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이 정도령으로부터 은밀히 전달 받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전황(戰況)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고 있었다. 구루시마의 반대로 도도를 비롯한 와키자카, 구루시마는 울둘목의 입구에서 전방의 가토가 이끄는 전선들의 전투를 그냥 주시하고 방관하는 태도였다. 장군의 전략이 성공하려면 이들 모두가 울둘목으로 공격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김충선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때 도도의 총대장선이 갑자기 소란스럽게 변하였다. 전방에서 대치하던 이순신의 함대와 가토의 함대가 드디어 서로 포격을 개시한 것이었다. 콰쾅쾅--- 명량해협의 울둘목이 갑자기 엄청난 굉음에 휩싸였다. 그 해협의 양 언덕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이울과 이회, 박정량과 전승업 등은 발을 동동 굴렸다. 바로 눈앞에서 가토와 그의 함대가 내려다보이지 않는가. 천자포의 사정거리로 발사만 하면 불바다를 이룰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대장선에서는 아직 응답이 없었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 지난 사흘간 천자포를 장치하고 화약을 옮겨왔다. 바위색의 보자기와 나뭇가지, 이파리로 위장하여 포와 화약 등을 은폐해 두었지만 정작 발사는 대기 중이었다. 일부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은 건주여진을 빠져나온 후 계속하여 남하하였다. 이순신이 통제사로 복귀되어 수군을 정비하고 있을 무렵 김충선은 사실 유성룡을 은밀히 만났었다. 누르하치와의 담판을 성사 시키지 못했나이다. 이장군에게 면목이 없어서 우선 대감을 찾아왔나이다. 서애 유성룡은 반갑게 맞아줬다. 잘 왔네. 누르하치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지. 우린 자네가 위험해질 것을 무척 염려 했는데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것이 담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일세. 유성룡의 위로에 김충선은 감격했다. 대감! 일본의 이번 공격은 임진년에 비해서 더 악독하고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네. 이장군의 구금 역시 저들의 흉계였으며 남해바다와 호남을 석권하려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실정일세. 자네가 돌아왔으니 이장군에게 큰 힘이 될 거야. 김충선이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조선 수군에 남아있는 군선이 불과 13척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네의 도움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부산으로 가시게. 일본군 수군의 본거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유성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군의 곁에 선인을 천거 했다네. 그가 말하기를 적의 정보를 장악하면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요즘 한글 전용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으로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이 있었고 이에 많은 논란이 일었다. 그런 때 농촌진흥청에 들어온 새내기를 대상으로 우리말 바로쓰기 교육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서 헌법소원에 대한 얘기를 해주고 새내기들이 교육 들어올 때 받은 공문을 보기로 들어 설명해주었다. 먼저 이미 보냈던 한글로 쓴 공문을 보여주었다. ▲ 농촌진흥청의 한글로 쓴 공문 그리고 한자를 써야한다는 주장처럼 한자로 바꿔 쓴 공문을 예로 들어주었다. ▲ 한글 공문을 한자로 바꿔 쓴 공문 예 이어서 한자로 써서 못 읽는 사람도 많을 테니,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한자를 한글로 다 풀어준 공문도 보여주었다. ▲ 한자를 한글로 다 풀어준 공문 예 이렇게 공문 세 장을 보여줬더니, 새내기들이 입을 쩍 벌리면서 한자를 써서 공문을 만들면 절대 안 된다고 한결같은 소리로 다짐했다. 이를 보면 한글전용에 대한 헌법소원은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 것 아닐까?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부산 광안리의 한 초고층 아파트 이름에 藝家라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아마도 예술인의 집이라는 뜻으로 쓴 모양인데한자로만 쓴 것을 보니 멋을 부린 모양입니다.이 밖에도 부산 시내에는 영어로 밑도끝도 없이 커다랗게 DONGIL이라고 써둔 건물이라든가 BOHAE EVE란 아파트 이름도 보입니다. 대한민국 땅 안에 한글은 없이 영어나 한자만으로 표기한 곳이 무척 많군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이 무학프라자라고 쓴 것이 보입니다. 그에 더하여 온전히 우리말 이름으로 된 꿈에그린 이라는 이름도 보이는군요.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영어나 한자로 쓰고 싶더라도 한글을 먼저 쓰고 뒤에 해당 언어를 쓰면 어떻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백년편지 1》 표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펴냄 [우리문화신문=김철관 기자]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달포 남짓 지난, 1919년 4월 13일 애국지사들이 중국 상하이에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포식을 열었다.오는 2019년 4월 13일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는 해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2019년)을 맞아 지난 2010년부터 2016년 4월 13일까지 후손들이 돌아가신 애국지사들에게 쓴 편지를 역은 첫 번째 책이 나왔다.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편찬한 백년편지1(2016년 4월13일)는 독립운동가 후손, 교수, 역사학자, 고등학생, 초등학생, 중학생 등 220명이 참여했고, 이중 60편이 책에 실렸다. 