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전수희 기자] 추석(秋夕)이라는 한자말 보다는 '한가위'라는 좋은 우리말로맞이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그린경제/얼레빗=진용옥 명예교수] 들어가는 말 광화문 현판을 원점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2014년 5월 7일 문화방송 보도를 접하면서 그리고 숭례문 화재와 부실 복원을 목격하면서 허탈감을 넘어 절망감이 앞선다. 글쓴이는 2005년 디지털 복제는 문화재 복원이 아니다.는 칼럼을 중앙일보에 썼다. 수많은 복제품이 남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문화재청장이 사진 원판 영상을 디지털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문화재 소위의 복원 쌍구 모본 방식 변경 청장이 갈리게 되자 현판 복원 방식도 변경 되었다. 디지털 복원은 문제가 있으므로 사진 원판 영상을 임태영 서체와 근접하게 복원한다고 하였다. 이른바 쌍구 모본(雙鉤模本) 방식이다. ▲ 광화문 현판 복원 소위원회 회의록(2010년 2월 24일) ▲ 동경대 소장 일제강점기 광화문 유리원판 사진. 갈라진 틈이 보인다. 쌍구 모본이란 서체의 윤곽선을 그리고 그 안을 칠하여 채워 넣는 방식이다.쌍구 모본이란 서예의 습작단계에서 대가의 서체를 본뜨거나 탁본에서 시행하는 방안이다. 유명한 광개토대왕비문은 일본군 사코 중위의 초기탁본이 쌍구 모본 방식으로 작성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방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선전관 조영은 이미 당해본 경험이 있는지라 조심성 있게 선조에게 아뢰었다. 선조는 다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과인이 그만한 안배도 해놓지 않았겠느냐? 하오면......? 강지평에게 방책을 묻도록 하라. 선전관 조영은 머리를 조아렸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그러나 여진은 먼 길 이옵고 조선과는 왕래가 없는 적국이옵니다. 신이 목숨을 걸고 어명을 받들고자 하오니, 부디 성상께옵서는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선조의 입가에 비릿한 실소가 흘러갔다.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신하된 몸으로 감히 어떠한 요구를 올릴 수 있겠나이까. 그저 헤아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올 뿐이옵니다. 당상관으로 임명해주마. 당상관이라 함은 정 3품의 이상 품계로 중앙 정치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고위 벼슬이었다. 조영의 품계에서 적어도 세 단계 위로 승차하는 기회였다. 조영은 재빠르게 성상을 우러르며 목청껏 외쳤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 * * 조영이 마주 친 사내는 첫 눈에 봐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강두명이 소개한 장본인은 바로 오표였다. 여진을 아는가? 오표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잠시 망설였다. 여진은 그의 뿌리였고 생명이며 조국이었다.
[그린경제/얼레빗 = 이나미 기자] 제주도 '우도'로 가는 배 타는 곳에는 아직도 대합실이라고 되어 있다. 대합실(마치아이시츠, 待合室)이란 일본말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있는 판에 왜 아직도 대합실일까? 우도 배 타는 곳 이라고 바꿨으면 좋겠다.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최근 영화 명량이 개봉 한 달도 안 되어 누적 관객수 16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이와 함께 서점가에서는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왜 한국인들은 이렇게 명량에 이순신에 열광할까? 전문가들은 암울한 시기에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열풍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대열에 특별한 이순신 책이 등장했다. 바로 유광남 작가의 《이순신의 제국(스타북스)》이 그것이다. 꿈을 꾸었다. 아주 혹독한 한차례 폭풍과도 같은 꿈을 꾸었다. 조선에 참담함을 안겨 주었던 일본을 기습하고 천황을 사로잡았다. 자신을 모함하여 죽이려던 선조가 폐위되고 일본이 항복하였다. 조선의 왕조를 바꾸는 이순신의 반역이 모의되었다. 그것은 모두 죄인의 신분으로 의금부 수옥(囚獄)에 감금되어 있을 때의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이다! ▲ 《이순신의 제국 》, 유광남, 스타북스 《이순신의 제국》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하면서도 앞뒤 보지 않고 임금에 충성하는 장군으로만 알아왔다. 하지만, 소설은 이순신의 역성혁명을 얘기한다. 이순신이 일본을 기습하고 천황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 선조를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표기하느냐, 한자(光化門)로 표기하느냐의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떼어내고 새로 만들어 내건 한자 현판이 쩍쩍 갈라지면서 한글 현판을 주장하는 이들의 외침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광화문이란 현판을 처음으로 내건 이는 세종이었고 한글이 반포되기 한참 전인 1426년이었고 당연히 한자 현판이었다. 광화문 건물은 태조 4년인 1395년에 완공되었으나 이때는 남쪽의 문이라 하여 오문(午門) 또는 정문(正門)이라 불렀다. 