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이나미 기자] 롯데백화점이 영어광고에 열을 올리더니 이젠 현대백화점도 영어사랑에 동참합니다. 그것도 롯데백화점을 따라서 KOREA GRAND SALE이라고 똑 같이 올렸습니다. 흉내 낼 것이 없어서 영어광고를 흉내 내나요? 그뿐만이 아니라 현대백화점은 한술 더 뜹니다. BUYERS SELECTION, HOT PRICE WEEK, BIG 3 FAIR, EVENT, BENEFIT 등 온통 영어투성이입니다. 이 정도 써야 롯데백화점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좋은 것을 따라하지 않고 우리말 사랑이 아닌 영어 사랑에 목매달고 따르는 것은 보기 좋지 않네요.
[한국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지하철에 있는 소화기함입니다. 그런데 설명이 한자말로만 되어 있습니다. 이 소화기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인데 쉬운 우리말로 바꿔줄 수는 없나요? 먼저 투척용 소화기함은 던져서 쓰는 소화기, 소화기 사용방법은 소화기 쓰는 법, 상단 유리에 충격을 가해 깬다는 위 유리를 깬다, 화재장소 상부에 던진다는 불이 난 곳 위에 던진다라고 하면 더 좋지 않나요? 저렇게 한자말을 쓴다고 유식해지는 것도 아닌데 작은 것일지 몰라도 시민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지하철입니다.
▲ 엄마와 아이가 윷놀이를 하고 아빠는 말을 놓아준다. ▲신나게 널을뛰는 중년의 남여 ▲ 어른이 제기차는 모습을 본 아이가 흉내내기 어려운 듯 냅다 던져버린다. ▲ 한 아이가 힘차게 굴렁쇠놀이를 하고 있다. ▲ 연인이 다정하게 투호놀이를 한다. ▲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운현궁을 둘러보다가 잠시 기자를 위해자세를 취해준다. [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 한가위를 보내고 오늘 찾은운현궁(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사가, 사적 제257호)에는 민속놀이가 한창이었다. 운현궁 뜰에는 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려 나들이 나온 시민들의 즐거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윷놀이, 널뛰기, 투호놀이, 굴렁쇠놀이, 제기차기 따위와 같은 놀이에 여념이 없는 시민들의 표정 또한 밝아 보였다. 엄마와 아이, 할아버지와 손자, 부부 사이는 물론 다정한 연인들이 운현궁 뜰 구석구석에서 민속놀이의 즐거움에 빠져든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엄마와 아이가 윷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이 아빠는 즐거운 마음으로 말을 놓아주고, 서툰 아이가 널을 뛸 수 있도록 엄마는 손을 잡아주는 모습도 정겨웠다. 한편에서는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한복을차려입고 운현궁 뜰에서 연신 사
[한국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영어로 광고하기에 도가 튼 롯데백화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영어로 광고했습니다. KOREA GRAND SALE이랍니다. 그러면서 한글로 대한민국을 쇼핑하라고 토를 달아놨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라구요? 무슨 얘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외국인이라고 더 이해하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롯데 신동빈 회장이 국회에 나와 롯데는 한국기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한국기업답게 우리말을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한국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일간지에 국제농업박람회 광고가 났습니다. 그런데 농업을 농UP이라 써놓았네요. 우리의 농UP, 희망의 농UP이라나요? 우리말에 영어를 붙여놓으면 멋진가요? 아니면 외국인도 이해하기 쉽나요?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우리말을 훼손하면 국민은 어떻게 합니까? 제발 사대주의 근성을 버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문화신문=정석현 기자] 사실 그것은 우리 종가가 대단한 철학을 가졌다기보다 이웃과 함께 살아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로 답할 수 있습니다. 관동지방은 호남지방에 견주면 땅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산이 많은 지역적 특성상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흩어져 있는 땅에 농사를 지으려면 농민들의 도움이 절대적이고, 또 그들을 믿어야만 합니다. 농민들이 굶어서야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극심한 흉년이 들면 곳간을 모두 열어야 하고 그래야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김영조가 지은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도서출판 얼레빗)》에 나오는 강릉 무경 이내번 종가 후손 선교장 이강백 관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선교장이 있기까지 이웃과 함께 살아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정신이 고스란히 배인 이야기다. 한국에 수백 년 내려오는 종가는 많다. 하지만 수많은 종가들 가운데 나눔을 실천했던 종가는 그리 많지 않다고 김영조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나눔을 실천한 기준으로 곳간을 열어 굶는 이들을 구휼했는가, 사재를 털어 교육사업을 했는가, 재산이나 온 몸을 바쳐 독립운동을 했는가에 두고 2013년부터
