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충남 서산의 여류 시조명창, 황옥순(黃玉淳) 씨가 오는 12월 11일(수) 오후 2시 서산문예회관에서 그의 여덟 번째 시조창 발표회를 갖는다. 시조창의 보급이나 확산을 강조해 온 필자의 입장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시조창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본다.
한국의 3대 전통 성악으로 가곡, 판소리, 범패(梵唄)를 꼽는다. 아마도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그 규모가 방대하며 예술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로 전문가 집단에 의해 전승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곡은 조선조 중기 이후, 전문가들의 노래에서 일반인들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평이하게 만든 시조창이 파생되어 널리 불리기 시작했다. 전통사회에서는 유행가처럼 널리 불렸던 시조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는 템포가 느리고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고 있다. 자생력이 약한 노래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판소리는 이야기가 있고 소리와 아니리 발림을 섞어가며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소리여서 점점 애호가가 확산되는 추세이며, 범패는 불교의식과 관련하여 그 전통이 분명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이에 반해 시조를 즐기는 애호가들은 한정되어 있다. 노인층에 집중되어 있으나 이 역시 점점 엷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며 젊은이들이나 어린 학생들에겐 거의 외면을 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서 공공기관의 특별한 배려가 없거나, 후원조직이 없다면 시조인 스스로 음악회를 만든다거나 기획사들이 상품가치를 인정하지 않아 음악회가 성사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열악한 음악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간혹 열의 있는 전문인들에 의해 가곡이나 시조의 발표회가 열리고 있어 뜻있는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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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 충남 서산지방의 여류 시조인 황옥순 명창이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예부터 서산지방은 시조창이 성하던 지방이었다. 지금도 시조창을 즐겨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8회 시조창 발표회를 열고 있는 황옥순 명인은 어려서부터 부친이 즐겨부르던 시조창을 들으며 자랐다.
평소 시조창을 즐겨 부르던 아버지는 동네 애호가분들을 집에 자주 초대해 사랑방 음악회를 열었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황옥순은 다과상 심부름을 하면서 자연스레 시조창의 가락이며 장단, 창법 등 분위기를 익히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태안의 시조꾼이었던 안덕순 선생을 소개해 주면서 본격적으로 시조창 배우기를 권했다고 한다. 그래서 태안의 안 선생집을 드나들게 되었고, 그 집에서 전국의 유명한 시조 명인들을 알게 되었는데, 부여의 시조 명인 소동규(충남 무형문화재 내포제시조 초대 예능보유자) 선생도 그때 만나게 되었다. 이후 황옥순은 부여의 소동규로부터 10여년 이상 내포제 시조창을 익혔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아버지나 안덕순이 즐겨 부르던 시조창은 서산이나 홍성 등 윗내포 지역에서 부르던 시조형태일 것이고, 부여의 소동규에게 배운 시조는 아랫내포제 시조가 아니었을까 짐작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생활속에서 익힌 그의 시조창은 그가 살아오면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언제나 함께 해 온 삶의 한 부분이요 반려자가 된 것이다.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진 시(詩)자체의 내용도 좋거니와 그 위에 장단을 넣고 선율을 얹어 창으로 부를 때의 매력은 순수했던 그녀를 더더욱 깊은 감동으로 빠져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는 남들에게서 찾기 어려운 순수한 정감이나 열정이 돋보이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40여 년간 그녀가 얼마나 이 길에 열심히 정진해 왔는가 하는 점은 각종 권위 있는 대회에서의 입상 경력이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소월 황옥순 시조집>이라는 음반이 전국의 가객들이나 전문가들, 그리고 애호가들에 의해 호평을 받고 있는 점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항상 조용하게 자기의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황옥순 명인을 볼 때마다 단아하게 앉아 자연지세의 멋을 드러내는 격조있는 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연상된다. 이번 무대에서는 가곡의 여창우락을 비롯해 가사와 시조창 10여수 등 정가의 진면목을 선보인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아름답고 유장하게 흘러가는 가락을 통해서 각기 다른 계층을 하나로 묶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상대와 내가 서로를 인정하고 신뢰하게 만드는 훈훈한 사회분위기를 이끌어 내는데 한 몫 해 주리라 믿는다. 황옥순 시조명창을 통해 서산지방은 물론이고, 충남의 정가문화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