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가난한 이웃, 보잘 것 없는 우리 이웃들에 대한 애정, 이게 정말 소중한 우리 마음이다. 이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보다 지위가 낮고 가진 게 적으면 깔보고 깔아뭉개고 업신여기게 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 마음을 길러 주지 않으면 평생 거만하게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살 것이다. 아이들과 시를 쓰고 글쓰기를 하는 것도 이 마음을 갖게 하는 과정이고 아이들 글은 이 마음에서 나온 열매다.” 아! 구자행 선생이 평생 교실에서 추구하는 것이 ‘가난한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었구나. 기자는 구자행 선생의 책 《국어시간에 뭐하니?》를 읽어 내려가면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하나 푼 듯 무릎을 쳤다. 왜냐하면 그가 이 책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고갱이가 거기 숨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웃(178쪽)은 이 책의 여러 주제 가운데서도 기자의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이다. “우리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우리 자신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잖아. 자라온 이야기도 그렇고, 식구들 이야기도 그렇고, 친구나 학교 이야기도 그렇고, 이제는 자신의 문제를 벗어나서 우리 이웃으로 눈을 돌려보자” 구 선생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눈길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기자]70평생을 토박이말만 부여잡고 사는 시조시인이 있다. 바로 일본 교토의 한밝 김리박 시인으로 최근 토박이말 시조시집 《울 핏줄은 진달래》를 도서출판 얼레빗을 통해서 펴냈다. 시조집을 손에 쥐자마나 나는단숨에 읽어내려 갔고, 시조집 곳곳에 울컥하는 심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빛되찾은 그나날에 네 살의 아들놈은 미친 듯 울고계신 아버지를 쳐다보며 겨레의 참빛되찾은 그기쁨을 새겼도다. -첫째매 넷째가름 둘째쪼각 ‘아버님생각’- 시인 나이 네 살, 그 천진난만한 어린 가슴에 ‘겨레의 참빛 되찾은 아버님의 그 기쁨’을 알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아니 알 길이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가 두 손에 쥐어주던 알사탕도 기억 못할 그 어린 나이에 시인의 조국은 광복을 맞았다. 얼마나 기뻤으면 아버지는 미친 듯 울고 계셨을까? 어린 마음이지만 그날의 아버지 모습은 일흔이 된 시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누에고치가 실을 뽑듯 풀려나온다. 만일 그해 시인이 열네 살만 되었어도 아니 스물넷만 되었어도 아버지의 그 미칠 듯이 기쁜 모습은 그렇게 오래 뇌리에 새겨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버지 나이와 멀어질수록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역시 롯데백화점입니다. 얼마 전 “Lovely SALE”이라고 광고를 하더니만 이제 “Lovely KOREA Festival”입니다. 저렇게 영어를 신나게 써서 민족기업이 아니라는 증거를 남기려는 것인일까요? 광고 아래에는 “Fighting Korea 스포츠 의류 용품”이란 글귀도 보입니다.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의 선전을 기원 하는 것이지 모르지만 이건 미국이나 영국 같은 영어종주국에서는 쓰지 않는 콩글리시까지 동원합니다. “‘파이팅’(fighting)‘이란 말은 본래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출처가 모호한 가짜 영어입니다. ‘파이팅’은 호전적인 뜻으로 ‘싸우자’ ‘맞장 뜨자’는 정도의 뜻일 뿐이며,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하자!’ 뜻으로는 ‘키프 잇 업’(keep it up)을 쓴다고 하지요. 또 이 말을 ‘화이팅’이라고 소리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나며, 물고기인 ‘대구’(whiting)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 더 이상합니다. 조폭들이나 쓸 “파이팅” 대신 “얼씨구!, 힘내자!, 영차! 아리아리, 아자아자!”라고 쓰면 어떨까요? 낱말 하나라도 우리의 정서를 잘 나타내는 말을 골라 쓰고 어법에 맞는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렀더니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거기엔 “국민 POWER”라고 영어를 써놓았는데 꼭 그렇게 영어를 써야 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大韓國人”이란 한자도 있었고, “세계를 리드하자”라고 하여 영어를 한글화한 말도 있었지요 이렇게 우리말 짓밟기의 여러 모습이 작은 쪽지에 가득합니다. 여기 “애국애족 하자” 했는데 이렇게 우리말을 짓밟으면서 어떻게 “애국애족”이 되나요. 제발 진정한 애국애족이 무엇이지 정신을 차리십시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고보조사업 안내책자를 냈습니다. 그런데 표지에는 버젓이 “GUIDE BOOK”이라고 써놓았습니다. 분명히 우리말 “안내책자”라는 말이 있는데 왜 정부가 앞장서서 우리말 대신 영어를 쓰는지요? 특히 문화체육관광부는 아래 기관으로 정부의 국어사업을 아우르는 “국립국어원”을 두고 있고, 우리말 주관부서로 우리말을 갈고 닦는데 최선을 다해야할 곳입니다. 