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북5도청 공연장 무대에 올렸던 서도소리극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을 소개하였다. 추풍감별곡이란 가을바람은 찬데 과거 연인과의 사랑을 각별하게 느껴 부르는 감상적인 노래로써 원래는 서도지방의 대표적인 송서였다. 원본의 주제는 ‘김채봉’과 ‘장필성’이라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줄거리는 아버지의 빚을 해결하고자 기녀가 된 채봉이가 필성을 생각하며 추풍감별곡을 지어 구슬프게 불렀는데 그 사연을 알게 된 감사가 두 사람을 맺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내용을 소리극으로 꾸며 고향을 두고 내려온 이북의 5도민들을 초청하여 공연한 것이다.
![]() |
||
▲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공연 한 장면 |
모두 6절로 된 긴 시(詩)를 노래하는데 제1절 대목은“어젯밤 부던 바람 금성이 완연하다”로 시작된다. 여기에서 금성(金聲)은 오행(五行)의 하나로 방위는 서쪽, 계절은 가을이며, 성음은 5음 중에서 제2음, 색깔은 황금색으로 곧 가을소리를 의미하고 있다. 또한 끝부분에 나오는 “단봉(丹峯)이 높고 패수(浿水)가 깊고 깊어 무너지기 의외어든 끊어질 줄 짐작하리.”에서 단봉은 모란봉을 이르는 말이고, 패수는 대동강의 옛 이름인 점에서 이 시의 배경이 평양지방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국악속풀이 140부터는 경기소리, 또는 서도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과 관련하여 평소에 느껴왔던 점들, 창단의 필요성 등을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국립극장 산하에는《국립창극단》외에《국립국악관현악단》과《국립 무용단》이 있다. 국립극단은 10여년 전에 법인으로 독립해 나가고, 국립합창단이나 발레단, 오페라단 등도 최근에 독립 법인화하였다. 나라에서《국립창극단》을 두고 운영해 온 지는 1962년이니까 올해로 52년이 된 셈이다.
《국립창극단》이란 이름에서 <창극>이란 소리를 기본으로 하면서 연기도 하고 춤도 추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장르를 말한다. 그런데 국립창극단에서 주로 활용하고 있는 음악(소리조)은 남도지방의 판소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창극단에서 무대에 오르는 작품에는 경기지방이나 서도지방에서 부르고 있는 좌창이나 입창, 민요 등은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악계에서는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여 이야기 전개를 해나가는 형태를 창극이라 부르고 있다. 서울 경기지방의 소리에는 판소리와 같이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소리를 하면서 동작이나 연기도 하고 말로 상황을 설명해 나가는 1인 창극조의 음악을 찾기 어렵다. 최근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장대장타령>과 같은 재담소리나 <장님타령>, <발탈>이 있을 정도이다. 서도소리에는 <배배이굿>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리조들은 판소리 5마당에 비견할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 |
||
▲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공연 한 장면 |
이미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창극은 판소리의 공연환경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종의 연희양식이다. 소리꾼 혼자 여러 배역을 소화해 나가는 판소리가 2인이나 3인이 그 역할을 나누어 분창하기 시작하였고, 그 뒤로는 배역마다 역할을 맡은 소리꾼들이 나누어져 소리 한바탕을 이끌어오는 형태로 확대된 것이다. 창극에 관한 다양한 발전방향이나 확대보급에 관한 논의는 그동안에도 행해졌고 현재에도 행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창극 운동으로 말미암아 판소리나 남도지방의 민요를 좋아하는 상당수 애호가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경기지방의 소리나 서도지방의 소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확산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경서도 소리 역시 혼자 나와 목자랑을 한다거나 혹은 여러 명이 등장하여 획일적인 춤과 함께 기계적으로 부르는 기존의 형태로는 더 이상 관객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서도 소리에도 이야기가 있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소리극 형태가 필연이라는 말이다. 아무래도 소리극 형태의 공연물은 등장인물이 다양하고 이야기의 전개가 있어서 극적인 재미가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노래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경서도소리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을 잘 알면서도 소리극을 무대에 올린다고 하는 문제가 워낙 시간과 열정, 인적자원, 그리고 경제적인 후원 등을 요하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개인이 쉽게 기획하고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국가나 지방정부, 또는 예술을 이해하는 기업의 후원 없이 소리극을 기획한다는 점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경서도 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을 무대에 올리는 열성 있는 명창들이나 단체들이 있어 화제를 모은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달걀로 바위를 깨려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나 경서도 소리의 확산을 바라는 애호가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