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길에 가다보니까 온통 영어천지여서 한국이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앞에 한 호텔은 이름을 영어로 썼고 그 옆엔 한글로 호텔이라 하고 오픈기념 대폭할인이라며 홍보합니다. 이 역시 우리말은 없습니다. 문 연 기념 큰 에누리라고 하면 촌스럽나요? 그뿐이 아닙니다. 아래 한 전자제품 판매점 역시 POWER SALE라고 영어 자랑을 합니다. 온 나라가 이렇게 영어잔치를 하고 있으니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마음은 어떨까요? 말을 버리면 그 민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데 걱정입니다.
[우리문화신문=이무성 작가] 강원도 홍천농협에서 편의점을 열었나 봅니다. 그런데 하필 이름이 파머스마켓입니다. 농부들의 가게라는 뜻인가 본데 굳이 저렇게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이름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진정 농민을 위하는 농협이라면 농민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 이름으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연극 꽃의 비밀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풍조와는 달리 한글로만 쓰여 있습니다. 웃음보장, 10초마다 웃겨 드린다네요. 영어가 많이 쓰인 옆의 다른 공연 포스터와는 차별이 됩니다. 영어를 숭상하는 사대주의가 아닌 우리말 사랑이 배어 있는 듯 해 기분이 좋습니다. 연극도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듯 합니다.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나라(奈良) 반야사(般若寺, 한냐지)의 수선화는 한 겨울인데도 곱게 피어 있었다. 어제 9일(토) 오후 3시 찾아간 반야사는 주택가 언덕길을 막 벗어난 곳에 동백과 수선화를 품고 고즈넉하게자리하고 있었다. 반야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에는 사람들이 늘 바글거리지만 반야사를 찾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반야사에 머무는 동안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낡은 카메라를 든 노인들뿐이었다. 아마도 겨울 수선화를 찍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 같았다. ▲ 나라시에 있는 반야사 전경, 왼쪽이 본당이고 오른쪽 탑은 목탑이 주종을 이루는 일본에서는 보기드문 석탑으로 13세기에 만든 것이다. 나라산(奈良山) 아래 언덕 고즈넉한 곳에 자리한 반야사는 아스카시대에 고구려 스님 혜관법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수도가 나라로 천도함에 따라 덴표 7년(735년) 성무왕(聖武天皇)이 헤이죠쿄(平成京)의 귀문(鬼門)을 지키기 위해 대반야경을 기단에 넣어 탑을 세운 것이 인연이 되어 절 이름을 반야사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헤이안시대에는 천여명의 학승들이 있을 정도로 번창했으므로 학문사(學問寺, 가쿠몬지)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 세종문화회관 뒷쪽에 붙인 광고, 온통 영어투성이다. ▲ 세종미술관 앞의 백남준전을 홍보하는 것도 온통 영어뿐이다. ▲ 세종문화회관 지하 음식점들도 영어로 홍보하기에 바쁘다. 세종문화회관 누리집을 보면 “세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겨레에게 “세종”은 정말 성스러운 임금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글자를 만들었고, 백성을 위해 조선의 문예부흥을 이룩한 분이었지요. 따라서 상호나 단체 이름에 “세종”을 붙이려면 적어도 세종의 업적에 누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더구나 우리말을 짓밟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울의 한복판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세종”이란 이름을 붙이고서 우리말 짓밟기에 신이 난 듯합니다. 지난해에도 우리 신문이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여전히 그 잘못을 고칠 줄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도 세종문화회관에는 여지없이 영어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글로 홍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오늘 1월 7일에 무대에 올린는 <2016 세종문화회관 신년음악회 - ‘어제를 비추어 내일을 열다’> 펼침막은 한글로 쓰여 있으니까 말입니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원균은 곽재우의 어깨를 두어 번 가볍게 두들겼다. 나와 같은 마음이군. 그러나 우리 명량의 격전을 치룬 후에 평가하세. 과연 정도령의 계획대로 진행되어 우리가 승리하게 될지 말일세. 이들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때 적의 중형 군선인 관선(関船세키부네)이접근을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대장선에서는 초요기 대신에 붉은 바탕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저 신호는 무엇입니까? 곽재우가 묻고 원균은 그래도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했다. 대기 명령일세. 적들이 어느 정도 다가와야 공격을 감행 합니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시시각각 변하지. 이 장군은 언제나 최선의 거리를 유지하며, 항상 유리한 입장에서 적들을 공격하는 방법이 절묘하지. 그럼, 장군은 어떠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 장군의 전략을 많이 흉내 내는 편이지. 그리고 때로는 백병전(白兵戰)을 즐기기도 하고. 당파(撞破)는 나의 전문일세. 당파라? 부딪치는 충돌을 말하는 겁니까? 원균은 적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운이 좋다면 오늘 목격할 수도 있을 것이고. 홍의장군 곽재우가 통쾌하게 웃었다. 