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관악기 가운데 가장 높고 큰 소리를 내는 악기가 곧 태평소(太平簫)이다. 소리가 크고 높아서 실내음악에는 적합지 않고 야외 음악에 주로 쓰인다. 그래서 종묘제례악의 헌가음악이나 옛 군악인 대취타에 편성되고, 풍물이나 절에서 재를 올리거나 작법(춤)에 또는 시나위 음악에도 쓰이고 있다. 태평소를 호적, 쇠납, 소이나, 쇄나, 날라리 등으로도 불렀다. 태평소 역시 소리를 내는 서(舌, reed)와 관으로 구분되는데, 소리를 내는 서의 크기는 피리에 비해 매우 작아서 2cm정도이며, 관은 윗부분은 좁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지며 나무 관 끝부분에 나팔꽃 모양의 동팔랑을 달아서 소리가 널리 퍼지도록 하였다. 전체 길이는 35cm 정도로 세로 부는 관악기의 하나이며 관은 오메, 산유자, 화류 등 성질이 강한 나무 관에 구멍은 뒤에 1공, 앞에 7공이 있어 모두 8공이다. 연주법은 피리와 거의 같으나, 피리에 비해 서가 작기 때문에 서가 모두 입 속으로 들어가는 점과 같은 음자리에서 한 음계 위아래 음을 피리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점은 다르다고 하겠다. ≪악학궤범≫에 당악기로 소개되어 있고, 율은 향피리와 같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음공
지난주에는 심상건의 1920~30년대의 공연활동이나 방송활동 이야기, 가야금산조를 비롯하여 풍류, 병창, 단가, 판소리, 시나위, 민요, 기악, 무용반주 등 취입 음반이 40여 매를 넘고 있는 점으로 당시 대중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 광복 후에 녹음한 30여분 소요의 산조가《5·16 민족상》의 본선 지정곡이 되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45년전 이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학생이 바로 심상건 산조 전 바탕을 재현하게 된 서원숙 교수라는 이야기, 심상건이 말한 풀고 죄는 맛과 음악미학의 대가 한슬릭(Hanslick)의 긴장과 이완의 표현이 맥을 같이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심상건류 가야금 산조음악이 다른 명인들의 음악과 다른 점, 즉 음악적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그 동안 국악연구자들은 심상건의 산조음악에 관심을 갖고 학위 논문을 비롯한 연구 결과물들을 발표해 왔다. 논의해 온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각 음반마다 담겨있는 산조의 가락은 대부분이 동일하거나 유사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가야금산조는 전라도제나 충청도제로 구분되는데, 충청제의 심정순 산조는 심상건과 심재덕이 이어 받았으나 맥이 끊겨 전승이 단절되었다는 점, 심상건의 4촌 동생들, 즉 심정순의 아들 딸들은 심재덕, 심매향, 심재민, 심화영 등인데, 막내동생 심화영(1913~2009)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서산에서 판소리와 춤 등을 전수하다가 타계했다는 점을 밝혔다. 그리고 심정순의 큰 아들 심재덕은 5남매를 두었는데, 그 중 막내가 대중가수 심수봉이란 이야기, 그리고 줄풍류란 거문고, 가야금, 양금과 같은 줄악기들 중심의 합주음악이란 점, 정부에서는 이리와 구례지방의 풍류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이의 보존과 전승을 관장하고 있다는 점, 국립국악원에서는 줄풍류를‘영산회상’또는‘별곡’이라 부른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 속풀이에서는 심상건의 음악활동에 관해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겉으로 들어난 1920~30년대의 일제강점기에 심상건이 활동해 온 공연내용은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소개되어 있어서 그가 어떤 곳에서 어떤 공연활동을 했는
지난주에는 심상건류의 가야금 산조와 관련하여 산조(散調)는 1890년경 판소리의 음악적 영향으로 만들어진 기악 독주곡 형식의 음악이란 점, 산조의 형식은 만(慢)-중(中)-삭(數)의 세틀형식과 맥을 같이 하는 형식이어서 시대성을 지닌 양식이란 점, 산조는 연주자의 기법이나 표출력이 최고도로 발휘되어야 하는 예술음악이란 점, 종래의 헛튼가락이라고 했던 의미는 이제 널리 확산되어 나가는 가락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산조음악의 생명은‘자유분방함’이나‘즉흥성’인데, 지금은 고정된 가락을 연주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 자주 대하고 있는 가야금산조는 전라도제나 충청도제로 구분할 수 있다. 가야금산조를 창시했다는 김창조(1856-1919)계열, 가령 김창조에서 한성기를 통해 김죽파로 이어지고 있는 산조라든가, 김창조-최옥삼-함동정월로 이어지는 산조, 또는 김창조-강태홍-김춘지-구연우로 이어지는 산조, 그리고 김창조에서 시작된 가락이 안기옥-정남희-김윤덕으로 이어지고 있는 산조라든가 김병호를 통해서 내려오는 산조 등 대부분이 전
지난 11월 22일 밤, 경기국악당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심상건류의 가야금 산조 발표회가 열렸다. 단국대 서원숙 교수가 단절위기를 맞은 심상건의 산조음악을 재현하여 청중들로부터 갈채를 받은 것이다. 서원숙 교수는 이미 국악고교 재학 때에 5·16 민족상 대통령상을 받음으로써 그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단국대와 이대 대학원을 졸업 후 본격적인 연주가로, 대학의 교수로 활동범위를 넓혀 왔다. 그는 국내외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20여회 이상 열었는가 하면, 유명 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도 십 수차에 이른다. 평생 한번 갖기도 어려운 독주무대를 생각해 보면 대단한 열정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을 했는가 하면 플로리다 대학교나 알라바마 대학교에서 교환교수를 지냈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현재도 그는 가야금 연주자들의 모임인 《금우악회》를 이끌고 있는 한편, 숨 끊어진 음악들의 재현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여류 국악인이다. 국악속풀이 86부터는 심상건류 가야금산조와 관련하여 심상건은 어떤 사람이고, 이 음악의 전승과정이