그로부터 31년이 흐른 세종 8년(1426년)에 이르러서야 현판이 걸렸다. 물론 이때까지 현판이 아예 없었던 것인지 다른 현판이 있었는데 그걸 바꾼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1426년 음력 10월 26일에 세종은 집현전 수찬에게 명하여 근정전 앞 셋째 문을 광화라 하고, 궁성 동쪽을 건춘, 서쪽을 영추라 하여 각각 광화문(光化門) , 건춘문(建春門), 영추문(迎秋門)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때는 한글 창제 전이기도 하고 관습에 따라 한자 현판을 내건 것이다. 태조 4년 10월 기록에서 뒤에 광화문이라 불렀다.라고 한 것은 바로 세종 때부터 광화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조선의 전 영토가 사지입니다. 지금도 가토의 군대가 부산을 재침하여 북진하고 있으며, 고니시의 군대는 웅천으로 상륙하였소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의 수송선단이 바다를 넘어오고 있는 형국이요. 한시가 급합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소이다. 서애 유성룡의 간곡하고 비장한 어조가 도원수 권율의 심기를 자극하였다. 이제 물러설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도원수 권율이 입술을 악물었다. * * * 여진이다. 선조의 얄팍한 입술을 비집고 나온 단어는 선전관 조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전란이 재개 되었는데 갑자기 여진을 다녀오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은 대목이었다. 의금부에서 풀려난 후 사흘 만에 강두명의 안내를 받아 은밀히 선조를 알현한 자리였다. 여진에 누구를 만나란 어명이시옵니까? 선조는 순간적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다시금 머릿속을 정리했다. 김충선이란 작자가 이순신에게서 떨어져 나가 종적이 묘연하다. 이놈이 대관절 어디에 무엇 때문에 종적을 감춘 것일까? 상감마마, 소인에게 어서 명을 내려 주소서. 선전관 조영은 재촉했다. 여진은 사실 위험한 변방이었다. 그곳을 반드시 가야 한다면 생명에 대한 보상과 보장을 받아야
[그린경제/얼레빗=가람 기자] 남원시립국악단의 창극 광한루연가 춘향이 매회 만석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광한루원 수중무대에서 펼쳐지는 광한루연가 춘향은 최근 여름 성수기를 맞아 최대 900여명의 관객이 몰리는 등 현재까지 누적 관객 8,0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는 무료공연으로 진행된 전년도 가인춘향 공연보다도 10%이상 관람객이 증가한 것이며, 남원시립국악단에서 최초로 시도한 유료 공연으로 2,500원의 관람료를 받고 있다. 남원시립국악단의 한 관계자는 처음 시도되는 유료 공연에 대해 일부 우려도 있었지만, 관람료를 받음으로써 공연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관객들의 관람문화도 성숙해지고 있다.며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관람료가 아깝지 않도록 품격 있는 공연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남원시는 공연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미취학아동, 노인,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무료로 공연관람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남원시민, 학생, 숙박객, 단체관광객에 한 해 20~40%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 공연은 지난해 국악뮤지컬 가인춘향에 이어 문화관광부와 전라북도가 주최하는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 공모사업의 일
[그린경제/얼레빗= 이윤옥 기자] 다이소(1000원 정도의 값싼 물건을 파는 가게)에 가보니 '다시백'이 수두룩이 걸려있다. 다시란 일본말 出し(だし)에서 온 말로가다랑이나멸치 따위로 국물을 우려낼 때 쓰는 말이다. 예전에는 가다랑이(또는 멸치)를 솥에 넣고 오랫동안 끓여 체에 받쳐 국물을 냈지만 이러한 번거로움을 덜고자 부직포로 만든 얇은 주머니를 1회용으로 쓸 수있게 만들어 팔고 있는데 이것인 '다시백'인 것이다. 꼭 멸치 아니라도 찻잎 따위도 넣어 우려낼 때 쓰면 편하지만 이것을 일컫는 말이 딱히 없다보니 궁하던 차에 그냥 일본말을 들여다 쓰고 있는 것이다. 다시(일본말)+ 백(영어) 이런구조다. 일본인들은 말이 궁하면 즉시 만들어 쓰는데 견주어 한국인들은 남이 만들어 놓은 말을 그대로 받아 무비판적으로 쓰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이는 자기 나라 말글을 사랑하지 않을뿐더러 아예 그런 의식도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더구나일제강점의 뼈아픈 역사를 겪은 겨레가 광복 이후에도 계속해서 무비판적으로 일본말을 들여다 쓰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걸까? 추월(오이코시, 앞지르기), 노가다(도가타, 막일꾼), 대절버스(가시키리버스, 전세버스) , 택배(타쿠하이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신문에 두 대학교의 고가 나왔는데 모두 우리말 사랑 광고였습니다. 눈 씻고 볼래야 영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우리말 광고를 할 수 있다는걸 증명하는 것들입니다. 아래 사진들처럼 영어사랑에 혈안이 된 백화점 광고들에 견주면 역시 대학들의 지성인의 마당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