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연말에 지인으로부터 《임정로드 4000㎞》(김종훈ㆍ김혜주ㆍ정교진ㆍ최한솔 지음, 필로소픽) 책 한권을 선물 받았다. 부제로는 ‘대한민국 100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투어 가이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일제강점기 이웃 중국에서 ‘광복’을 찾기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피나는 노정을 따라나선 답사기록이다. 이 책을 받아들자 문득, 9년 전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서 우리들이란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적지 답사단’을 뜻한다. 그때 우리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 27년의 노정을 상징하는 27명의 답사단을 꾸려 《임정로드 4000㎞》를 샅샅이 밟아본 적이 있다. 그리고 돌아와 《김구 따라잡기》(대한민국임시정부사적지 답사단 지음, 옹기장이, 2012)라는 책을 냈다. 그 책의 머리말을 쓴 사람은 필자였다. 중국의 현지답사 책, 9년의 시차를 두고 손에 받아 든 《임정로드 4000㎞》 첫 장을 펴면서 필자는 많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우리가 9년 전에 임정로드(임시정부 피난 길)를 떠나기로 했던 것은 국치 100년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씻을 수 없는 치욕의 1910년은 한일강제병합의 해였고 2010년은 국치(國恥) 100년
[우리문화신문=고명주 작가] 2019 기해년은 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 100돌이 되는 해다. 그 뜻깊은 해를 기리기 위해 범국가적 시민적 차원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소중한 해를 코 앞에 둔 무술년( 2018년) 끝자리에서 순국선열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역사 기행에서보고 느낀 사실을 되돌아보고새로운 3.1운동 100돌을 맞았으면 하는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대자연으로 대표되는 들꽃 한 송이 들고 순국선열의 희생을 기리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광복절이 되면 뜻깊은 행사를 계획하고 실행해왔다. 2015년 광복 70돌에는 서울 서대문 독립관에서 <순국선열추모문화전>, 이듬해인 2016년에는 길림성 길림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의열단의 흔적을 찾으며 <태극기 전시회>를 통해 태극기의 소중함도 느껴보았다. 광복 72돌을 맞이한 2017년에는 배낭 하나 둘러메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떠났다. 2017년 8월 11일 늦은 밤, 인천에서 대련으로 출발하여12일 오전에 그 옛날 수많은 독립군이 타고 갔을 만주벌판을 가로 지르는 기차를 타고 길림성 길림에 도착했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과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예지낭자는 충분히 자격이 있소.” 어떤 자격을 말하는 것일까? 이제는 광해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광해군의 심기(心機) 역시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미로(迷路)요 미궁(迷宮)이었다. 광해군이 갑자기 장예지의 귀에 대고 다시 속삭였다. “부디 날 도와주오. 예지낭자! 나의 조선을 내 손으로 통치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떠나지 말아주시오.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난 조선을 지켜 낼 것이요. 조선을 감히 넘보는 세력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요!” 광해군이 진심을 토해냈다. 그의 미끈한 콧날이 장예지의 머리카락에 닿을 듯 가깝게 접근했다.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부왕이 내게 은밀히 고백했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난 왕의 비열한 권력과 혹독한 집념, 빌어먹을 체통과 슬픔, 야속함 따위를 모두 용서해 주고 말았소. 그리고 겨우 깨달았지. 임금은 결국은 나의 임금이었고, 아버지란 사실을.” 광해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져 바싹 밀착하고 있던 장예지의 가슴골을 타고 흘러들었다. 장예지는 그저 아득함만을 느끼고 있었다. 바다의 바람보다도 더욱 거친 바람이 그녀의 육신을 진저리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지병목)에 재직 중인 김성도 기술서기관이 조선 선조 때 창궁(創宮)되어 대한제국의 황궁이 된 경운궁(현재 덕수궁)의 역사를 소개한 도서 《경운궁 이야기》를 펴냈다. 