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 우리말 사랑을 실천한 정방폭포 화장실 정방폭포에 들렀습니다. 이곳 화장실 표시는 한글로 먼저 화장실이라 크게 쓰고 그 아래에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도 써놓았습니다. 한국의 자존심을 살리면서도 외국인을 배려한 모습이 그만입니다. 그리고 여성을 상징하는 그림은 해녀를, 남성을 상징하는 그림은 돌하르방을 친근하게 그려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우리말 사랑을 실천한 정방폭포 관광지 칭찬합니다. ▲ 사대주의에 찌든 중문관광단지 간판 그런데 정방폭포와 멀지 않은 중문단지 길거리의 중문단지임을 알리는 간판에는 한글은 없이 한자로 커다랗게 써놓고는 그 아래엔 영어를 써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한자와 영어를 써놓은 게 잘못이 아니라 분명한 한국 땅에 한글이 없는 간판을 달다니 어디 나사가 빠지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습니다. 외국인이 오히려 혀를 차지 않을까요?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영어로 도배한 광고를 하면서 품격과 가치에 감동하다.라고 외칩니다. 사대주의에 다름 아닌 것에 무슨 품격과 감동을 말하나요? 광고에 한글이라곤 이 헛구호와 브라이어라는 상품 이름뿐입니다. 그리곤 알 수 없는 영어 특히 필기체 영어가 광고 주인이 되었습니다. 영어로 광고해야만 상품이 잘 팔리나요? 제발 우리말 짓밟는다는 광고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문화일보의 한 칼럼의 제목을 보니 鯤이 大鵬으로 장자, 자유의 메타포라고 해놨습니다. 그리곤 멋쩍었는지 鯤 아래에는 곤:큰물고기, 大鵬 아래에는 대붕:큰새라고 토를 달았습니다. 신문은 일반 독자가 읽는 것으로 심오한 철학을 펼치는 마당이 아닙니다. 신문 기사는 제목만 보고도 대충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이렇게 어려운 철학 용어를 남발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그리고 한자를 먼저 크게 쓰는 버릇은 참 기가 막힙니다. 언론이 앞장서서 우리말 짓밟기를 일삼으니 걱정이 큽니다.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이미 말했잖아요. 죽었을 것이라고. 정확히! 솔직하게 말해주시오. 일패공주의 발걸음이 이때 멈춰졌다. 당신은 내게 솔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강요하는군요. 내게는 솔직하라고. 김충선은 자신을 조절 할 수가 없었다. 사태를 수습하기 어려웠다. 일패공주가 장예지를 납치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중죄였다. 내게 뭘 원하오? 한시라도 빨리 떠나세요. 칸에게 붙들려서 팽형(烹刑 = 삶아 죽이는 형벌)을 당하게 된다면 그건 나도 원하는 바가 아니니까. 공주? 아, 그리고 이순신 장군에 대한 소식 이예요. 당신이 바로 떠나는데 도움이 될. 그래서 사실 망설였지요. 김충선은 이순신에 대한 소식이란 말에 긴장했다. 어떤 내용이요? 이순신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기용 되었어요. 오오! 김충선은 내심 탄식하고 있었다. 서애 대감을 방문했을 때 유성룡이 했던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장군의 잃어버린 힘을 되찾는다면 그때 이 사람도 함께 하리다!- 서애 유성룡은 그리 대답했었다. 만일 유성룡만 합류 한다면 이순신의 나라는 보다 빨리 찾아오게 될 것이었다. 김충선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여진에서 달아나야 할 이유는 충분해 졌지요. 일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은 부정하지 않았다. 장군이 꿈꾸는 나라는 백성의 이상(理想)이 실현되는 나라요. 내가 장군을 도와서 열어야 하는 하늘이요! 부디 날 좀 도와주시오. 일패공주는 갑자기 온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며 무력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가슴에는 애틋한 감정만이 가득한데 이 사내에게는 언제나 이순신과 더불어 꿈꾸는 하늘만이 전부다. 그가 쏟아냈던 모든 말은 새 하늘을 열기 위한 행위였으리라. 그래서 칸이 그토록 김충선을 죽이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우직하고 적막한 사내는 여진에 남아 있다가는 칸의 손에 죽음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아니, 반드시 죽음을 면지 못하리라. 그의 뇌리에 장예지가 새겨져 있는 이상 일패공주는 자신감을 상실했다. 떠나요.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일패공주는 입술을 악물었다. 당신은 칸을 설득하는데, 아니 기만하는데 서툴렀어요. 우리 관계에 대해서 칸은 이미 눈치 챘어요. 알고 있겠지만 칸은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가 더 두려운 상대로 등장하기 전에 처단 한답니다. 냉정하게! 김충선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내가 여기를 찾아온 목적이 있소! 오로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실은 내게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란 낭자를 만나니 새삼스럽게 떠올라서요. 그래요? 그래서 상냥하고 부드럽게 저를 상대해 주신 거군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은 행복하시겠어요.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자 김충선이 화제를 돌렸다. 오라버니를 기다린다고요? 오래 되었지요. 