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나라는 지금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은 “조류독감”이나 영어 약자 “AI”라고 쓰기도 합니다. 이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탓에 우리는 달걀을 사먹기가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이를 기사로 쓰면서 “이것 참, 卵감하구나”라고 씁니다. 경향신문은 우리말을 놀잇감의 재료로 쓰려고 한 것인지, 한자와 우리말의 이상한 합성어를 만듭니다. 경향신문은 예전에도 제목에 "대기업이 多 모셔간다."라고 억지로 한자말을 섞어 쓴 적이 있었는데 그에 더하여 “도로가 늘면 로드킬도 는다” 같이 영어도 쓰고, "북 2인자 황병서, 김정은 앞서가다 '깜놀‘"이라고 청소년들이 쓰는 지나친 줄임말도 쓰면서 우리말 헤살하기(해치기)에 앞장 선 듯합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진보 언론이라고 자처하면서 우리말 헤살하기를 밥 먹듯 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경향신문 편집인의 반성을 요구합니다.
[우리문화신문=심순기 기자] 대한민국에도 ‘개혁’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이 개혁을 부르짖고, 우리 민족이 잘 살아야 한다며 외치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매우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일이다. 혹자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개혁이 이루어졌고, 긍정적인 측면도 강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단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러한 주장이 올바를 수도 있지만 우리 민족의 1만년 스펙트럼 속에서 살펴보자면 우리 민족을 위하는 개혁은 실패한 것이 전부다. 역삼각형 한국사…권력집단이 역사왜곡 주범 대부분의 개혁은 일부 지역을 위주로 그 지역 인사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재력을 유지하기 위한 편법적 개혁이었다. 그로 인해 연암 박지원선생은 “우리 민족의 영토는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줄어들었다.”고 한탄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거꾸로 된 역삼각형 형태의 역사를 써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대하고 찬란한 역사에서 작고 슬프고 창피한 역사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발전이 아닌 퇴보의 길을 걷는 것이다. 4350년의 새해가 밝았다. 수탉의 고요를 깨는 함성은 새 시대의 희망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전 국민이 같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로 쓰일 때가 됐다.
[우리문화신문= 일본 사이타마 이윤옥 기자]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신사(神社) 경영이 어려워 아버지는 교사 직업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게 1975년 무렵입니다. 이후 아버지는 교직을 사직하고 궁사(司宮, 구우지) 일에만 전념하게 되지요. 여러분이 고마역(高麗驛, 고구려를 고마라고 발음)에 내렸을 때 광장에 빨간 장승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거기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쓴 것은 아버지의 글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쓴 글씨는 아닐 겁니다. 병환 중에 쓰신 글씨였거든요." 고마신사(高麗神社, 고마진자)의 제60대 궁사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 씨는 대담을 위해 찾아간 기자 일행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 장승에 새겨진 글씨가 아버님의 글씨라고요? 아이고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보고 올 것을 그랬네요" 일행은 고마역 광장에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글씨가 누구의 글씨인지 몰랐다. 15일(일) 오전 11시, 사이타마현 히다카시(埼玉県日高市)에 자리한 고마신사의 접견실에서는 기자를 포함한 한국인 4명과 일본 고려박물관 운영위원인 도다 미쓰코(戶田光子) 씨 등 일본이 3명이 1시간 가까이 궁사(宮司)와 환담 시간을 가졌다. 고마신사를
