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은 47살 때인 음력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하고 50살 때인 1446년 9월 상한(1일-10일)에 《훈민정음》이란 책을 통해 새 문자를 백성들에게 알렸다. 1443년 음력 12월은 훈민정음 28자가 세상에 공개된, 그야말로 훈민정음 28자의 기적이 일어난 달이다. 그 기적은 세상에 57자의 단출한 기록으로 드러났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 《訓民正音》”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자(세종실록 온라인판 영인본에 의함) (번역)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본뜨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한자에 관한 것과 우리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간결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창제한 날을 남한은 반포한 날을 기념일로 삼고 있다. 분단의 아이러니이지만 이제는 남북이 연계하여 창제한 날과 반포한 날을 함께 기려야 한다. 필자는 창제한 날은 문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기자] 만세불러 그대를 보내는 이날 임금님의 군사로 떠나가는 길 우리나라 일본을 지키랍시는 황송합신 뜻 받들어 가는 지원병 .... 총후 봉공 뒷일은 우리 차지니 갈데마다 충성과 용기 있어라 갈지어다 개선날 다시 만나서 둘러둘러 일장기 불러라 만세 - 이광수 ‘지원병 장행가’ 삼천리- 위는 변절자 춘원 이광수가 일본을 ‘우리나라’라고 추켜세운 시의 일부다. 그런가 하면, 최남선은 “대동아 전쟁의 세기적 성업에 이바지하게 됨은 실로 남자로서 태어난 보람이 있는 감격이며 청년 학도들은 두 어깨에 짊어진 특별한 의무와 책임을 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대동아 전장에 특별지원병으로서 용맹한 출전을 하여 일본국민으로서 충성과 조선 남아의 의기를 바로하여 부여된 영광의 이 기회에 분발 용약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전해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 1943년 11월 20일 매일신보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가운데 일부 - 최근 이 두 사람의 문학성이 위대하다고 하여 한국문인협회가 문학상을 제정한다고 발표 한바 있다. 바로 지난달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을 가결하고 내년부터 우수 작품활동을 한 문인에게 시상하기로 했던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요즘 한글 전용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으로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이 있었고 이에 많은 논란이 일었다. 그런 때 농촌진흥청에 들어온 새내기를 대상으로 우리말 바로쓰기 교육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서 헌법소원에 대한 얘기를 해주고 새내기들이 교육 들어올 때 받은 공문을 보기로 들어 설명해주었다. 먼저 이미 보냈던 한글로 쓴 공문을 보여주었다. ▲ 농촌진흥청의 한글로 쓴 공문 그리고 한자를 써야한다는 주장처럼 한자로 바꿔 쓴 공문을 예로 들어주었다. ▲ 한글 공문을 한자로 바꿔 쓴 공문 예 이어서 한자로 써서 못 읽는 사람도 많을 테니,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한자를 한글로 다 풀어준 공문도 보여주었다. ▲ 한자를 한글로 다 풀어준 공문 예 이렇게 공문 세 장을 보여줬더니, 새내기들이 입을 쩍 벌리면서 한자를 써서 공문을 만들면 절대 안 된다고 한결같은 소리로 다짐했다. 이를 보면 한글전용에 대한 헌법소원은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 것 아닐까?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시는 날로 팽창하고 있다. 2030년까지를 도시 건설 완공 목표로 착착 진행됨에 따라 실제 거주 인구가 2015년에는 전년대비 30%이상 증가하여 2016년 3월 현재 인구 227,025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는 양적 발전에 걸맞은 세종시의 위상을 세우는 일을 좀 더 고민할 때이다.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도시다운 세종 정신으로 내실을 다지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세종과는 아무 관계없이 ‘세종’이 들어간 수많은 상호들과는 격이 다른 ‘세종’의 이름값을 해야 할 의무가 세종시에 있다. 사실 세종시는 처음부터 한글 디자인과 우리식 건물명 등을 통해 세종 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세종 정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침 이춘희 세종시장과 이충재 행복건설청장 모두 세종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물론 이 문제는 지도자 의지만으로 이뤄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세종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여 세종시의 위상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종시에 세종학 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제안한다. 세종학은 세종대왕에 대한 인물론부터 그가 남긴 업적과 계승 문제를 연구하는 일종의 융합학문으로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어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아무도 내다보지 못한 결과를 낳고는 조용히 끝났다. 우리 국민은 국회의원 300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123자리, 새누리당에 122자리, 국민의당에 38자리, 정의당에 6자리, 무소속에 11자리씩 나누어 제20대 국회를 만들었다. 이런 결과를 보고 가장 놀란 집단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겠고, 가장 놀란 사람은 대통령임에 틀림없을 듯하다. 섬겨야 마땅한 국민의 마음에는 눈과 귀를 막은 듯이 하더니 선거철이 다가오니까 국회를 손아귀에 넣어서 다음 대통령도 차지하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안간힘을 다하는 노릇이 나 같은 사람 눈에도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 저들의 욕망을 모질게 꺾고, 저들과 다른 생각으로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에게 국회를 이끌어갈 힘을 맡겼다. 이들이 앞으로 국민의 마음에 얼마나 눈을 열고 귀를 기우릴 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우선 대통령은 앞으로 남은 스무 달 쯤의 임기 동안 어떻게 새로운 국회와 손잡고 국민이 맡겨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떠날지 자못 궁금하다. 나는 정치를 모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스무 달 남짓 남은 대통령의 앞날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제넘은 생각을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에서 27년간 독립운동을 해왔습니다. 독립운동의 가장 큰 의미는 대한민족이 불요불굴의 정신과 일본 제국주의에 결코 투항하지 않겠다는 정신을 보여준 것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해외 중국에서 하루라도 존재할 수 있었고 분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본이 시종 한국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요. 