인내하고 또 인내 했다가 감정이 폭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 “물론입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안이옵니다. 그러나 구태여 자진해서 의금부의 형틀에 묶으라는 요청은 하지 않으셔도 될 법 하였습니다. 영상의 그런 행위는 상감마마의 의중을 저울질 하려는 계산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가로등과 초승달 텅 빈 목로에 생맥주 두 잔을 나란히 놓고 마주 앉는다. 오늘도 공쳤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낮에 막벌이노동이라도 해야 하나 다 때려 치고 시골집으로 들어가야 하나 식당설거지알바라도 나갈까요? 편의점은 너무 짜고, 파출부가 낫겠어요. 못나서 면목이 없네요. 그게 뭐 당신 탓인가요. 내일부터 생활정보지 뒤져봅시다. 그래요, 어떻게든 살아봅시다. 뒤따라 나서는 임차료와 공과금, 대출금 이자를 억지로 밀어 넣고 방화 문을 잠근다. 고생 많았어요. 당신도 애썼어요. 오른손엔 장갑 왼손엔 아내 손 연리지의 우리말이 뭘까요? “잇나무”라 하던데요. 우리의 그림자도 화석으로 남을까요? 그럴걸요, 우리의 이야기도. 왼손엔 장갑 오른손엔 남편 손 우리가 묻힐 이팝나무도 환생을 하고 새가 죽으면 노래가 되나요? 별이 내려와 샘물이 되고 어린 바위가 자라서 믿음이 되나요? 진실의 씨앗이 있나요, 싹 틔울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세상을 진실의 숲으로 덮을 수 있을 까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가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한 자에게만 복이 오게 할 수 있을까요? 등 뒤엔 가로등 하늘엔 초승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올해는 3.1만세운동 100돌이 되는 해다. 그래서 온 나라는 곳곳에서 기념행사에 여념이 없다. 여기에 은행들도 동참하느라 신문광고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신한은행은 유관순 열사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를 여러 번 하고 있다. 3.1만세운동의 대표적 애국지사인 유관순 열사를 앞에 내세우는 것이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는 그렇게 드높이고 나머지 여성독립운동가 431명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이런 현상은 개탄해야 할 일이 아닌가? 10년에 걸쳐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책 《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을 완간하고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이윤옥 시인은 말한다. “그동안 유관순 한 분을 알려왔다면 이제 앞으로 100년은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는 다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기생의 몸으로 만세운동을 이끈 김향화, 임신부임에도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핏덩이 안고 당당히 광복군에서 항일투쟁을 한 유순희, ‘안사람 의병가’를 만든 여자의병대장 윤희순,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의 주인공 동풍신 애국지사도독립투사로 이름을 불러주고 드높여야만 한다.” 그렇다. 유관순 열사도
[우리문화신문=고명주 작가] 연길 새벽시장 빙관* 앞 새벽시장 난 그 새벽시장이 참 좋다. 아침마다 들려 또우짱*과 요우티아오* 먹으며 각지에서 키운 먹거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저 먹거리, 팔거리 속에 수많은 사연이 차고 넘치리 자두 하나 달걀 한 줄 참외 송이버섯……. 오고가는 사람들 아침거리 준비하러 온 암씨들 한 손에 또 한 손에 두둑이 들고 걸어간다. 자식들 아침거리 준비해서 오손도손 먹을 생각하며 걸어들 간다. 사고파는 삶의 흥정 소리가 신선한 아침공기와 만나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누가 오라하지 않았어도 그저 있으면 좋은 새벽시장 그 삶을 통해 아이들 키우고 내일도 이곳에 와서 새벽시장을 준비하겠지. 들어오다 좋아하는 참외를 한 근 샀다. 덤까지 받은 자두 저것이 나에게 오기까지 수없는 땀으로 범벅되었을……. 그 수고스러움을 한 움큼 들고 새벽시장을 나온다. - 2018년 8월 연길 * 빙관(宾馆) : 호텔 * 또우짱(豆浆) : 중국의 콩국(두유) * 요우티아오우짱(油条) : 기름에 튀긴 꽈배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신문에는 한 유명 예술가의 글씨가 올랐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글씨들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가운데에는 읽기도 어려운 커다란 한자로 쓴 글씨와 낙관이 있습니다. 주변에 쓴 한글은 한자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말입니다. 과연 그는 이렇게 쓰고 독자와 진정 소통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게다가 한글로 쓴 것들도 “지지마라. 비참하다”거나 “자선은 반체제적이다”거나 “경쟁과 차별의 뜨거운 채찍”이라고 써서 도대체 뭘 말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너희는 몰라도 된다. 나만 잘 났으면 된다.”라고 외치는 어쭙잖은 덜 떨어진 지식인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예전 이탈리아에서는 지배층들이 라틴어만 쓰면서 잘난 체를 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문학가 단테는 <토박이말을 드높임>이라는 논설을 써서 귀족들에게 돌리고, 이탈리아말로 위대한 서사시 <신곡>을 지어 발표한 뒤로는 라틴어가 아닌 쉬운 이탈리아말로도 얼마든지 시도 짓고 학문도 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이탈리아가 이탈리아말 세상이 되었지요. 그리고 라틴어를 배우고 쓰지 않는다 해도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자네 아래는 감찰(監察)이 있지 않은가. 정 6품의.” “그들과 지평, 정 4품의 장령(掌令) 등은 전부가 비슷한 처지이옵니다.” 강두명은 미꾸라지 마냥 요리조리 노련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서애 유성룡은 강두명의 요사한 행위에 더 이상 현혹당하기가 싫었다. “그만 돌아가 주게. 장형을 당한 상처 부위가 아직도 쑤셔서 쑥뜸을 좀 피워야 하겠으니까.” 강두명은 약간 말투를 바꾸었다. “대감은 쑥으로 뜸을 뜨면서 요상을 하고 계시지만 명나라 사신 사헌 병부주사는 행방을 모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역시 그것이었구나.’ 유성룡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정면으로 그 이야기를 듣게 되자 입장이 거북하였다. 사헌의 실종에 대해서 유성룡은 직접적 관여는 없었으나 간접적으로는 관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세상이 영상을 의심하고 있으나 소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헌의 실종에 이 사람이 관여 됐다고?” “그렇습니다. 대감이, 조선의 영상이 명나라 사신에게 장형을 당하였으니 이 무슨 해괴한 사단이란 말입니까? 그 명나라 사신이 사라진 것은 그 직후 발생한 것이니 의당 대감에게 혐의를 둘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네는 날 의
[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신한카드가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신한카드는 광고로 우리말 헤살(훼손)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신경 쓸 日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물론 신한카드의 의도야 ‘일’이란 우리말을 써서 ‘무엇을 만들거나 이루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는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썼을 것이지만 거기에 날 ‘日(일)’이란 한자를 쓰는 어이없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맨 아래를 보니 ‘신한카드’라는 자신들의 이름 앞에 ‘Lead by’라는 영어를 써서 자기네가 카드업계를 이끄는 것처럼 보이려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앞장서서 우리말 헤살하는 이끔이(지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제강점기 지식인 특히 일부의 문인들은 “부락((部落)“이란 말이 뭔지도 모르고 동인 이름에도 같다 붙이는 바람에 대중들은 그것이 좋은 말인 줄 알고 따라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락((部落)“은 일본에서 천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락”이란 말을 함부로 썼던 지식인들은 결국 우리말을 헤살하는데 앞장 선 꼴이 되었지요. 이제 신한카드도 그 꼴이 되려고 하는지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