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는 국보 제270호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이 소장되어 있습니다.이 연적은 높이 9.8㎝, 몸통 지름 6.0㎝의 크기인데 어미원숭이가 앉아서 새끼원숭이를 안아주려고 하는데 새끼원숭이가 두 손으로 밀어내는 해학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연적입니다. 연적 모양을 보면 어미원숭이의 머리에는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의 머리에는 물을 따라내는 구멍이 뚫려 있지요. 그리고 어미원숭이의 눈ㆍ코ㆍ입과 새끼원숭이의 눈에는 짙은 철사(鐵砂) 물감으로 점을 찍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닥에는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耐火土)로 눈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으며, 바탕흙은 맑고 푸른 잿물로 전면에 곱게 발라 은은한 광택이 나타납니다. 12세기 중반 무렵 순청자(純靑磁)의 전성기에는 오리ㆍ복숭아ㆍ거북ㆍ동자 등의 소형 연적이 적지 않게 제작되었는데, 이 모자원숭이모양 연적도 그러한 연적 중의 하나지요. 청자 소품 도자기 가운데는 국보 제74호 청자압형수적(靑瓷鴨形水滴)과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 명품입니다. 그런데 이 연적에는 숨은 일화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일본 도쿄의 영국인 변호사 개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새집에 가서 잠이나 잘 잤느냐. 병풍을 보내니 몸조리 잘하고 밥에 나물을 넣어 먹어라. 섭섭 무료하기 가이없어 하노라.” 이는 조선 제18대 현종 임금이 사랑하는 고명딸 명안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입니다. 현종에게는 외아들 숙종과 명선, 명혜, 명안의 세 공주가 있었는데 두 언니가 일찍 죽는 바람에 아버지 현종과 어머니 명성왕후는 유달리 막내 명안공주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현종뿐만이 아니라 어머니 명성왕후와 오라버니 숙종도 명안공주를 몹시 아꼈으며 이들이 주고받은 한글편지에서 그 오붓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몹시 슬프고 애통스러워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예장(禮葬) 이외에 비단과 쌀ㆍ무명 등의 물건을 숙정공주의 예대로 시급하게 마련하여 실어 보내고, 갖가지 상사(喪事)에 쓰는 것을 각사(各司)의 관원들이 몸소 친히 진배(進排)하여 미진하게 되는 폐단이 없게 하라.” 이는 《숙종실록》 13년(1687) 기록으로 오라버니 숙종은 명안공주가 23살의 나이로 죽자 소복 차림으로 식음을 전폐했을 만큼 슬퍼하였습니다. 이들 가족 곧, 명안공주가 아버지 현종과 어머니 명성왕후, 오라버니 숙종과 주고받은 한글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 3대 풍속화가 가운데 신윤복의 풍속화 국보 제135호 '혜원풍속도첩(蕙園風俗圖帖)'에는 남녀의 선정적인 장면, 곧 양반ㆍ한량의 외도에 가까운 풍류와 남녀 사이의 애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었는데 이 '혜원풍속도첩‘은 <연당야유(蓮塘野遊)>, <단오풍정(端午風情)>, <월하정인(月下情人)>, <기방무사(妓房無事)>, <청루소일(靑樓消日)> 등 모두 30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가운데 ‘월하정인(月下情人)’이란 그림은 늦은 밤 담 모퉁이에서 밀회를 즐기는 한 쌍의 남녀를 그렸지요. 넓은 갓에 벼슬하지 못한 선비가 입던 겉옷인 중치막을 입은 사내와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머리와 몸 윗부분을 가리어 쓰던 쓰개치마를 쓴 여인이 초승달 아래서 은밀하게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림 가운데 담벼락 한쪽에는 "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이 안다(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라고 쓰였습니다. 당연히 정인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그림에는 담장 위로 보이는 초승달이 뒤집혔다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명절 단오입니다. 단오는 단오절, 단옷날, 천중절(天中節), 포절(蒲節:창포의 날), 단양(端陽), 중오절(重午節, 重五節)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우리말로는 수릿날이라고 하지요. 단오의 '단(端)'자는 첫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이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합니다. 