위는 대만국립정치대학 후춘혜 교수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의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일제에 강제로 나라를 강탈당하고 앉아서 한숨만 쉬고 있지 않았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나라안팎에서 불굴의 투지로 일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했으며 1919년 4월 13일(원래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한 정확한 날은 11일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구성하여 광복의 그날 까지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무겁도다 국민의 혼이여/ 굳세도다 국민의 혼이여! 국민의 혼이 살아있으면 된다. 나라가 외세에 눌리면 산하는 유린될 수 있으나 그 국민의 혼은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국민의 혼이 어찌 무겁지 않으며 어찌 굳세지 않으랴. 자극을 받아 격동함이 심할수록 더욱 국민의 혼은 크나큰 힘으로 자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월 15일은 북한의 한글날인 조선글날로 훈민정음기념일이라고도 한다. 북한이 이 날짜로 삼은 것은 세종실록 1443년 12월 30일자에 이 달에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어 12월 가운데인 15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1월 15일이다. 남한은 훈민정음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낸 1446년 음력 9월 상순의 마지막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이 된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기념일을 기리는 것이 분단의 상처일 수는 있지만 훈민정음 창제일, 반포일 모두 소중하니 남북이 서로의 기념일을 존중해 준다면 오히려 통일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창제일을 언제로 정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창제일이 소중한 것만은 분명하다. 창제가 있었기에 반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는 인류 문화사에서 가장 큰 혁명이며 기적이었다. 더욱이 세종이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하는 과정에 담긴 역사적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세종대왕 어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아직도 많은 국민은 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함께 창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고등학생 중학생까지 거리에 나와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목 놓아 외쳤으나 박근혜 정부는 기어이 국무총리 황교안과 교육부총리 황우여를 내세워 쫓기듯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라는 글을 읽었고, 텔레비전들은 그것을 온 국민에게 알뜰히 보여주었다. 게다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김정배는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과녁과 걸음이며 글 쓸 사람 모으는 일까지 발도 빠르게 기자들 앞에서 밝혔다. ▲ 황교안 국무총리 현행 역사교과서에 붉은 칠을 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래서 이제는 뒷북치는 꼴이 되었으나, 아직은 첫발을 온전히 떼어놓은 것도 아니기에 한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청와대에서 나오자 여러 언론들이 시끄럽게 다루었지만, 설마 끝까지야 갈까 하면서 지켜보았으나 이제는 더 지켜볼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실 문화의 흐름조차 도무지 가늠하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 무엇보다도 나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 교육의 첫 디딤돌인 인류 문명의 흐름은커녕 우리나라 현실 문화의 흐름조차 도무지 가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이길 수가 없다. 온 세상 사람이 모두 알다시피
[한국문화신문=이규봉 교수] 지난 6일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원장이 새로 취임했다. 그는 대전시민대학이 당초의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방만하게 운영되는 교육과정을 공공성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가겠다고 밝혀 시민대학의 축소운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대전 시민으로서 그리고 대전시민대학의 학생으로서 이사 간 충남도청 자리에 대전시민대학을 세워 운영하도록 한 것은 전 시장의 중요한 업적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천여 개에 이르는 다양한 교육과정으로 많은 시민의 학업욕구를 채워준 것은 전 원장의 확고한 교육관 덕분이라 생각한다. 현 원장의 말대로 대전시민대학은 각 자치구나 대학에서 운영하는 지역평생교육기관에서 개설한 강좌들을 무분별하게 도입하여 문제점을 발생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기관에서는 인기가 없어 개설할 엄두도 못 내지만 나름 필요성을 갖고 있는 외국어라든가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과감한 개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타 기관에서 운영 불가능한 과목 지원 ▲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전경 대전시민대학은 비영리기관이고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타 기관에서 인기리에 운영하고 있는 과목들은 가능한 축소해야 한다. 대신 지역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볼 때 보존
[한국문화신문=진용옥 명예교수} 요즘 한자병기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한자말은 우리말로 순화시키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한글로만 쓰면 동음이어가 많아 뜻을 구분하기 어렵고 2000년 동안 써온 민족문화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 한자어는 419음절어에 불과하지만 4성으로 구분하여 1677음절어로 확대하고 4자성어나 오언 절구를 활용하여 27,000여 자의 의미차이를 변별해 나간다. 이에 견주어 한글은 11,172 음절이다 이를 4단계로 구분하면 44,688음절이 되어 의미로 중복되는 경우는 매우 희박하다. 양자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지난 70년 동안 합의되지 못하고 지속되는 논쟁의 근거는 무엇일까? ▲ 지난 8월 12일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초등교과서 장례식 가운데 노제를 마친 참여자들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언어교육을 겪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일본어를 국어라 했으며 한자어를 일본말로 발음하면서 공부했다. 한글을 사수한 분들은 처절하게 저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처 준비되지 못한 광복이 이루어지자 한자어는 기계적으로 일본말에서 한말글로 바뀌었다. 80% 이상은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