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씨는 미국의 명문대학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UCLA)에서 한국음악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이다. 대학에서는 Donald Kim 교수로 알려져 있으며 미 서부지역에서는 한국 전통음악과 춤의 대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얼마 전, 그가 한국인 최초로 Durfee Foundation의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는데, 이 재단은 미국의 소수민족들이 지니고 있는 예술성 높고 학술적 가치가 있는 음악을 보존하려고 2년에 한 번씩 소수민족 음악인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제공해서 연구사업을 후원해 주는 기관이다. 그동안의 수상자들로는 일본의 샤미센(三味線) 연주자, 남미의 인디오 뮤직 연주자, 스페인의 전통기타 연주자 들이었다. 그는 연구 사업으로 약 70분이 소요되는 대곡 성금연 류 가야금산조를 한 장의 음반으로 담아 낼 것을 계획하였고 그동안 연주해 오던 가락들을 다듬어 이번에 완성하였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내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공생하고 있다. 한인 동포의 수는 약 200만을 넘는데, 그 중 LA지역에만 약 50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전통음악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있
지난주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정순임 명창은 해마다 여름, 경주 보문관광 단지 내에 있는 야외무대에《유관순 열사가》를 비롯한 《이차돈》, 《놀보전》과 같은 창극을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려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8월 초, 경상도 일대에 국지성 소나기가 예고되어 있어 가슴을 졸이는 가운데, 단원들은 수궁가를 바탕으로 마당극 개념을 도입한 《약 일래라, 토끼 간이 약 일래라》를 총연습하고 있었다. 시민들을 위한 무료 봉사였기에 하늘이 도왔는지 끝날 때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경주에서 창극이 공연될 수 있는 배경은 정순임의 열의와 경상북도의 지원, 그리고 그를 돕는 스태프와 제자들의 의욕이 충족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극을 오페라 혹은 가극이라 부른다. 창극은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이다. 경기소리나 서도 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극은 창극이라 부르지 않고 경서도 소리극이라 부른다. 창극의 기본은 판소리이다. 소리가 어느 정도 익어야 창극이 가능한 것이다. 소리가 익지 않으면 아무리 연기가 훌륭하고 사설을 재미있게 옮긴다 해도 가슴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정순임은 제자들에게 소리공부를 가장 중요하다고
지난 7월 초, 중국 연변에서는 한국전통음악학회와 중국 연변예술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13회 전통음악교류회가 열렸는데, 학술 토론과 공연 교류 행사에 국내 유명 교수들과 명인명창 40여 명이 참가하여 교류회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긴 바 있다. 이 행사에 참가했던 판소리 명창 정순임 씨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을 실연하였는데, 소리도 소리이려니와 멋들어진 발림(사설에 맞는 몸동작)으로 객석의 열띤 갈채를 받았다. 중국의 연변지역이란 곳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중조(中朝)변경지역이다. 폭 30~40m의 두만강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환상적인 푸른 물이 아니라 뿌옇다 못해 완전히 죽어 버린 강이 되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인 중국의 도문 시와 남쪽인 북한의 남양 땅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이다. 이 연변지역은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언어나 음식의 불편이 거의 없다. 거리의 간판은 모두 한글을 먼저 쓰고 밑에 한문을 달아 무엇을 하는 건물인지 무슨 물품을 파는 곳인지 알 수 있어 딴 나라 같지 않고 친숙하다. 연변은 전통문화를 비롯해 여러 방면으로 북한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그