경운궁은 덕수궁의 원래 이름으로, 1593년에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든 궁궐이 불탄 뒤 왕실 생활공간으로 새롭게 창궁하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1611년에 조선 광해 연간에 경운궁이라 부르면서 1907년까지 약 300년 가까이 쓰였던 이름이다. 책 《경운궁 이야기》는 고종 임금이 조선의 상징적 법궁으로서 왕권 확립을 위해 중건한 경복궁 대신에 경운궁을 주목할 수밖에 없게 만든 나라안팎 상황과 서구적 근대화를 적극 추진하였던 경운궁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였는지를 담았다. 그리고 황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여건과 전통 방식의 궁궐 속에 들어서서 황궁의 권위를 뒷받침한 서양 건축물의 면모는 어떠하였는지 등 다양한 내용을 분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한, 책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며 일본에 의해 자행된 역사 왜곡 실상을 알 수 있게 조선총독부 편찬과장 오다쇼오고(小田省吾)가 쓴 《덕수궁사》를 중심으로 경운궁이 어떻
[우리문화신문=김영환 교수] 이 글은 <디지털 타임스>2018. 8.30)에 실린 위행복(한국인문학총연합회장) 님의 ‘한자를 중국식으로 읽는 事大’에 대한 반론이다. 위행복 님은 이 글에서 중국의 땅이름을 전래의 한자음으로 읽자고 주장했다. ‘北京’은 ‘베이징’이 아닌 ‘북경’으로 읽어야 주체적이라 여긴다. ‘베이징’식 읽기는 소통과 정보 전달을 방해하며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여긴다.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돼 왔고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글이 많다. 우리말글에 대해 살뜰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온 북한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듯하다. 2011년 8월부터 중국 현지음 중심으로 바꾸었다가, 1년 만에 다시 재래식 한자음으로 읽기로 되돌아갔다는 보도가 있었다.(<서울신문> 2012. 9. 14) 위행복 님의 글을 계기로 이 문제를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이름이 국경을 넘어갈 때, 현지에서 내는 소리를 한글로 표기하면서 사용하기 마련이다.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로마자를 기록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읽을 때는 현지음을 자국의 소리 조직에 맞추어 읽는다. 'Paris'를 미국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광해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그래서 난 이순신 장군이 너무 부러워.” 장예지는 정곡을 찔렀다. “그래서 정도령을 취하시려는 겁니까?” “그대의 눈에도 그리 비춘 것인가?” “정도령을 바라보는 저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이다.” 광해군이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그럼 된 것이야. 그대가 짐작할 정도라면 정도령은 분명 느꼈을 것이지.” 장예지는 광해군의 곁으로 다가가면서 시선은 수평선을 향하였다. 환상적인 물빛이 햇살에 찰랑거렸다. 몽상에 빠질 만큼 아름다운 바다에 전율이 일어났다. “아름다워요.” 광해군의 눈길이 그녀를 따라서 바다의 끝을 향하였다. “예지만큼.” 장예지는 엄습하는 불안감에 눈동자를 먼 바다 위로 고정 시켰다. “바다가 이렇게 어여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예지낭자에게 잠재되어 있는 예쁨을 나도 늦게 발견하였지.” 장예지는 순간 마음을 가다듬었다. 더 이상 물러나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허용해서는 위험하다. 여기서 제지해야 하는 것이다. “저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소녀는 한때 저하를 모시던 장수의......” “알고 있어. 용호장군 김덕령의 정혼자였다는 것은 충분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이 책은 70세가 되는 생일부터 30일 안에 죽어야 한다는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저출산 고령화, 그로 인한 국가의 생산성 저하와 부채 증가, 여전한 취업난까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 낸다. 책 속 도요코 가족은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면면이 보여 준다. 거동이 어려운 시어머니를 13년째 수발하고 있는 도요코. 조기 퇴직 후 자신의 인생을 찾는다며 아내를 외면하고 여행을 떠나는 남편 시즈오. 도와달라는 엄마의 요청을 거절하고 집을 떠난 딸 모모카. 