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악속풀이 41에서 필자는 김 모 씨의 항아리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가치를 잘 모르고 지내다가 타인의 충고를 받고 그 유산이 매우 귀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 과정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소개한 이유는 ‘김 모씨의 항아리’를 김 모씨=한국인 항아리=국악 즉 ‘한국인의 국악’으로 비유하여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와 악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인격을 도야하며 자기완성을 실현코자 했던 할아버지 시대의 국악은 귀중한 백자(白磁)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집까지 잃고 가난 속에 푸대접을 받던 아버지 시대의 국악은 깨져버린 항아리처럼 끊기고 잘리는 아픔을 견뎌 내야만 했던 식민시대였다. 일제는 우리 고유의 음악문화를 말살하려 들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은 마지막 항아리처럼 힘겹게 그 명맥을 오늘에 잇고 있는 것이다. 이 힘겹게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음악이 많은 한국인이 알고 있듯, 그렇게 볼품없고, 수준 낮은 과거의 낡은 음악인가 아닌가 하는 점을 확인하고자 세계의 유명 감정가들을 만나 보기로 하겠다. 먼저 미국의 유명한 작곡가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김 모씨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대강 이러한 내용이었다. 그의 집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조그맣고 흰 항아리가 하나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의 집에는 이런 종류의 항아리들이 몇 개 있었다고 한다. 가족 중에서는 특히 조부가 그 물건에 관심이 많으셔서 매일같이 그 항아리들을 닦고 매만지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누가 손이라도 댈라치면 걱정을 하시며 지극 정성으로 보존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부께서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의 사업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의 가족은 작은 집,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다가 드디어는 남의 집 방 한 칸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사는 동안 가족들의 관심 밖으로 돌려진 항아리들의 보관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조부께서 그토록 아끼시던 항아리들은 관리소홀로 하나 둘 깨지고 조각이 나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한 개뿐이다. 가장이 된 김씨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고 생활
문화재의 지정 또는 인정의 해제와 관련된 조항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그 지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보유자가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 등으로 인하여 당해 문화재의 보유자로서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유자의 인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보유자가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와 “특별한 사유”가 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가? 만일 보유자가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전수활동이나 발표공연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당연히 명예보유자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사유에 속하는 경우는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 ‘전수교육을 게을리하여 진전이 없는 경우’ ‘의무사항인 공개발표를 이유 없이 안 하는 경우’ ‘보유자로서의 품위를 손상하거나 추락시키는 경우’ 등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인정을 해제시켜야 마땅하다. 개인종목이나 단체종목 구분 없이 1년을 주기로 보유자들의
무형문화재의 새 종목을 지정하고 이에 대한 보유자 인정이 내정되었다면 이를 일정기간 관보에 고시해야 한다.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결정사항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기본 취지가 간혹 악용되는 일도 있다. 의도적으로 이해(利害)관계에 결부시키는 집단이나 개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조사위원이나 기량의 평가위원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배가시킨다면 자연스럽게 해소되거나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도 문제가 생긴다면 재조사를 통해 확인과정을 거치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서연호의 “제도와 운영, 대폭 개혁해야 한다”는 글을 보면 무형문화재의 조사나 심사과정이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미 지정된 모든 문화재들은 재심사를 통해 재지정되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부실하고 변질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속히 재지정을 통해 대폭 정비하지 않는 한, 무형문화재의 난맥상은 가속적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국내외적으로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그 전문성을 끊임없이
문화재법은 해당 문화재 종목을 원형대로 체득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예능보유자로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이 제한은 없는 것인가? 딱히 제한은 없으나 어느 정도의 연륜은 요구되고 있다 하겠다. 시행규칙 제22조를 보면, 전수교육을 3년 이상 받은 자가 이수증을 받을 수 있고 이수자가 된 다음 전수교육 조교로 올라가는 데에는 특별히 연한을 제한하지 않고 있어서 실력이 출중하고 보유자에게 인정을 받은 이수자일 경우, 빠르면 2~3년 이내에도 가능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20-30년이 넘어도 불가능한 것이다. 대략 전수기간의 두 배가 넘는 7~8년으로 잡아보고, 전수교육 조교가 된 다음, 보유자가 되는 기간을 10년으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능력 있는 사람은 20년이면 보유자가 될 수 있는 체제이다. 입문 20 여년 만에 보유자가 된다는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10살에 전수자가 된 사람은 30살 전후에 보유자가 될 수 있고 20살에 시작한 사람이라도 40살 전후에는 보유자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가정이므로 실