신라의 3죽 중에서 가장 작은 악기로 가장 높은 소리를 내는 악기가 바로 소금(小)이다. 서양 악기에 피콜로와 비슷하다. 소금은 주로 궁중의 합주음악에 쓰였을 뿐, 독주나 노래 반주 등에는 편성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민속음악이나 줄풍류에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창작 국악곡에서는 높은 음역을 담당하는 악기로 또는 독주악기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조선조 성종 때의 유명한 악서, 악학궤범의 악기조에는 소금의 구조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없이“소금의 제도는 대금과 같다”고 하였으며, 속악진설도설(俗樂陳設圖說)을 보면 소금은 당시의 종묘 영녕전(永寧殿) 헌가에만 편성될 뿐, 모든 속악진설에는 언제나 당적(唐笛)이 편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적이란 중국에서 들어온 작은 횡적을 말한다. 악학궤범 이후에도 당적은 문헌에 계속 그 이름이 보이고 있지만, 소금은 거의 그 이름을 찾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조 후기의 각종 의궤(儀軌)와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에서 편찬한 아악생교과철 의 악기편에도 당적의 이름만 보일 뿐, 소금은 빠져 있다. 소금은 악학궤범이후
지난 주 대금의 소개에서 지공(指孔)이 모두 6공이란 점, 그런데, 대금에는 청공(淸孔)이 하나 더 있어 중금이나 소금과는 다르다는 점, 청공은 갈대의 속청을 붙여 대금의 아름다운 떨림 음색을 만들어 내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는 점, 바람을 넣을 때에는 입술 모양이‘휘-’가 되도록 펴야 한다는 점, 위로부터 1.2.3공은 왼 손의 집게손가락, 가운뎃손가락, 약손가락으로 4.5.6공은 오른손의 집게손가락, 가운뎃손가락, 약손가락의 순으로 지공을 여닫는다는 점, 취법에는 저취, 평취, 역취 등 세 종류가 있어서 하나의 악기가 위 아래의 음색이 서로 다른 다양한 음색을 표출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소개하였다. 대금의 쓰임은 매우 광범위한 편이다. 대금은 그 청울림에 의한 음색이 일품이어서 독주 악기로 정평이 나 있다. 평조회상중에서 상령산이나 또는 청성잦은한잎과 같은 곡은 대금의 독주곡으로 유명한 곡들이다. 독주 음악뿐이 아니다. 정악 전반의 합주음악에도 대금의 자리는 매우 크다. 대금은 정악에만 편성되는 악기가 아니다. 민속악의 대소합주에도 대금이 빠지면 음악이
지난주에는 신라의 3죽(三竹)이 대나무로 만들어진 세 종류의 악기, 즉 대금(大), 중금(中), 소금(小)이라는 이야기와『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만파식적(萬波息笛) 이야기를 하였다. 산 위의 있던 대나무 한 그루를 베어다가 적을 만들어 불었는데 가뭄에는 단비가 내리고, 장마는 그치며, 바람이 잘 뿐만이 아니라 전쟁 시에 이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전염병이 돌 때에 이를 불면 괴질이 사라져 이를 국보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 대금의 재료는 쌍골죽(雙骨竹)을 제일로 치는데, 그 이유는 살이 두텁고 단단하기 때문에 소리가 맑고 알차며 수명 또한 오래가기 때문이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대금은 몸체에 뚫려 있는 음공을 손가락으로 열고 막고 하면서 가락을 만들어 나가는 옆으로 부는 관악기이다. 이러한 음공을 다른 이름으로는 지공(指孔)이라고도 부르는데, 모두 6공이 있다. 이는 중금이나 소금도 동일하다. 그런데, 대금이 중금이나 소금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취구(吹口), 즉 입김을 넣어 소리를 내는 부분과 첫째 지공 중간에 청공(淸孔)이 하나
지난 시간에는 한문으로 된 7언, 또는 5언으로 된 시에 고저를 넣어 부르는 노래가 곧 시창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판소리 춘향가 중 이도령이 어사(御使)가 된 후에, 거지 행세를 하면서 변 사또의 잔치석상에서 부르던 7언 절구의 유명한 시(詩)를 읽었다. 이러한 시 한수는 암기해 두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금준(金樽)미주(美酒)는 천인(千人)혈(血)이오, 옥반(玉盤)가효(佳肴)는 만성(萬姓)고(膏)라. 촉루(燭淚)낙시(落時)에 민루(民淚)락(落)이요, 가성(歌聲)고처(高處)에 원성(怨聲)고(高)라. 7언의 한문시를 노래하던 계층은 아무래도 글공부를 좋아하던 지식인 계층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어려운 한문시를 외우고, 쓰고,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에 고저를 붙여 읽는 독서성(讀書聲)을 익혔을 것이고, 여기에서 더 음악적으로 발전된 형태가 시창(율창)이라 하겠다. 벽파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에는 경포대(鏡浦臺), 만경대(萬景臺), 촉석루(矗石樓), 만류무민(挽柳武愍), 영풍(詠風), 신추(新秋), 관산융마(關山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