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웃음 끝에 상체를 일으켜서 수평선 끝을 갑자기 노려보았다. 저 멀리 자욱한 물안개 너머로 갈매기 떼처럼 새까맣게 적선들이 떠올라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적의 주력함대인가? 그리 보입니다. 대선 안택선(安宅船아타케부네)이 많아 보입니다. 아마도 대장들이 모조리 출동 했을 겁니다. 이 바다위에서 주군의 멸망을 지켜보고자! 도주했던 탐망선의 보고를 받고 몰려온 것입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 숫자를 제대로 확인하고 말입니다. 도도와 가토, 와키자카......그리고 구루시마! 정도령은 단정하고 있었다. 칠천량의 전략은 구루시마에게 나왔다고 봐야 합니다. 아니, 그 자가 수군에 합류 되면서 조선 수군을 궤멸시키기 위한 음모가 이미 진행되었다고 봐야지요. 장군을 숙청(肅淸)하고 칠천량 전투를 주도한 인물. 그의 주도면밀(周到綿密)한 계획이 없었다면 원균장군이 그토록 일방적인 참패는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순신은 정도령의 예측이 빗나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의 바다는 평온했었다. 도도 다카토라와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와는 이미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으며 그들과의 충돌에서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경상우수사로 칠천량에 참가했던 배설장군은 병을 핑계로 귀향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수군 패전의 책임으로 원균과 배설을 지목하고 있었다. 원균은 전사한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권율 도원수가 벽파진을 방문하여 생사가 확인된 셈이었다. 이제 부터는 원균에 대한 처벌 수위 역시도 논의될 것이었다. 그는 과오(過誤)가 적지 않은 장수입니다. 그러나 판옥선 12척을 그가 살려낸 것은 다행한 일이지 않소. 정도령이 단호하였다. 주군, 만일 어떤 전투에서든지 꽁무니를 빼어 선박을 유지한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면 어느 수군장수가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겠나이까. 그때마다 달아날 궁리만 하게 될 것입니다. 배수사를 참형하여 군기의 엄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순신은 혀를 차며 탄식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요. 도원수부에 장계를 올리도록 하겠소. 이순신은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침묵의 경계 속으로 자신을 몰입시켰다. 고요한 명상의 세계에서 하나씩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머니였다. 노모(老母)는 자식이었던 이순신을 공경(恭敬)의 대상으로 삼고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이순신의 두 형 이희신과 이요신이 요사(夭死)하자 그 조카들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인사동에 나갔더니 새로 열린 면세점 “SM”이 있습니다. 그런데 SM은 커다란 펼침막에 “문을 열다”라고 써놓았습니다. 어디건 새로 문을 열면 버릇처럼 “OPEN“ ”GRAND OPEN“이라고 쓰는데 견줘 우리말로 펼침막을 단 ”SM“에 칭찬을 해줘야 하겠습니다. ”문을 열다“를 보고 어색하다고 할 사람보다는 신선하다고 할 사람이 많지 않을 까요? 대기업의 우리말 사랑 정신 참으로 흐뭇합니다. ▲ "문을 열다"라고 쓴 펼침막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는 여전히 "GRAND OPEN"이라고 영어로 범벅을 해놌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기자는 지난달 말 연세암병원의 우리말 사랑을 칭찬한 적이 있었습니다. 연세암병원이란 이름을 한글로 크게 쓰고, Yonsei Cancer Center은 작은 글씨로 써놓은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나가는 곳을 크게 WAY OUT는 작게 쓴 것이지요 ▲ 연세암병원이란 한글간판이 큰 연세암병원 ▲ 연세암병원은 WAY OUT보다 나가는 곳을 크게 써놓았다. 그런데 지하 2층에 있는 식당에 갔더니 여긴 우리말 사랑이 아니라 영어 사랑이었습니다. 밥을 다 먹은 뒤 식판을 돌려주는 곳을 영어로 커다랗게 RETURN이라고 쓴 것입니다. 또 한 음식 창구는 옆 창구의 수라방이란 우리말 이름과 달리 Sanuki Bore라고 썼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둥에는 RICE, KOREAN FOOD RESTAURANT / DELICIOUS FOOD COURT라고도 썼지요. 또 물 마시는 곳에는 커다랗게 WATER이라고 되어 있네요. ▲ 신판을 돌려주는 곳은 RETURN이다 ▲ 기둥에 써붙인 RICE, KORE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지난 2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세종이란 말을 떼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기사는 세종문화회관의 영어 쓰기에 꾸중을 하는 내용이었지요. 그런데 그 세종문화회관은 최근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영어보다는 우리말을 쓰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붙인 펼침막의 신춘음악회는 물론 알파벳으로 쓰기 쉬운 헨리4세까지 한글로 써놓았습니다. 또 세종문회회관 앞에 붙인 아마데우스도 한글입니다. 이런 세종문화회관의 노력에 큰 손뼉을 보냅니다. ▲ 지난 1월에 붙었던 펼침막에는 영문자가 대세였다. ▲ 지난해 6월에 붙었던 펼침막 ▲ 지난 1월에 붙었던 펼침막