참 다정한 오빠였어요. 부모님에게도 믿음직하고. 어느 날 갑자기 행방을 감추었지요. 조선으로 떠난다는 말만 남기고서. 조선으로? 네. 갑자기 사라졌지요. 이름이 무엇이요? 오빠의 이름. 아표라고 합니다. 그때 입구에서 갑자기 아! 하는 경악성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가 그들의 대화를 몰래 듣고 있었던 것이다. 김충선은 단번에 몸을 숨기고 있는 사람의 신분을 눈치 챘다. 여인이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일패공주는 놀란 시선으로 아란의 얼굴을 드려다 보았다. 아란은 공주의 등장에 잔뜩 긴장하며 공격 본능을 숨기지 않았다. 닮았네......맞아. 그와 많이 흡사......해. 일패공주는 불쑥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김충선은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었기에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요? 일패공주는 김충선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서 고개를 흔들며 독백처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은 담담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하다부족의 누군가가 당신을 사주한 것이 아니고, 당신 스스로 범행을 저지르려고 했다는 것을 난 믿소. 감사하군요. 눈물이 나도록 감격해야 하는 것이지요. 지금? 아란은 김충선을 비꼬았다. 그래도 김충선은 어떤 동요도 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사실대로 자백하지 않으면 하다부족과 건주여진은 전쟁을 해야만 하오. 이것은 단순한 유희(遊戱)가 아니라 수 만 명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비화(飛火)될 수 있소. 그러니 신중히 처신해 주기 바라오. 김충선이 선의를 지니고 진솔한 자세로 아란을 대하자 그녀는 내심 크게 놀랐다. 소문에 들었던 조선에서 온 사내는 귀신도 놀랄 정도로 철포를 잘 다루며 사람의 목숨 따위는 파리처럼 죽일 수 있는 전쟁터의 전사(戰士)라고 들었다. 누르하치는 그를 사위로 삼아서 여진의 몇 몇 남아있는 부족을 통일 시킨다고 하였다. 아란이 그를 제거하려고 했던 것은 부족이 통합되어 이제 하다부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일 하다부족이 건주여진으로 통합 된다면 그녀가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오빠는 되돌아 올 곳이 없지 않겠는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혈육에 대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편집국장] 지난 2월 8일 언론에는 직지보다 앞선 '증도가자'세계 최고 금속활자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서기 1239년, 고려 시대 제작된 보물 제758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을 때 쓴 금속활자를 책 이름을 따서 '증도가자'라고 하는데 이 '증도가자'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활자로 밝혀졌다는 보도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6월부터 6달 동안 학계 전문가 32명이 참여해 '증도가자'라는 주장이 제기된 109개 활자를 검증했고 이의 진위에 대한 검증을 실시한 결과 22개 활자의 탄소연대측정에서 1033년에서 115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고 학술보고서에서 밝힌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그 '증도가자' 일부를 분석한 결과, 고려시대 활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놔 진위논란에 불이 붙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활자들을 컴퓨터 단층 촬영으로 분석했는데 눈으로 봐도 표면이 벗겨져 나간 부분에 서로 다른 색깔이 나타나났으며, 이러한 이중구조가 청동을 녹여 만드는 금속활자에서는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고인쇄박물관의 활자 7점이 위조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문화재청의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한 교회에서 행사를 한다고 펼침막을 걸었는데 원 플러스 The 러브라네요. 교회도 할인점을 닮아 원 플러스에 동참했나요? 게다가 The 러브라고 영어와 영어의 한글화한 글자까지 어이가 없습니다. 저렇게 하면 신도들이 몰려오나요?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토착화를 위해 한글로 전도를 하려고 애썼는데 이제 오만해졌는지 아니면 사대주의에 찌들었는지 영어 쓰기에 골몰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제발 교회가 우리말을 짓밟는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버스정류장에 예쁜 디자인의 전시회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그러나 이 포스터는 대부분 한글로 쓰이긴 했지만 함께 하는, 살아있는과 토씨를 빼고는 우리말은 없습니다. 특히 멘디니 展이라고 하여 전시회 이름 뒤에 한자로 展을 붙인 것은 왜인가요? 또 전시회 이름 아래엔 THE POETRY OF DESIGN이라는 영어도 붙여 놓았습니다. 굳이 뒤치자면(번역) 디자인의 시인가요? 맨 위에는 전방위적 크리에이터란 한자말과 외래어를 붙인 복합어도 등장시킵니다. 잘난 채에 다름 아닙니다. 제발 우리말 사랑하는 포스터를 만들 수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