수릿날은 조선 후기에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이날 쑥떡을 해 먹는데,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리'란 이름이 붙었다고 했으며, 또 수리란 옛말에서 으뜸, 신(神)의 뜻으로 쓰여 '신의 날', '으뜸 날'이란 뜻에서 수릿날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해에 세 번 신의 옷인 빔(비음)을 입습니다. 설빔, 단오빔, 한가위빔이 바로 그것이지요. 단오빔을 ‘술의(戌衣)’라고 해석한 유만공의 《세시풍요(歲時風謠)》 할주(割註, 본문 바로 뒤에 두 줄로 잘게 단 주)에 따르면 술의란 신의(神衣), 곧 태양신을 상징한 신성한 옷입니다. 수릿날은 태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이지요. 단옷날 쑥을 뜯어도 오시(午時)에 뜯어야 약효가 가장 좋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태양신[日神]을 가장 가까이 접하게 되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노들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매어나 볼까 에헤야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1930년 신불출(申不出, 1905~?)이 작사한 '노들강변'입니다. 문호월 작곡, 박부용 노래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 우리 음악사에 불멸의 민요곡으로 자리 잡은 노래지요. '노들강변'은 오케레코드사에서 음반으로도 제작됐는데 신불출은 원래 만담가로 더욱 유명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풍자와 해학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지요. 신불출은 특유의 화술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지만, 일제에 노골적으로 저항하면서 툭하면 경찰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인기 높던 그의 음반은 자주 불온작품으로 걸려 판매금지를 당했습니다. 그의 만담작품 '말씀 아닌 말씀'에는 "사람이 왜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가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자라는 말을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일본을 뜻하는 왜(倭) 자가 떠오르게 하는 중의법을 써 '왜놈을 없애야 한다'라는 뜻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불출(不出)로 바꾼 것은 '이렇게 일본 세상이 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대한 독립운동자여 단결하라! / 일체 납세를 거부하자! / 일본 물자를 배척하자! / 조선인 관리는 일체 퇴직하라! / 일본인 공장의 직공은 총파업하라! / 일본인 지주에게 소작료를 바치지 말라! / 일본인 교원에게는 배우지 말자! / 일본 상인과의 관계를 단절하자! /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 군대와 헌병을 철거하라! / 투옥 혁명수를 석방하라! / 보통교육은 의무교육으로! / 교육 용어는 조선어로! / 동양 척식 주식회사는 철폐하라! / 일본 이민제를 철폐하라!” 이는 1926년 6월 10일 순종(純宗, 재위 1907~1910)의 인산일(因山日, 임금ㆍ황태자ㆍ황태손과 그 비들의 장례날)을 기해 일어난 6.10만세운동 당시 뿌려진 격문의 하나입니다.(출처 《사회과학사전》, 이석태, 1946)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6.10만세운동 선열을 기리고 그분들의 독립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제95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식’을 10일(목) 저녁 6시 10분, 훈련원공원(서울 중구)에서 연다고 밝혔습니다. 6.10만세운동은 1919년 3․1운동,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과 함께 일제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一區耕鑿水雲中(일구경착수운중) 물과 구름 낀 가운데에 한 뙈기 밭 갈고 우물 파니 萬事無心白髮翁(만사무심백발옹) 만사에 무심한 백발의 늙은이라네 睡起數聲山鳥語(수기수성산조어) 산새들 지저귀는 몇몇 소리에 잠깨 일어나 杖藜閑步遶花叢(장려한보요화총) 지팡이 짚고 산책하며 꽃들 구경하네 이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학자 우계(牛溪) 성혼(成渾)이 벗 안응휴에게 지어준 한시입니다. 