18. 공자는 정(鄭)나라의 음악을 미워했다 지난주 속풀이 17에서는 정악(과거 아악이라고 부르던 음악)과 민속악의 용어를 설명하면서 양자의 관계는 상하의 개념이나 우열의 대비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음악적 환경이나 성격, 또는 표현방법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 한국 전통음악의 양대 산맥을 이루어 온 상대적 관계로 마치 자전거의 앞, 뒷바퀴와 같은 존재임을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아악이란 무슨 말인가? 아악이란 말은 세 가지 의미가 있는 용어이다. 첫째는 아정(아담하고 바른)하고 고상한 음악이라는 의미, 둘째는 중국 고대의 음악으로 고려조에 들어온 이후 국가의 각종의식에 쓰였던 음악, 셋째는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아악, 당악, 향악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아악이라 함은 세 번째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과거 임금이 거처하던 궁궐 안에서는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온 아악도, 당악도, 그리고 고려나 조선을 통해서 작사 작곡된 향악도 연주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국가 조정에서는 중국에서 들여 온 아악을 쓰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기존의 아악, 당악, 향악을 묶어 넓은 의미로 아악이
17. 정악과 민속악의 관계는 자전거의 앞 뒤 바퀴와 같다. 지난 금요일, 독자가 쓰는 얼레빗은 서도소리를 전공하는 학생의 글로 정악과 민속악에 관한 개인의 의견이 재미있게 소개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이를 자칫 잘못 이해하게 되면 정악은 바른 음악, 존귀한 음악이고 이에 반해 민속악은 바르지 못한 음악, 저속한 음악으로 이해하는 독자가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양자는 우열의 개념이 아니다. 정악은 음악을 표출하는 방법이 민속악에 비해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매우 단아하게 들린다. 그래서 예부터 아정하다는 의미로 아악(雅樂)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아악이라는 용어 대신 정악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는 아정(雅正)하다는 말에서 아악이나 정악을 동의어라 보기 때문이다. 민속악은 속된 음악이라는 뜻이 아니다. 원래 ‘속(俗)’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풍속, 바램, 이어감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의 풍속이며 백성이 이어가는 순수한 음악을 뜻하는 말이다. 얼레빗 독자들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국악용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중국 당 나라에서 당의 악기나 음악이
지난주에는 어렵사리 연변예술대학과 첫 교류 음악회를 갖게 된 과정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도 연변의 조선족 음악 이야기를 계속해 보도록 하겠다. 어렵게 성사된 연변대학에서의 교류 음악회를 끝낸 그날 밤,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되어 목이 터져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우리의 만남을 서로 자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만남은 다음날 ‘들놀이’ 행사로 이어졌다. 연변대학의 교수와 직원들은 우리 일행을 위해 먹을거리를 다양하게 준비해서 강가로 나가 하루를 즐긴 것이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포 음악인들이라 해서 그런지 너무도 따뜻하게 대해 주는 그들의 태도에서 순수한 인간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90년 7월, 연변 예술대학을 방문하던 그 해, 우리의 초청을 계기로 연변예술학원은 중대한 구조 조정을 단행하였는데, 바로 음악학부 내에 민족음악과, 줄여서는 민악과로 부르는 학과를 새롭게 신설한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의 국악과혹은 한국음악과와 같은 것이다. 한국은, 1959년도에 신설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제외한다면 70년대에 와서야 겨우 한양대, 이
필자는 얼마 전, 중국 연변예술대학에서 열린 한ㆍ중 학술 및 실연 교류회에 37명의 회원과 함께 참가하였다. 국악속풀이 이번 주에는 올해로 13회를 맞게 된 한ㆍ중 실연교류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한다. 한ㆍ중 학술 및 실연 교류회는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의 전통음악학회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는 연중행사이다. 말 그대로 한국의 전통음악과 중국 연변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조선족 음악에 대한 학술적인 강연과 토론을 통해서 학문적 교류를 하고 그리고 겸해서 양쪽에서 연행되고 있는 전통음악의 실연을 통하여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연구모임이다. 이 교류행사는 200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최초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1990년 7월에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한국과 중국의 수교가 체결되기 직전, 필자는 국내 저명 국악인 20여 명과 함께 처음으로 연변 예술학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은 죽(竹)의 장막이어서 조선족 음악에 대한 정보는 접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조선족들이 어떤 악기로 어떤 노래를 부르며 지내는지? 또한, 어떤 음악인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더욱이 민족음악을 지도하고 있는 대학이 있는지? 있다면 교육체계는 어떠한