그런데 앞장서서 영어 쓰기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에누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한자말 “할인판매”나 영어 “SALE”에 밀려 거의 잊혔지만 얼마 전 이마트에 갔더니 ”에누리“란 말을 써서 반가웠습니다. “에누리”란 “물건값을 깎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에누리’를 ‘값을 깎아서 사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지만, 원래는 ‘제값보다 높여 부르는 값’을 뜻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사꾼의 입장에서는 에누리를 붙이는 것이고, 손님은 에누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에누리를 떼는 것이지요. 당연히 깎아서 팔 것을 생각하고 제값을 높여서 불렀으니 깎아서 사지 않으면 이른바 ‘바가지’를 쓴 셈이 됩니다. 그래서 이 에누리를 두고 흥정이 벌어지지요. 물건을 사는 사람이 ‘에누리 합시다’라고 하면 값을 깎아달라는 것이고, 파는 사람이 ‘에누리 없소!’라고 하면 제값에 보태어 부른 게 없다는 말이 되지요. (참고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 박남일, 서해문집》 어쨌든 “에누리”라는 말이 할인판매나 SALE에 안방을 내주었으니 이렇게 어쩌다 만나면 참 반갑고 크게 손뼉을 쳐주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부여박물관의 특별전 “부소산”을 다녀오는 길 나는 부여군의 민족정신과 우리말 사랑을 보았습니다. 가로수가 사쿠라(벚꽃)인 곳을 지나면서 왜 국민이 낸 예산으로 가로수를 사쿠라로 심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부여군의 “백제큰길” 지방도로와 40번 국도에 소나무가 가로수가 심어진 걸 보면서 부여군의 민족정신을 실감해야 했습니다. 또 지방도로의 이름을 “백제큰길”이라 하여 백제 정신과 우리말을 사랑을 실천한 것은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여군, 칭찬받아 마땅한 곳이었습니다.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영등포역에 갔더니 함께 있는 롯데백화점이 영어 쓰는데 신이 났더군요. 원래 롯데는 “SALE”를 쓰는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지만, 영등포역 이름 밑에 쓴 광고판은 “SALE”에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Lovely”를 덧붙여 “Lovely SALE”이랍니다. 할인판매도 사랑스럽나요? 말도 잘 가져다 붙입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게 이제는 한자로 “名作”이라는 꾸밈말을 더 썼습니다. 우리말을 짓밟고, 영어나 한자말 쓰는 “名作”이겠죠. “Lovely SALE”은 영등포역 아래 보도에 깃발로 나부끼고 영등포역에 올라가는 계단의 큰 기둥에도 붙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Lovely SALE”을 넘어 ‘TOP SALE“랍니다. 그와 함께 ”TOPTEN“도 붙여놨습니다. 영어 쓰는데 최고 수준임을 자랑이나 하듯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롯데는 민족기업이니 일본기업이니 말이 많습니다. 롯데백화점이 말뿐이 아닌 진정한 민족기업이라면 영어나 한자 대신 우리말을 사랑하는 기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며칠 동안 경향신문 기사 제목에 우리말을 짓밟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났습니다. 지식인의 하나이면서 세상을 이끌고 있는 언론인들이 기사 제목을 쓰는데 선정적이거나 민족주체성이 없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폰‘이 안 도와주네”라고 해 휴대전화나 휴대폰도 아니고 국어사전에 없는 영어 전화기의 한글표기를 씁니다. 그리고 “인재 키우는 NIE”라고 해 일반인들은 무슨 말인지 모를 영어 줄임말을 제목에 내놓았습니다. 또 서울 도로 5곳 지반침하“라고 합니다. 정말 우리말을 사랑한다면 ’폰‘은 ”휴대전화“라 하던가 가능하면 토박이말을 쓴 ”슬기전화“면 더 좋을 일입니다. 그리고 ’지반침하‘는 ”땅꺼짐“하면 더 알아듣기 쉽지 않나요? 그런데 경향신문은 그런 기사 제목 짓기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대못 박기”, “헛발질”, “쏘아올린” 따위를 써서 기사 제목을 재미나게 하면서도 우리말 사랑 실천을 한 것들도 눈에 띕니다. 제발 언론이 앞장서서 우리말 사랑에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경향신문을 즐겨 봅니다. 비교적 균형 잡힌 보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신문은 실망스러운 보습을 보였습니다. “허물만 남은 의인, 죽을 만큼 힘들 그후”라며 그를 또 다른 표현으로 커다랗게 “生, 死”라 썼습니다. 꼭 그렇게 한자를 써야 멋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언론 가운데 가장 크고 진보적이라는 오마이뉴스는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제외? 핵노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핵노답“이 도대체 뭔가요? 아마도 질문에 대한 답이 전혀 없다는 젊은이들의 신조어인 모양인데 아무리 편집 과정에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해서 그렇게 선정적이고, 젊은이들의 눈높이 맞추려 우리말을 더럽히는 것을 보니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데 언론의 현주소가 이러니 참으로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