하지만 이는 안응휴에 대한 찬사(讚辭)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기 삶의 지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이 흐르고 구름 낀 가운데에서 한 뙈기의 밭을 갈고 우물을 파니 안응휴는 낮잠을 자다가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깨 일어나 지팡이 짚고 산책하며 꽃들 구경한다고 노래합니다. 이 시에 대해 허균(許筠)은 《국조시산》에서 “초탈하고 뛰어나 미칠 수가 없다.”라고 평하였고,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에서, “문장과 성리학은 그 경계(境界)에 이르면 한 몸이다. 당나라 한유(韓愈)가 문으로 도를 터득한 사람인데 성혼이 바로 그러하다.”라고 했습니다. 성혼은 “학문이란 어버이(父母)를 섬기고, 형(兄)을 따라 함으로써 당연함을 얻는 것이다. 마음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축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빗장수비'를 아실 것입니다. 이탈리아 축구 대표 팀 ‘아주리 군단’은 ‘빗장수비’로 유명하지요. 아무리 뚫으려 해도 빗장을 지른 것처럼 뚫리지 않는 수비 덕분에 붙은 별명입니다. 한옥 문에는 이 빗장이 또 다른 자물쇠 구실을 합니다. 한옥을 짓는 마지막 매듭이 빗장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 전통건축은 빗장에 공을 들였습니다. ‘빗장’은 문을 닫은 뒤 그 중간쯤에 나무나 쇠로 만들어진 긴 막대를 가로질러서 열리지 않도록 하는 막대입니다. 구멍을 파 빗장을 질러 넣어 걸리도록 덧대어 놓은 나무를 둔테(빗장걸이)라고 하지요. 빗장에는 주로 거북무늬가 많이 쓰이는데 그 까닭은 거북이 십장생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거북머리인 귀두(龜頭)는 남성의 생식기를 닮아 생명과 다산(多産), 번창의 기원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는 빗장을 풀겠습니다. / 어둡고 험한 세상 살면서 / 가리고 잠갔던 / 마음의 빗장을 풀겠습니다.” 석정희 시인은 그의 시 <빗장을 풀고>에서 이제는 마음의 빗장을 풀겠다고 합니다. 요즘 대다수 문에서 쓰는 도어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해학과 예술성이 빗장 하나에도 곁들여 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참외라는 이름에서 ‘참’의 의미는 / 그 이치를 내 따져 알 수 있다네 / 짧은 놈은 당종(唐種)이라 부르고 / 긴 놈은 물통이라 부른다지 / 베어놓으면 금빛 씨가 흩어지고 / 깎아놓으면 살이 꿀처럼 달지 / 품격이 전부 이와 같으니 / 서쪽 오이란 말과 한가지라네” 위는 조선중기의 이응희(1579-1651)가 지은 “참외[眞瓜]”라는 시인데 어찌나 토속적이고 소박한지 한 편의 풍속화 같다는 평을 듣습니다. 이렇게 자세한 묘사한 시도 있지만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참외는 의주(義州)에서 나는 것이 좋다. 작으면서도 씨가 적은데 매우 달다.”라고만 나옵니다. 또 참외는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그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부터 참외를 즐겨 먹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일제강점기에 나오던 《별건곤(別乾坤)》이라는 잡지에는 알록달록한 개구리참외, 겉이 노란 꾀꼬리참외, 색깔이 검은 먹통참외, 속이 빨간 감참외, 모양이 길쭉한 술통참외, 배꼽이 쑥 나온 배꼽참외, 유난히 둥그런 수박참외 등이 소개돼 다양한 종류의 참외가 있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밖에 쥐똥참외라는 것도 있었는데 맛이 없어 아이들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서울에 돌림병이 크게 유행하여 사람이 많이 죽는지라, 임금이 한성부에 명하여 집계하여 보니 죽은 자가 4백 57인이 되고, 또 병조에 명하여 호군(護軍) 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성문을 지키면서 사람의 주검이 문을 나가는 것을 헤아려서 아뢰라고 하였다. 좌찬성 황보인(皇甫仁)이 고려 숙종(肅宗) 때의 옛일에 따라 돌림병 귀신에게 제사지내어 예방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위는 《세종실록》 세종 29년(1447) 5월 1일 치 기록으로 서울에 돌림병이 돌아 심각했음을 얘기하면서 돌림병 때문에 귀신에게 제사지내기까지 했다는 기록입니다. 우리말로 돌림병(한자말로는 전염병)이라 부르는 병들은 《조선왕조실록》에만도 259건이 검색될 정도로 고통을 받았지요. 특히 지금은 별것 아닌 홍역 같은 돌림병에도 쩔쩔 매곤 했는데 홍역이 돌면 세 갈래 길에 짚을 십자 모양으로 깔아놓고 “벼슬떡”을 올려놓고, 마마신이 가기 전에 떡을 잘 먹고 가시라고 비손하는 이 행위를 했는데 이를 사람들은 “마마배송”이라 했지요. 그때에 견주면 의학이 엄청나게 발달했는데도 지난해부터 온 세상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로 사망자도 많이 나왔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