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KBS 임병걸 해설위원이 KBS 아침뉴스에서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라는 마당을 진행하였지요. 시인이기도 한 임 위원이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경제 이야기를 시와 접목하여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곤 했는데, 이제 그렇게 풀어낸 이야기가 같은 이름의 책으로 묶여서 우리에게 선을 보였습니다. 임시인이 친필로 사인하여 직접 저에게 손으로 건네 준 책을 펼쳐듭니다. ‘전월세 오디세이아, 지상의 방 한 칸을 찾아서’, ‘비정규직, 그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에’, ‘가난, 벗어던져야 하는 숙명의 굴레’... 글의 제목만 보아도 임 시인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민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임시인은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와 경제, 얼핏 생각하면 전혀 무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분야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인 하면.....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고 인간의 삶이 행복과 기쁨으로 점철된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 몽상가로 취급되기 일쑵니다...... 반면 경제는 이런 낭만과는 거리가 먼 냉정하고 이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아무 말 않기 춥다 추분이 지났다지만 비가 온다지만 진동모드 전화기처럼 온 몸이 떨린다 냄새, 치석이 앉도록 똥내가 난다 창자를 지나 똥끝까지 타나보다 아직도 못다 태운 그리움이 이리도 많았던가 그랬었구나 내 물음에 대답이 없었던 게 내게 물음이 없었던 게 같이 있어도 쓰리다는 건 말을 섞을수록 공허하다는 건 알고 있었었구나 우리의 이해구조가 다르다는 걸 나는 “사랑”을 “불”이라 쓰고 “남김없이 붓는 것”이라 읽으면 자신은 “얼음”이라 쓰고 “조금씩 붓는 것”이라 읽는다는 걸 이젠 정말, 아무 말 않기 원망도 말기 자책도 말기 기다리지도 않기 그냥 그런 거 계절 하나가 지나간다는 거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국민권익위원회가 신문광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청렴韓 거름망”이라네요. 한자를 써서 이상한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 뜻이야 모를 리 없지만 청렴한 대한민국이라면 굳이 거름망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억지로 한글 대신 한자를 붙이면 멋지나요? 국어기본법 제14조 제1호에 보면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고도 물론 공문서의 하나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한자를 쓰려면 괄호 안에 써야 하며, 이 경우는 한자를 쓰는 것이 맞지 않는 것이므로 써서는 안 됩니다. 국가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가 스스로 법 규정도 지키지 않으면서 무슨 국민 권익을 지킨다고 하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할 때 최현배 선생은 한 방명록에 “한글이 목숨”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지켜온 우리말인데 국가기관이 앞서서 우리말을 더럽히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내 판꽂이엔 아직도 겨울비 내리는 밤이었지 취객들의 잡담과 웃음소리에 스피커는 금새 병약해져 그녀가 들어올 즈음엔 아예 앓는 소리가 났지 가게가 터져나갈 만큼 취기가 부풀어 올랐을 때였지 저 많은 엘피와 주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음향이 왜 이 모양이냐고 따지는 그녀 앞에 연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 입안의 새 하얀 차돌만은 침침한 조명 아래서도 반짝이고 있었지 턴테이블이 돌고 술잔이 돌고 노래도 바뀌고 술병도 바뀌고 다음에 비오는 날 올 테니 들려 달라며 그녀는 노래 한 곡을 신청하고는 또 하얀 차돌을 내보이며 밤안개에 스미었지 베르테르 신드롬을 재현 했다는 노래 니힐리즘 최고의 걸작이라는 노래 비 내리는 날이면 그 노래를 들으며 몇 장의 달력이 찢길 때까지 그녀를 기다렸지 우리의 그리움이 임계치에 이른 여름 어느 날 비등점을 넘은 물처럼 그녀는 내게 달려왔지 그 때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어 음악으로 셀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웠지 낙엽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가수의 노래와 불어로 시를 쓴다는 미국의 음유시인과 스물넷에 요절했다는 기타리스트, 존 슈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으로서는 약간의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러 곤장을 선택하셨단 말입니까?” “피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애대감이시라면 충분히. 하지만 그리 하지 않으신 내면의 이유를 말씀 올린 겁니다.” 김충선은 시선을 이순신에게 돌렸다. “소생은 서애대감을 방문하여 이번 사단(事端)의 진상을 파악하고 명나라 사신에게 조치를 하고자 하옵니다.” “단지 경고이더냐?” “사살할 것입니다.” 이순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자를 나 역시 잡아다가 처형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그래도 명나라 사신이 아니냐? 아직은 명나라와 대립이 어렵다.” “그래서 참고 기다리라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아직은.” 이순신의 결론에 대해서 김충선과 항왜들은 맥이 풀리는 표정들을 지었다. 그러나 정도령은 다른 견해를 이야기 했다.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사헌을 처단하소서.” 정도령에게서 이런 강력한 요구가 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기에 전원의 시선이 모아졌다. 