[한국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선조 이연의 용안이 일그러졌다. 추악한 권력이라고 했느냐? 올바로 사용하는 권력은 아름답습니다. 길을 잃은 권력은 혼란스럽습니다. 백성을 기망(欺罔)하는 권력은 추악한 것입니다. 백성을 속인다고 반드시 추악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아닙니다. 논어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란 말이 있습니다. 도에 벗어나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마음이 흡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백성을 속이는 것은 도에 어긋난 것이니 그것은 욕심이며 야욕입니다. 광해군의 날카로운 지적에 선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순신이 주목 받게 된다면 왕권이 동요하게 됨을 그대는 모른다. 광해군은 입술을 깨물며 아뢰었다. 그 때문에 파행의 권력을 일삼게 된다면 먼저 민심이 요동칠 것임은 왜 모르십니까? 민심은 임금의 권력으로 장악할 수 있다. 착각이옵니다. 착각이라고? 백성들을 제압할 수 없는 권력이라면 그것은 이미 권력이 아니다. 그러나 이순신이란 놈은 권력으로도 쉽게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자를 따르는 권력 또한 매일매일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순신과 승부를 벌려야 한다면 당당하게 하옵소서. 소자가 아바마마를 적극 지원하겠나이다. 세자가? 광
[한국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선조는 용상에서 일어나서 몸소 계단을 내려와 세자를 마주했다. 천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선조와 광해군. 아버지와 아들이 바로 지척 간에 만났다. 눈앞에는 아버지의 눈과 코, 입과 수염이 맞닿을 듯 있었다. 얼음덩이처럼 싸늘하게 가슴을 압박하던 아버지 선조의 두려움이 봄눈 녹아 흐르듯이 사라져 버렸다. 너에게만 고백하마! 아들 광해군에게만 고백한다는 고백이 광해군의 얼어붙은 심장을 다시 요동치게 만들었다. 하시옵소서. 조선임금 선조 이연이 광해군의 귀에 속삭였다. 애비는 이순신이 두렵다. 임금이, 자신의 권위를 모조리 내던지고 자식에게 호소했다. 임금과 신하로서가 아닌 개인 그대로의 선조 이연은 몹시 지치고 고통스러웠으며 외로웠다. 광해군의 눈에서 핏물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익호장군도 그리 하셨던 것입니까? 선조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느냐? 소자의 유일한 장수였습니다. 그래. 과인이 예민하였다. 광해군의 분조 활동으로 선조의 명성을 능가하자 왕은 또 두려웠다. 왕권을 이양(移讓)하라는 백성들의 요구가 들려오자 선조는 그 조짐을 애초에 제거해버릴 요량으로 광해군의 남자 김덕령을 제
[한묵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임진전쟁이 발생하여 피난도중에 황급히 세자에 책봉되어 분조(分朝=임시로 왕권을 나눔)의 책임자로 활략하였으며 무군사(撫軍司)의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나이는 스물 셋이었지만 정치적 경험과 식견은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세자 광해군 역시 현재는 선조에 의해서 상당한 견제를 받으며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세자께옵서 수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신은 일본 재침략에 대항하기 위해서 세자 저하를 동궁 전에서 풀어드려 경상과 전라지방에서 군량과 병기의 수집 등 활동을 하시도록 윤허(允許)를 받겠나이다. 거래였다. 그래요? 광해군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런 기회가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동궁전에서의 갑갑함과 조급증은 거의 정신병자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만일 그녀 장예지가 아니었다면 진작 포기 했을지도 몰랐다. 우연히 청계천 수표교에서 그녀를 만나 데리고 왔었고, 장예지는 급격히 우울해 하고 사나워지는 광해군에게 누이처럼 부드럽게 다독이며 속삭여 주었다. - 세자 저하, 마음을 비우소서. 비어있는 그릇에는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나이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옵니
[한국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일간신문에 LCC 뜨는 곳, 景氣도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습니다. 그런데 LCC가 뭣인지 아는 독자는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이를 설명하려 했는지 LCC 아래에 저비용 항공사라고 토를 달아놨습니다. 여기에 기사 본문에 가면 저비용항공사(LCCㆍLow Cost Carrier)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놓았네요. 바로 그동안 우리가 익히 말하고 들어왔던 저가항공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비용항공사라는 말보다는 일반인에겐 저가항공사라는 말이 더 쉽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제목에도 LCC라는 영문자 약자를 써서 잘난 채 하는 대신 그냥 저가항공사라고 하면 굳이 토를 달 필요 없이 누구나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라면 저가항공 가면 경기도 뜬다라고 쓸 것입니다. 언론이 앞장서서 우리말을 파괴하는 행태가 참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