중요무형 문화재의 기·예능 보유자의 인정기준은 첫째도 둘째도 문화재의 예능 또는 기능을 원형대로 체득보존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보호법도 원형보존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원형의 개념이나 원형의 범주 문제는 간단치 않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어느 시대의 예술작품이나 행위를 원형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주지하다시피 전통예술 대부분은 구전심수(口傳心授) 방식으로 전승되어 왔다. 입으로 전해오는 사이에 전해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파생되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하는 변화의 범주 문제도 심각한 형편이다. 음악의 경우, 앞에서 예로 들었던 가야금산조나 거문고산조, 또는 대금산조에서 현재 지정된 유파 외에 다른 유파의 산조들은 또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지정 당시의 가락을 올곧게 이어가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지정을 받은 후에 보유자들에 의해 변화되는 상황을 또한 어떻게 볼 것인가도 문제점이다. 이미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들의 원형도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역사적
문화재 보호법 제5조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의 지정과 관련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로 중요무형문화재를 지정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보유자를 인정할 수 있으며 추가인정도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보유자로써 정상적인 전수교육을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보유자의 인정을 해제하고 명예보유자로 예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유자의 추가인정이 가능하다는 말은 보유자의 수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보유자가 기ㆍ예능의 전수교육을 정상적으로 실시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명예보유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명예보유자와 관련된 내용은 시행규칙에도 명시되어 있다. 시행규칙 제2조에 보이는 보유자 등의 인정기준은 지극히 간단한 편이다. 즉 “ 중요무형문화재의 예능 또는 기능을 원형대로 체득, 보존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단체종목도 “예·기능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이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단체”인데, 다만 예·기능의 성질상 개인적으로는 실현할 수 없거나 보유자로 인정할 만한 자가 다수일 경우에 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명예보유자는 전수교육을 정
앞에서 전수교육 조교의 지정절차와 관련된 법규를 검토해 보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해 보았다. 과거에는 전수자-이수자- 전수조교- 보유자후보-보유자의 전승구조였으나 1994년 이후, 전수조교에서 곧바로 보유자가 되는 구조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 ‘전수교육조교’의 차 상위급으로 ‘보유자후보’(이를 ‘준인간문화재’로 부름)의 단계가 있어서 조교와의 분명한 구별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전수교육조교’로 통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수교육조교’ 안에는 과거의 ‘보유자 후보’와 현재의 ‘전수교육조교’가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왜 하나의 명칭, 그것도 하위급 명칭으로 통합해 버렸는지 이유가 분명치 않다. 여기서 다시 논의하고자 하는 문제는 보유자후보제도를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선정하고 있는 ‘전수교육 조교’의 수를 확대한 다음, 이 중에서 보유자후보를 선정하고 해당 종목의 보유자 유고시, 인정 절차를 거쳐 보유자로 승격시키자는 말이다. 전수교육조교는 그 역할이 보유자를 도와 전수자들을 교육하는 일이고 ‘보유자후보’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종목은 병창에 3인, 가야금 산조에 3인이 각각 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어 있다. 가야금 산조의 경우, 19세기 말 김창조가 가야금으로 산조를 타기 시작한 이래 수없이 많은 명인이 명멸하며 그들의 산조를 남겼다. 현재 가야금산조의 유파에는 박상근류, 성금련류, 심상건류, 김윤덕류, 강태홍류, 김병호류, 최옥삼류, 김죽파류, 서공철류, 유대봉류, 김종기류, 신관용류 등등 그 외에도 여러 유파가 전해오고 있으나, 현재의 예능 보유자는 김윤덕류의 1인과 김죽파류의 2인 등 3인이 인정되어 있다. 유파마다 보유자를 인정하는 문제는 현실적으로 불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파마다 전수조교를 지정하여 각 산조의 특징을 잃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문제는 그 유파의 음악적 특징이나 문화재적인 가치가 인정되므로 적극적인 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의 체제로 이어진다면 김윤덕류나 김죽파류 등 일부의 산조만이 문화재로서의 보호를 받으며 배우려는 학생들이나 애호가가 많아 활성화될 것이고 기타의 산조 후계자들은 상대적으
무형문화재 기ㆍ예능보유자를 도와 전수교육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전수교육조교이다. 인기있는 일부 종목에서는 그 경쟁이 보통 치열한 것이 아니다. 힘든 이수자의 과정을 끝냈다는 의미와 함께 보유자가 되기 위한 직전 코스이기 때문이다. 전수교육조교는 어떠한 과정으로 선정되는 것인가. 문화재법 시행규칙 제22조 전수교육조교와 관련한 주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항. 중요무형문화재의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는 자신의 전수교육을 보조하게 하기 위하여 이수증을 교부받은 자 중에서 문화관광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조교가 되고자 하는 자를 문화재청장에게 추천할 수 있다. 다만, 보유자의 사망 또는 인정해제 등으로 추천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문화재 위원회의 해당분야 분과위원회의 위원 또는 전문위원에게 추천을 의뢰할 수 있다. 제3항. 전수교육 조교가 되고자 하는 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문화재청장이 선정하고자 하는 전수교육 조교 수의 2배수 이상을 추천한다. 제4항. 전수교육 조교를 선정하고자 하는 때에는 문화재위원회의 해당 분과위원회의 위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