정도령은 소용돌이치는 정국에 대해서 요점을 짚었다. “사헌을 죽이면 명나라는 흥분할 것입니다. 가장 곤란해지는 것은 조선입니다. 일본은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별로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 경향신문은 “추석선물 특집”이란 기사를 올렸다. 그러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마음만큼만 전하세요.”라고 한다. 여기서 아쉬운 것은 “한가위”라는 우리의 좋은 말이 있는데도 추석(秋夕)이라는 한자말을 쓴 것이다. 한술 더 떠 유한양행은 추석을 한자로 썼다. 물론 일동제약처럼 온전한 우리말 "한가위"라고 쓴 광고도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 아직 “한가위” 보다는 “추석”이 대세다. 특히 우리말 사랑에 앞장서야할 정부와 언론이 여전히 “추석”을 즐겨 쓰고 있으니 참 안타깝다. 추석이라는 말은 5세기 송나라 학자 배인의 《사기집해(史記集解)》에 나온 “추석월(秋夕月)”이란 말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추석월”의 뜻은 천자가 가을 저녁에 달에게 제사를 드린다는 뜻이었으니 우리의 명절과 잘 맞지 않는 말이고, 더구나 중국 사람들조차 이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에 견주면 “한가위”는 뜻과 유래가 분명한 우리 토박이말이다. “한가위”는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또 '가위'라는 말은 신라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바다사자의 하나입니다. 한 때 그런 강치가 독도에 넘실거려 조선시대에는 독도를 가지도 – 강치를 일명 가지라고도 하였지요– 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강치가 독도에 넘실거렸다? 독도에 강치가 넘실거렸다는 것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독도에 넘실거리던 그 강치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거야?”라며 고개를 갸우뚱 하시겠지요. 일본이 1905년 독도를 강제로 자기네 영토로 편입한 후, 일본 어부들이 독도의 강치를 무수히 학살하였습니다. 강치의 가죽이 돈이 되었거든요. 당시 강치 한 마리 값은 황소 열 마리 값에 필적하였다는군요. 1905년 이후 약 8년 동안 일본어부들이 학살하고 잡아간 강치는 무려 14,000여 마리나 된다고 합니다. 일본어부들은 강치가 줄어들자 강치를 확실히 잡기 위해 아기 강치를 먼저 잡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동작이 굼뜬 아기 강치를 먼저 잡으면 아기를 구하러 어미가 올 테고, 그럼 손쉽게 어미 강치까지 잡는 것이지요. 쪽바리 아니랄까봐 그런 비열한 방법까지 쓰다니... 일제 강점기 이렇게 독도의 강치를 잡아대니 결국 독도의 강치는 멸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목로(木壚)*에서 블루스 선율이 적막보다 무겁게 내려앉는 목로에서 아내에게 들려줄 음반을 고른다 손가락 끝에서 기타는 울고 덱스터 고든이 따르는 싱글몰트 한잔을 색소폰 그 농염의 숨소리로 마신다 나 일찍이 음악을 구법(求法)으로 여겨 때론 도반들과 밤새워 술병을 비우며 탐닉도 하고 텅 빈 음악실에서 헤드폰을 덮어 쓰고 마지막 한 음 까지 찾아내기도 하였으나 노을 비낀 산 아래선 탁발승처럼 늘 허기에 시달렸지 반생을 땡볕 내리쬐는 자갈밭을 헤매다 기적처럼 나와 닮은 아내를 만나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며 법(法)이 거기에 있음을 새삼 알았으니 우주의 한 귀퉁이 이 푸른 별은 가을밤에 잠기고 턴테이블은 돌고 *1 목로 : 선술집의 좁고 기다란 탁자 *2 덱스터 고든 : 재즈의 진정한 구도자로 알려진 미국의 색소폰 연주자 *3 싱글몰트 : 스카치위스키의 일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영어 광고에 목매단듯하던 롯데백화점이 오랜만에 한글광고를 냈습니다. 광고 제목은 “행복나눔 「추석」입니다. 맨 위에 ”Lovery Life“만 빼고는 모두 한글로만 썼습니다. 롯데백화점이 한글광고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칭찬하면서도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추석”은 중국에서도 잘 쓰지 않는 것으로 “천자가 가을 저녁에 달에게 제사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와는 맞지 않는 한자말 대신 우리말 “한가위”로 쓰는 게 훨씬 좋습니다. “한가위”는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8월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또 '가위'라는 말은 《삼국사기》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신라에서 유래한 아주 오래된 우리말입니다.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김충선이 목소리를 깔았다. “상감이 어떤 조짐을 느낀 것은 아닌지 해서요.” 원균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혹시 통제사와 영상을 의심하고 있다는 말이요?” “그것이 아니라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영상을 그 지경으로 방치한 것은 임금의 의도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한양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소생이 행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균은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임금이 의심을 품기 시작 했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파격적 국면으로 접어들 게 되는 것이다. 명량으로 인하여 조선의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백성의 신망이 이순신에게로 결집 되었으며 조선의 수군은 말할 것도 없고 육군 역시 사기가 충천하였다. 명나라의 시선도 확 달라져 있었고 일본은 치명적 타격을 당하여 인사불성(人事不省)에 초상집 분위기였다. “조선의 기운이 우리에게 오고 있소. 혁명의 시기가 도래하는 것이 분명하오. 하늘의 의중을 김장군이 살펴보고 오시구려.” “그리하겠습니다.” 김충선은 이순신과 정도령을 기다리지 않고 동료 항왜 서아지와 준사를 동반하여 그 길로 한양으로 출발하고자 준비했다. ‘사헌을 우선 잡아 죽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