재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집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아들 마사키.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한 도요코는 가족들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끝내 집을 떠나기에 이른다. 가족들은 떠난 도요코의 일을 자신들이 떠맡게 되고 나서야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정부가 70세 사망법안이라는 극단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하자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처럼. ‘젊음은 알지 못한 것을 탄식하고, 나이는 하지 못한 것을 탄식한다’는 말이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그러자 서아지가 정도령과 이순신에게 간청했다. “소생을 선두에 세워 주십시오. 본래 친구 김충선이 선봉장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 부재중이오니 이놈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김충선 외에는 소생이 가장 일본을 잘 알고 있나이다.” 정도령의 시선이 이순신에게 향하였다. “통제사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반대할 이유는 없네.” 서아지가 기뻐하면서 무릎을 털썩 꿇었다. “죽기를 각오하겠나이다.” 이순신이 부관에게 명령했다. “전 함대는 가덕도를 우회하여 일본 본토로 출항한다. 이제 지난 6년 동안의 패배를 일거에 만회할 기회가 도달하였다. 전 함대 전 속력으로 출동!” “함대 출동!”“전 속력으로 이동한다.” 이순신의 장군선을 선두로 하여 원균의 대장선과 안위의 전위선, 김완의 후위선, 첨사 이순신의 중위선과 송희립의 돌격선 등 13척의 판옥선이 일렬종대를 형성하며 따랐다. 출렁이는 파도 위의 아름다운 햇빛물살을 가르며 순항하는 이순신 함대의 위용은 장관이었다. ‘일본의 본토를 습격한다!‘ ‘그래, 이런 기분이다, 이런 맛이야!’ 광해군 이혼은 새삼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궁전(東宮殿)을 박차고 나온 보람이 있었다. 지난 6년 동안일본에게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소백산맥의 끝자락을 장식한 월출산 아래 월출산온천은 물 좋기로 소문났다. 약알칼리성 식염천으로 ‘맥반석 온천수’라 불리는데, 신체에 부담이 적고 피로 회복 효과가 탁월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수중 안마 장치가 부착된 매그넘탕에서 기포 마사지를 받으며 뭉친 어깨 근육이나 관절을 부드럽게 풀 수 있다. 온천과 함께 건강을 위한 영암의 대표 음식이 갈낙탕이다. ‘산 낙지 한 마리에 지쳐 쓰러진 소도 벌떡 일어난다’는 말처럼 낙지는 기력을 회복하는 데 최고의 보양식이다. 독천 낙지마을 30여 개 낙지 전문점에서는 펄펄 끓인 갈비 국물에 산 낙지를 살짝 끓여 내는 갈낙탕을 비롯해 연포탕, 낙지구이, 낙지초무침 등 다양한 낙지 음식을 선보인다. 월출산 자락에 영암구림마을, 왕인박사유적지, 도갑사 등 이름난 여행지도 많아 보는 즐거움까지 주는 오감 만족 여행지다. 문의 : 영암군청 공보팀 061)470-2316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11월 17일 토요일 낮 1시 반, 일본 오사카 시내에 있는 유서 깊은 오사카중앙공회당(大阪中央公会堂, 국가지정문화재) 지하 어웨이크 레스토랑에서는 아주 특별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 건물은 1918년에 준공되어 올해 100년을 맞이하는 오사카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이 유서 깊은 건물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출판기념회를 가져 더욱 뜻 깊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올해 나이 85살의 아베 다케시(阿部建) 씨가 일제강점기 조선을 무대로 쓴 소설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 펴냄을 기리기 위한 자리였다. 기자도 이날 초대를 받았지만 서울에서 순국선열의 날 행사가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 기자를 위해 아베 다케시 씨는 신간 《중천의 반달(中天の半月)》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기자와 아베 다케시(85살) 씨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베 다케시 씨는 2016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4박 5일 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를 짚은 8순 노인인 그가 한국을 찾은 까닭은 그의 가족사와 관련된 소설을 쓰는 도중 자료 수집차 방한한 것이었는데 그때 기자는 평안북도 《박천군지(博川郡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