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김충선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공손히 누르하치의 강궁을 받아드렸다. 묵직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서 그의 가슴을 온통 뒤흔들었다. 이 자와 한판 도박을 벌려야 한다! 여진의 칸 누르하치의 환심을 사야만 개벽의 서막을 제대로 열 수 있는 길이 아니던가. 이순신의 나라를 위해서 전부를 바치고자 했던 젊은 장수 김충선은 강궁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성공할 수 없다면 그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천명이 조선을 굽어 살핀다면 그는 성공할 것이었다. 넌 자신이 별로 없어 보인다. 누르하치가 엷은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김충선의 아래 위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칸의 강궁을 대하는 것도 황송하온데, 심지어 지엄하신 옥체로 직접 하사 하시니 소생 몸 둘 바를 몰라 이러합니다. 김충선은 최대한 정중하게 예를 다하였다. 그따위 격식은 조선 왕의 어전에서나 뱉어 내거라. 난 자유로운 위인을 본래 숭상한다. 그대에 대해서 보고 받기로는 아주 담대하고 열정적이며 파격적이기까지 하다고 들었거늘, 어찌 이 모양이냐? 여진의 칸 누르하치는 약간은 경멸의 시선으로 김충선을 대하였다. 김충선은 상대의 돌연한 태도에 전혀 굴하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로 응대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기자] 이 쇠북과 쇠불걸이 공주 갑사에 소장되어 있던 것으로 절에서는 요사채 처마밑에 걸어두고각종 신호를 할 때 쳤다고 한다. 이를 테면 공양(식사)시간, 또는 공동 운력(노동), 회의알림 등 절간이 넓어서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부르기보다는 쇠북을 침으로써 절내 모든 곳에 있는 스님들이 알아듣고 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쇠북은 아래 받침이 해태상이며 가운데 북을 걸고 북의 주변에 청룡과 황룡이 서로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태로 만들었는데 그 섬세한 조각기법과 디자인 감각이 현대에 비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고 세련되어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불교미술실에 전시 중이다.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그린경제/얼레빗=이나미 기자] 지하철 타려고내려갔더니 비상전화가 보입니다. 그런데 비상전화 앞면에는 SOS 비상전화라고 써놓았지만 옆면을 보니 SOS INFOMATION이라고 영어로만 써놓았습니다. 비상전화는 대개 앞에서 찾는게 아니라 옆쪽에서 비상전화를 찾아 달려오지요. 그래서 옆면의 글씨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가운데 외국인이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 한국인 이용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영어를 모르면 이 비상전화는 무용지물입니다. 한국인을 위해 별도의 비상전화를 설치해놓은 것도 아니면서 배움의 끈이 짧아 영어를 잘 읽을 수 없는 할머니는 비상전화를 써서는 안 되는가요? 10여 년 전 한 인터넷신문에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본 적이 있는데 서울메트로는 여전히 개선할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시민의 안전도, 민족주체성도 없는 서울메트로를 고발합니다.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현대자동차가 동행어 사전이란 광고를 진행합니다. 그 올림말의 처음으로 첫걸음을 이야기 하네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의 첫걸음을 응원한다는 광고입니다. 참 아름다운 광고입니다. 현대자동차의이런 아름다운 마음이 계속되기를 빕니다.
[그린경제/얼레빗=이나미 기자] 신문에 연극 광고가 났어요. 그런데 연극 이름이 흔히 외국어를 한글로 쓴 것이거나 아예 영문자로 쓴 것이 많은데 우리말 연극이름으로 우리말 광고를 냈습니다. 칭찬해주고 싶네요. 아니 연극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옥에 티가 있네요. 우연이란 한자말 대신 우리말을 찾아서 썼으면 더 좋았을 것이구요 OpenRun을 쓴 것입니다. 가능하면 이것까지 우리말로 하려는 노력을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린경제/얼레빗=이한영 기자] 인사동에 나갔더니 전통거리 인사동에 어울리지 않는 가게들도 많더군요. 그 가운데는 전통찻집이 아닌 커피전문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한글보다는 영어일색으로 쓰인 간판을 달았네요.게다가 일본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일본어까지... 외국어를 쓴 게 잘못이 아니라 한글을 더 크게 쓰고 외국어는조금 작게 하면 좋지 않나요? 안타깝습니다. 다음과 같이 한글을 크게 영어는 작게 한 곳이 더 정겹지 않는지요?