[우리문화신문= 이바라키현 이윤옥 기자] "아니 이 돌비석에 고구려 혜관스님의 이야기가 써있단 말입니까?" 어렵사리 찾은 이바라키현 근본사의 가미하라(上原) 주지스님 (일본에서는 주직(住職, 쥬쇼쿠))은 멀리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되레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는 또 한다는 말이, "본당(대웅전)이 원래 이 자리가 아니었는데 본당을 세우면서 이리로 옮긴 것입니다. 그때 이 돌비석의 유래를 몰라 그냥 버리려다 이곳에 옮겨 온 것이지요." 아뿔사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던가! 주지스님한테 절의 유래를 들으러 갔다가 되레 기자가 주지스님에게 절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럴려고 멀고먼 한국에서 이바라키현 가시마시(茨城県 鹿嶋市)까지 낯선 길을 물어물어 찾아왔나 싶어 다소 실망감이 느껴졌다. 어제 10일(화), 기자는 근본사(根本寺, 곤뽄지) 를 찾아가기 위해 이른 아침 도쿄역에서 고속버스를 탔다. 근본사가 자리한 가시마(鹿嶋 또는 鹿島)까지는 고속버스로 두어 시간 걸렸다. 가시마진궁역이 종점인 곳에 내려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 간신히 근본사에 도착한 기자는 인기척 없는 경내를 살피다가 본당 앞에 이끼 낀 돌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신문은 연이어 경향신문이 영어광고에 목멘다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지난달 26일의 “SEOUL CHRISTMAS –Festival 2016-” 광고와 1월 4일 “RENOIR” 광고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경향신문을 보고 참 흐뭇했습니다. “RENOIR” 광고가 한글 광고로 바뀐 것입니다. 물론 “RENOIR”과 “IMAGES OF WOMEN”라는 영어가 없어진 건 아니지만 영어는 작게 쓰고 “르누이르의 여인”이란 전시회 이름을 한글로 커다랗게 쓴 것입니다. 우리가 관공서와 언론사 등에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영어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한글로 먼저 크게 쓰고 영어로 토를 달듯이 해달라는 것이지요. 이제 경향신문이 제댜로 가는 듯하여 칭찬합니다.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원래 사진 촬영은 금지입니다만 한국에서 오신 기자를 위해 특별히 허용합니다. 하지만 유리문 밖에서 보셔야합니다." 어제 5일(목) 찾은 관세음신앙의 명소인 연화원 홍명사 (蓮華院弘明寺, 렌게인구묘지)의 미마츠간다이(美宋寬大) 부주지 스님은 기자를 본당(대웅전) 안쪽 깊숙이에 모셔져 있는 11면관세음보살상(줄여서 관세음상) 앞으로 안내했다. 높은 천정의 조명은 흐리지만 관세음상 앞에 켜둔 여러 개의 촛불이 서로 관세음상을 비추려는 듯 흔들거리며 밝기를 조절해주는 듯했다. 아! 이 불상이 1,300여 년 전 백제계 행기스님이 직접 만든 불상이라니 기자는 합장하여 예배했다. "행기스님이 만든 이 불상은 1도삼례(一刀三禮)로 만든 것입니다. 곧 칼집 한 번 내고 세 번 절하고, 칼집 한 번 내고 세 번 절하는 방식이지요.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 간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홍명사의 관음상은 관동지역에서도 그 형식이 아름답기로 으뜸입니다." 부주지 스님은 관음상을 우러러 보고 있는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역시 한국 최초 공개 불상이다.(기자는 군마현의 미즈사와절에 있는 고구려 혜관스님 상을 최초로 공개한바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기자] 성곡사(星谷寺, 쇼코쿠지)로 가기 위해 도쿄에서 특급으로 한 시간여 달려가 내린 자마역(座間驛)은 한적한 소도시 역이었다. 역에서 내려 길을 묻고자해도 지나는 행인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곳에 성곡사는 자리했다. 판동33소관음순례 제8번(坂東33所觀音巡禮第八番) 도량인 성곡사는 일본 최초로 대승정의 칭호를 받은 백제계 출신 행기(行基, 668~742)스님이 개산(開山)한 절이다. 행기스님은 백제왕의 후손으로 《겐코샤쿠쇼(元亨釋書)》에는 행기스님을 백제국왕의 후손이라고 밝히고 있다. (釋行基世姓高志氏。泉大鳥郡人。百濟國王之胤也。) 행기스님은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나라 야쿠시지(奈良 藥師寺)에서 신라승 혜기(慧基)와 백제계 의연(義淵)스님에게서 불도를 닦았으며 스물네 살에 덕광법사(德光法師)에게 구족계를 받고 덴표 17년(745)에 대승정 자리에 오른 일본의 고승이다. (초대승정은 고구려 혜관스님이고 행기스님은 이후 대승정으로 활약). 이후 민중 속에서 불교의 보살행을 실천하다 81살의 나이로 스가와라지(菅原寺)에서 입적한다. 