가곡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시조 이야기로 흘렀다. 향제시조의 한 갈래인 충청 지방의 내포제시조이야기도 했고, 이어서 시조에 명창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를 설명하면서 시조의 일반적 이야기도 잠시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가곡, 시조와 함께 정가(正歌)에 포함시키고 있는 가사(歌詞)이야기를 잠시 해 보기로 한다. 남창 가곡의 예능보유자인 김경배 명인의 아호가 소하(韶荷)이다. 그가 이번에 가곡이 아닌 12가사 전곡을 한 장 음반으로 담아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축하의 의미를 담아 축사를 보내면서 그 일부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은 서초구 우면동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국악원이 1950~60년대 말까지는 종로구 운니동 비원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1960년대 말, 지금의 국립극장이 서 있는 장충동 남산 중턱으로 옮겨가기 전까지가 운니동 시대이다. 이 당시 국립국악원은 일반 시민들을 위한 월례국악강습회를 10~15일간 치른 다음, 반드시 국악감상회를 원내의 작은 공연장에서 열곤 하였는데, 그 공연장의 이름이 바로 춤일(佾), 풍류소(韶)의
“시조에는 명창이 없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시조창이 너무 어려워서 경지에 오른 사람이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반대로 너무 쉬워서 모두가 명창이기 때문에 없다는 뜻일까. 시조창이라 해서 명창이 없을 리 있겠는가마는 이 말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필경 무슨 곡절이 있을 법하다. 조선조 전기부터 불리던 전문가의 노래가 가곡이라면, 이를 일반인들이 부르기 쉽도록 고쳐 만든 노래가 곧 시조창이다. 시조창을 부르기 시작한 시기를 학계에서는 대략 영조 무렵으로 보고 있다. ≪유예지≫를 비롯한 시조창의 악보는 순조 무렵부터 보이고 있는데, 이 악보를 분석한 결과 현행의 경제 평시조-京制平時調로 알려졌다. 경제란 서울 경기지방을 말함이고, 시조는 3장6구체의 시형에 가락을 얹고 장단을 붙여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경제시조의 대칭개념이 곧 향제시조-鄕制時調이다. 향제에는 지난주 소개되었던 충청지방의 내포제를 비롯하여 경상도의 영제시조와 전라도의 완제시조가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이미 고인이 된 석암 정경태 명창이 완제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시조가 전국적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어 이를 석암제시조로 부르고 있다. 어느 지방의 시조가 되었든 간에 시조는
내포제 시조란 내포지방에 전해오는 노래를 말한다. 내포지방이란 충청남도 서해 바닷가와 인접해 있는 홍성, 당진, 서산, 보령, 연기, 부여, 청양, 논산, 예산, 서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시조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창이 밝았느냐” 또는 “태산이 높다하되”처럼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형식을 취하고 있는 3~4조의 시형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포제 시조는 서해 바닷가에 살고 있는 충청 지역민들이 즐겨 불러온 고유한 시조가 될 것이다. 참고로 경상도 지역의 시조를 영제, 전라도 지방의 시조를 완제, 서울 경기지방의 시조를 경제라고 부르는 것처럼 지역에 전해오는 시조를 분류하는 이름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충청남도는 내포제 시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존과 계승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시조인들은 《충남통합시우회》를 조직하여 해마다 강습회를 열기도 하고 전국 시조창대회를 열기도 한다. 그 중심에 김연소, 이규환, 김영숙 등과 같은 시조인들이 있다. 충남문화재로 지정할 당시에는 소동규 명인이 초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고 그 뒤로 김원실 명인이 2대 보유자가 되어 도내에 각 지부를 조직, 세를 확산해 오면서 선생의 유지를 충실하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