오늘을 사는 후손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선진들에게 편지 형식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부분의 편지들이 독립운동가의 진솔한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백년편지1은 발신자는 생존해 있지만 수신자는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다. 편지형식을 띄었지만 종이 대신 전자우편 형식을 취했고,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사적인 편지가 아니라 공개적 편지의 형식을 취했다. 먼저 독립운동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시는 날로 팽창하고 있다. 2030년까지를 도시 건설 완공 목표로 착착 진행됨에 따라 실제 거주 인구가 2015년에는 전년대비 30%이상 증가하여 2016년 3월 현재 인구 227,025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는 양적 발전에 걸맞은 세종시의 위상을 세우는 일을 좀 더 고민할 때이다.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도시다운 세종 정신으로 내실을 다지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세종과는 아무 관계없이 ‘세종’이 들어간 수많은 상호들과는 격이 다른 ‘세종’의 이름값을 해야 할 의무가 세종시에 있다. 사실 세종시는 처음부터 한글 디자인과 우리식 건물명 등을 통해 세종 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세종 정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침 이춘희 세종시장과 이충재 행복건설청장 모두 세종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물론 이 문제는 지도자 의지만으로 이뤄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세종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여 세종시의 위상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종시에 세종학 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제안한다. 세종학은 세종대왕에 대한 인물론부터 그가 남긴 업적과 계승 문제를 연구하는 일종의 융합학문으로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서울지하철에는 임산부 배려석을 만들고 분홍빛을 칠해 눈에 확 띄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각장애인만 아니면 누구나 잘 알아볼 수 있지요. 하지만 요즘 종종 남성들에 의해서 수난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빈자리가 많이 있는데도 임신을 할 수 없는 남성이 버젓이 앉아 있습니다. 더구나 어떤 남성은 아예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들은 남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지않는 것은 임산부에 대한 배려 차원 이전에 세상살이의 기본 일 것입니다. 뻔뻔스러운 저들 남성을 혼내주고 싶은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지하철을 탔더니 서울메트로가 shopping trail이라고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새봄맞이 해피쇼핑이라고 한글로 토를 달아놓았네요. 그 열차를 타면 상품을 살 수 있는 모양인데 아마도 주된 손님이 미국인인가 봅니다. 아니면 영어를 크게 쓰고 한글을 작게 쓸 까닭이 있나요? 분명히 한국의 지하철이고 한국인이 주로 타는 지하철이라면 저 영어와 한글의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글도 새봄맞이 행복한 장보기 쯤으로 해야만 합니다. 남의 땅에 사는 연변의 조선족차지구 사람들도 한글을 먼저 쓰는데 하물며 제 나라 땅에서 사는 이들이 그것도 공기업이 이러면 안 됩니다. ▲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 가면 모든 간판을 한글로 먼저 써놓았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 서울시에서 kt 광화문빌딩에 내건 우리말 광고판 ▲ 교보문고에 내걸린 봄이 부서질까봐~ 광고판 ▲ 세종문화회관에 걸린 우리말 광고판 물들이다 ▲ 역시 세종문화회관의 강고판엔 물이다라는 광고판을 붙였고, 세종음악, 미래를 여는 클래식 같이 한글광고판이 달렸다.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요즘 얼굴이 피었습니다. 동상 왼쪽과 오른쪽에 커다란 광고판들이 한글로 된 까닭입니다. 먼저 서울시는 kt 광화문빌딩에 걷자 서울 / 걸으면 바뀝니다. 서울이 행복해집니다.라고 붙였습니다. 그 옆의 교보문고는 달마다 바뀌는 광고로 이달엔 봄이 부서질까봐 조심조심 속삭였다.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라는 광고판을 붙였지요. 그런가 하면 길 건너편의 세종문화회관은 물이다라는 광고판을 붙였고, 세종음악, 미래를 여는 클래식 같이 한글광고판이 달렸습니다. 광화문처럼 우리나라 모든 길거리가 한글로 환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 소설《동주와 몽규(왼쪽),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판 복원본)》, 유광남, 스타북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지난 2015년 2월 16일 늦은 3시 일본 교토 동지사대 교정 윤동주 시비 앞에서는 한국과 일본 시인들의 낭송으로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울려 퍼졌다. 1945년 2월 16일 이른 3시 36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여섯 달을 앞두고 29살의 나이로 비통한 죽음을 맞이한 조선청년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모임이 열린 것이다. 이때 추모식에 참석했던 글쓴이는 함께 했던 자체만으로 감격스러웠다. 최근 윤동주 시인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는 움직임이 있던 차에 소설 《이순신의 반역》을 펴내 크게 관심을 끌었던 유광남 작가가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의 어린 시절을 다룬 소설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 복원본을 함께 묶은 《동주와 몽규 세트》룰 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