나라시대 뛰어난 고승들이 많았지만 행기스님만큼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산 승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신문은 지난달 26일 경향신문이 “SEOUL CHRISTMAS –Festival 2016-”라고 영어로 커다랗게 쓴 광고를 낸 것에 쓴 소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또 다시 경향신문이 아예 전면에 영어광고를 해 얼굴을 찌푸리게 합니다. 맨 위에 커다란 글씨로 “RENOIR”라고 쓰고 아래로는 “IMAGES OF WOMEN”이라고 달았습니다. 물론 그 옆으로 “르누아루의 여인”이라는 한글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구색에 불과한 느낌입니다. 국어기본법 제14조 제1호에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 있는 언론기관이라면 지키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요? 제발 영어를 커다랗게 쓰는 것이 품격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버렸으면 합니다. 일제강점기 서정주, 김동리 같은 문인들이 일본에서 천민마을을 얘기하는 일본말 “부락(部落)”을 들여다 동인지 이름 “시인부락”이라고 쓰는 바람에 지금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부락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지식인들의 행위가 우리말글을 파괴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문화신문= 일본 군마현 치요다쵸 이윤옥기자] “1월 1일 오후 3시에 오시면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일본 군마현 치요다쵸에 자리한 광은사(光恩寺, 고온지) 주지스님은 서울에서 누리편지(메일)를 보낸 기자에게 시간까지 정해주면서 찾아오라고 했다. 1월 1일은 일본 절에서 새해맞이(初詣, 하츠모우데) 로 한해 가운데가장 바쁜 때로 외부 손님과의 대담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스님은 흔쾌히 기자와의 약속을 해주었다. 광은사는 고구려 혜관스님이 개산(開山, 산문을 연다는 뜻으로 창건을 뜻함)한 절로 이카호의 수택사(미즈사와데라, 水澤寺), 이바라기현의 근본사(根本寺, 곤본지)와 함께 관동 지역의 3대 고찰 가운데 하나인천년 고찰이다. 하필 이렇게 바쁜 시기에 주지스님을 찾아뵙겠다고 한 것이 죄송스런 일이긴 하지만 기자 역시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이때뿐인지라 용기를 내어 편지를 보낸 것이 가상했는지 광은사의 주지스님은 약속대로 3시에 기자를 맞았다. 팔십은 족히 되어 보이는 모습의 주지스님은 검은 옷에 흰 목도리를 두르고 기자를 만나자 마자 명함을 건네주었는데 광은사주직(光恩寺住職) 나가라쿄코(長柄行光)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실례지만 연세는? 이라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편집국장] 2019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 교과서에 300자 내에서 한자를 표기할 수 있게 한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초등 교과서 한자 표기 기준'을 마련해 2019년부터 적용한다는 것이다. 표기 기준은 단원의 주요 학습 용어에 한해서 교과서 집필진과 심의회가 한자의 뜻이 용어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경우 한자를 표기할 수 있도록 했다. 표기하는 한자는 미리 선정한 한자 300자 내로 제한되며 교과서의 밑단이나 옆단에 한자와 음, 뜻을 모두 제시한다고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5학년 과학의 '태양계와 별' 단원에서 '항성'의 경우 '항상 같은 곳에서 빛나는 별'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한자가 도움이 되는 만큼 밑단이나 옆단에 '항성(恒星) : 항상(恒, 항상 항) 같은 곳에서 빛나는 별(星, 별 성)'같은 식으로 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 처럼 '집 우'(宇), '집 주'(宙)라는 한자가 용어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표기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이는 일반 국민의 말글생활에 있어 무엇을 그 바탕으로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 방향이다. 세종대왕, 모든 백성의 쉬운 말글생활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