[그린경제/얼레빗=정석현 기자] 가평, 춘천, 홍천, 화천, 양구, 인제의 호수문화관광권 지방자치단체들은함께 서울지하철에 광고를 했습니다. 기분좋은 권유입니다. 함께 떠나요! 그리고 우리말 광고이지요. 물론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가 쓰이긴 했지만 그건 한글 제목에 견주어 작은 글씨로 딱 한 줄입니다. 요즘 영어에 미친 광고들을 하는 지방자치단체들과는 달리 참 모범적인 광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함께 떠나보고 싶지 않나요?
[그린경제/얼레빗=이나미 기자] 흔히 말하는 다방커피를 생산, 판매하는 동서식품이 모범적으로 우리말 광고를 냈습니다. 영어 한 자없이 모두 한글로 그것도 쉬운 말로 한 광고는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광고 문구는 고맙습니다. 늘 함께 해주셔서 입니다. 감사란 한자 말 대신 고맙습니다.란 우리말을 쎘네요. 오히려 제가 '우리말 광고를 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그린경제/얼레빗=유광남 작가] 김충선의 담담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대하며 일패공주는 지난날의 그의 내력을 상기하였다. 김충선, 일본 이름은 사야가(沙也可).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2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의 장수로 바다를 건너왔다. - 임진년 4월 일본국 우선봉장 사야가는 삼가 목욕재계하고 머리 숙여 조선국 절도사 합하에게 글을 올리나이다. 지금 제가 귀화 하고자 함은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무기가 날카롭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중략) 단지 저의 소원은 예의의 나라에서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할 뿐입니다. - 사야가 김충선은 부하 장병 3천을 이끌고 조선에 투항하였다. 실로 천지가 개벽할 만한 상황이었다. 누가 그의 항복을 믿을 수 있겠는가? 임진년 초의 전세는 누가 보더라도 조선의 일방적 패배였다. 일본군의 맹공에 속수무책인 조선왕조는 몽진을 감행 하였고 불과 개전 20 여 일만에 한양이 점령당하는 수모를 당하였다.임금 선조는 조선을 버리고 명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려고까지 한 절박한 지경이었다. 그런데, 왜 사야가 김충선은 그런 막대한 힘을 소유하고 있는 일본을 배신하고 조선으로 투항하
[그린경제/얼레빗=공영춘 기자]사적197호 광릉(光陵)은 조선 제7대 임금 세조(世祖1417 ~ 1468) 와 왕비 정희왕후 윤씨(1418 ~ 1483)의 능이다. 정희왕후를 왕릉 동쪽 언덕에 안장하고, 그사이 정각을 세웠다.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의 아우인 세조는 왕이 된 후에는 국방력 강화, 직전법 실시,이징옥과 이시애의 난 진압, 경국대전의 편찬의 시작 등 많은 업적을 쌓았다. 정희왕후는 윤번의 딸로 덕종과 예종 두 아들을 낳았는데, 덕종의 아들이 9대 임금 성종이 되었다. 능침을 검소하게 하라는 세조의 유언의 따라 석실(石室)대신 회격으로 방을 만들고, 능침을 감싸는 병풍석을 없애 이후 왕릉의 새로운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홍살문을 지나면 정릉을 만날 수 있다. 정자각을 가운데 두고 왼쪽은 세조릉, 오른쪽은 정희왕후릉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丁字閣) 세조왕릉 모습 정희 왕후릉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