기왕이면 바다 위에서 왜적들을 베어 버리는 느낌 또한 육지와는 타를 터, 기대가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원균의 자세는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곽재우는 이순신과의 담판을 여과 없이 원균에게 전달했다. 이 또한 정도령이 곽재우에게 은밀히 부탁한 것이었다. 원균의 태도가 어찌 나올 것인지 곽재우는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주시했다. 난 이 바다에서 죽기를 소원하오. 왜적 4만 명이 목표외다. 원균의 뜬금없는 발언에 곽재우는 촉각을 곤두 세웠지만 오직 그 말 뿐이었다. 곽재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항해는 오후 내내 계속 되었다. 어둠이 막 시작 될 무렵에 저만치 파도를 타고 잉본의 관선(関船, 세키부네)의 뱃머리가 슬쩍 고개를 내미는 것이 목격 되었다. 적선이다! 판옥선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긴장감이 들었다. 드디어 마주쳤소. 원균은 철저한 패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적선의 숫자가 얼마나 될는지! 파도가 넘실거리자 적선이 하나, 둘 바다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중형 군선으로 무장한 일본 선박의 수는 모두 55 척 이었다. 이순신의 개벽함에 청색 바탕에 하얀 무늬로 북두칠성이 수놓아져 있으며, 백색의 불꽃 깃술이 달려있는 초요기(招搖旗)가 펄럭였다. 함대의 선박들이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그것이 곽재우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장군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네의 모습은 어떠한가? 의병대장으로 맹 활략을 펼치다가 왜 잠적했는가? 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지. 명성이란 것이 생기면 생길수록 시기와 모함도 독버섯처럼 따라서 성장 한다는 것을. 권력에 기생하는 무리들은 점점 더 가증스럽고 혐오스럽게 탐욕의 저주를 안겨준다네. 난 더 이상 지치고 도망갈 수 없기에 스스로 신하의 몸을 깨 부쉈을 뿐일세. 이순신은 순간 평온해 보였으며 의연한 자세로 돌아와 있었다. 곽재우는 그의 의도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시기가 좋지 않다. 일본의 2차 침략으로 정국이 어수선 했으며 명나라 또한 많은 군대가 조선에 주둔해 있다. 만일 역성혁명이 발생 한다면 백성들의 혼란은 어떨 것이며 자칫 하다간 나라가 완전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조선이 일본과 명나라에 나누어질 판이 아닙니까? 자네는 그리 생각하나? 내란이 발생 한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를 상상하나?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니. 알고 있네. 미래를 예측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이순신이 실소
[신한국문회신문=유광남 작가] 단련이 되기 전까지는 방법이 없습디다. 단 흔들리는 파도에 몸을 덩달아 실어 호흡을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멀미는 금방 달아나고 말 거요. 곽재우가 흡족한 정보를 알아내어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 그런 방도가 있었군요. 어디 시험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음악적 재능이 아주 무뎌서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원균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하면서 자신의 의혹을 물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부는 태어나면서부터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내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장군! 곽장군이 이순신함대의 판옥선에 오른 까닭이 무엇이요? 원균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육지의 의병대장이 어째서 이순신의 함대에 동승하였는가. 까닭이 있었던가? 그래. 분명 이유가 존재 했었다. 곽재우는 실상 이울로 부터 심상치 않은 기별을 받고 한 달음에 이순신을 만나러 왔었다. 그리고 그때 곽재우는 선소에서 원균을 만난 직후 이순신과 독대를 가졌었다. 장군의 의도를 알고 싶소이다. 김충선장군을 여진에 보내신 연유도 포함해서 말입니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구루시마, 난 이순신과 여러 차례 충돌했지. 그때마다 패배를 하고 훗날을 도모하며 도주해 왔어. 그러나 이번은 달라. 이순신은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어. 그가 지금 행동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위를 하는 것이라 판단이 되네. 시위라 하심은? 공격당하지 않으려는 계교지. 이순신이 전술에 능하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 경험 했어. 그는 두렵기 때문에 행동하는 거야. 구루시마는 불안한 얼굴을 하였다. 과연 그럴까요? 이순신은 궁지에 몰려 있음이 확실해. 이번 기회에 숨통을 조이자! 구루시마 미치후사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총대장과 대장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희망은 이순신의 행각이 도도 총대장의 예측대로 일종의 발버둥이였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작아보였다. 구루시마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위해서 정종을 뜨겁게 데워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모두 떠나간 빈 회의실에 일본 무장 차림의 사내 한 명이 들어왔다. 아마도 대장들의 자리를 정돈하기 위해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무장의 허리춤에는 한 자루의 마상통(馬上筒=권총)이 삐죽 드러나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