▲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모니카 마시아스, 예담, 201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를 읽었습니다. 진작부터 제 책꽂이에 꽂아둔 책이지만, 다른 책들에게 우선순위에 밀려 있다가 이번에 꺼내들었습니다. 지난주에 새로 읽을 책을 잡으려는데, 이 책이 이번에도 나를 안 볼 거냐며 원망하는 것 같아 꺼내들었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의무감에 읽기 시작했지만, 곧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지은이 모니카 마시아스가 풀어내는 자신의 특별한 인생, 기구한 인생이 곧 저를 책으로 끌어들인 것이지요. 모니카는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웅게마의 막내딸(1972~ )입니다. 적도기니는 196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 서해안 적도 부근에 있는 신생국가이지요. 대통령의 딸이라면 그야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 아닙니까? 그런 그녀의 인생이 180도 바뀐 것이 1979년입니다. 1979년 당시 국방장관으로 모니카의 사촌오빠이기도 한 테오도르 오비앙 웅게마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쿠데타가 임박했을 때 모니카의 어머니는 모니카와 모니카의 2살 위 오빠 파코, 4살 위 언니 마리벨을 데리고 평양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연세대 암병원에 갔더니 현관 정면에 연세암방원이라고 한글로 써놓고 그 옆에 조금 작은 알파벳으로 Yonsei Cancer Center라고 달아 놓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현관 옆에는 토박이말로 나가는 곳이라고 크게 쓰고는 OUT라고 영어로 달아놓았습니다. 이러니 우리 국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외국인에게도 편합니다. 이렇게 큰병원이 우리말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니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버스정류장에 공연 포스터가 두 장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장은 한글로 옥탑방 고양이였고, 하나는 영어로 ABOUT LOVE이었습니다. ABOUT LOVE로 하면 멋있고, 옥탑방 고양이하면 촌스럽나요? 옥탑방 고양이은 5년 연속 예매율 1위랍니다. 한글로 쓴 포스터라 해서 예매율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내 안에 개있다》, 저에게 배달되어 온 책의 제목입니다. 내 안에 개있다니?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멍멍이 개? 멍멍이 개가 있다면, 이게 무슨 뜻일까? 책장을 여니, 책을 지은 신아연 수필가는 이렇게 말하는군요. 지금 여기, 민낯의 삶 자리만큼 소중한 것이 없지요. 지금 여기의 삶 자리는 미래라는 막연한 잣대로 재단되어 멍하게 잘려 나가서는 안 되는 오롯함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러기에 뜬금없는 저것으로 인해 손에 잡히는 이것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며, 매끈하게 정제된 저것이 소박하고 질박한 이것을 밀어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박제된 저것 대신 생동으로 빛나는 이것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의 자세를 내 안에 개있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개는 절대로 주인에 대한 충절을 버리거나 딴 마음을 품는 법이 없지요. 언제나 저것이 아닌 이것을 섬깁니다. 우리도 개처럼 나의 근원이자 나의 지성 너머에 있으면서 매일 매일의 내 삶에 개입하는 절대적 존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저것이 아닌 이것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아하! 멍멍이 개가 있다는 얘기이군요. 그런데 내 안에 개있다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 광화문광장에서 한복 치마저고리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젊은 여성들 개 발에 편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국어사전에 옷차림이나 지닌 물건 따위가 제격에 맞지 아니하여 어울리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편자는 험한 곳을 달리는 말의 발바닥에 붙이는 쇠붙입니다. 당연히 개의 발에는 쓸모가 없는 물건이지요. 오히려 걸음걸이만 불편하게 만들 뿐 없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 광화문광장에서 바로 이런 모습이 눈이 띄어 불편했습니다. 몇몇 젊은 여성들이 무슨 행사를 했는지 한복을 갖춰 입고 가는 것을 보고 기특하다 했지만 순간 발에 시선이 멈춰서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복 치마저고리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것이지요. 운동화는 누구나 알다시피 운동할 때 신거나 평상시에 활동하기 편하게 신는 신이지요. 그러나 한복은 운동할 때 입는 옷도 활동하기 편하라고 입는 옷도 아닌 우리의 전통미를 상징하는 예절옷이라 해야 맞습니다. ▲ 조선시대 태사혜를 현대에 맞게 개량한 갖신 따라서 한복을 입으려면 운동화가 아니라 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