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한 사석에서였습니다. 우리가 앉았던 술상 맞은편 TV에 당시 취임하지 얼마 되지 않은 일본 총리가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 어느쪽의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라며 사실상 2차 세계대전 당시 열강들의 침략사를 부정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일본 총리뿐만 아니라 일본 정계 유력인사들이 극우적 역사인식을 드러내고 있던 터라 일본 총리의 발언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꽤나 시끄러웠던 때였습니다.선배는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지금도 삼정사의 가람과 부속건물들은 규모가 커서 넓디넓은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 텐데 오오토모 씨가 창건할 당시에는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가질 않는다. 특히 지금은 삼정사 경내와는 다소 벗어나 있는 신라선신당까지 모두 삼정사 안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의 가람크기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의 큰절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삼정사에서 눈여겨 볼 곳은 아무래도 신라인 원진스님의 무덤인당원(唐院)과 우물 그리고 범종일 것이다. 중요문화재인 절 입구의 인왕문에서 걸어 들어가면 우리나라 대웅전에 해당하는 금당이 나오고 금당을 따라 올라가면 역대 일왕들이 태어났을 때 사용한 우물인 삼정의 영천(三井 靈泉)인 아카이야 (閥伽井屋)가 나온다. 그 길로 곧장 올라가는 길에 영종당(靈鐘堂)이 있는데 여기에는 나라시대의 종으로 알려진 커다란 범종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 지증대사 원진이 잠들어 있는 당원 입구 이 범종은 삼정사와 쌍벽을 이루던 연력사 승려들이 산문파(山門派)와 사문파(寺門派)로 갈라져 싸우던 시절에 변경이라는 스님이 윗 절인 연력사로 가지고 갔는데 종을 칠 때마다 ‘돌아가고 싶다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 견줄 만큼 드넓은 비파호수를 끼고 있는 시가현(滋賀県)은 예로부터 물이 좋아 기름진 옥토가 많고 쌀이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다. 이곳에 삼정사와 백제사 등 천년 고찰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천년 고찰과 더불어 가을철 단풍으로는 일본 최고로 알려져 있어 가을철이면 숙박시설이 동이 날 정도로 일본 전국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 삼정사 본당에 한무리의 답사단이 참배 중 삼정사(三井寺, 미이데라)가 자리한 시가현(滋賀県) 오오츠(大津市)는 천년고도 교토 동쪽에 자리하며 고대에는 오우미(近江)로 불렸다. 삼정사의 원래 이름은 원성사(園城寺, 온조지)로 이 고장은 백제인 오오토모(大友) 씨들의 근거지였다. 오오토모 씨는 《일본서기》에 따르면 아치노오미(阿知使主)의 후손인 백제계 도래인들로 황실과 깊은 관계에 있었던 호족이다. 이들이 정착한 이 일대에 천지왕은 오오츠궁(大津宮)을 세웠고 불심이 깊었던 그는 미륵보살을 모시는 절을 세우려고 발원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 원래 원성사이던 절이 삼정사로 바뀌었다.사진은 글쓴이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아들 오오토모황자(大友皇子, 후에 弘文天皇)도 숙부
[그린경제/얼레빗 = 반재원 소장] 우리가 민족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단군조선을 세운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우리민족을 지칭할 때에는 왜 단군민족 또는 단군조선족이라고 하지 않고 한민족이나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것일까? 이는 단군조선 이전에 한임의 한국(桓國), 치우의 배달국이 있어 한민족 배달민족 배달겨레가 되었고 단군조선은 그 아랫대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桓國을 환국이라 하지 않고 한국이라 발음하는 데에는 《신리대전(神理大全, 1917년 대종교의 창시자 나철이 지은 경전(經典)》에 桓은 그 음이 한이요, 桓은 태일광명(太一光明) 곧, 밝음을 뜻한다.라고 한 기록에서 연원한다. 또 인(因)은 인(仁)이며 인(仁)은 한(桓)을 보살피는 이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고어(古語)에 (桓)은 천(天)이니 한인(桓因)은 곧 천부(天父)라고 하였고, 또 한인은 하느님을 이름이니 하늘은 크다(大) 한(一)이다(桓因亦曰天神 天卽大也一也)라고 하였다. ▲ 배달나라의 치우천왕으로 알려진 도깨비기와(왼쪽), 단군영정 또 桓因을 한임이라 하여 因을 임으로 읽는 것도 또한 인因은 인仁이며 인仁은 임任으로 발음한다.라고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오사카, 나라, 교토 3도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꼽으라면 나라의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를 꼽을 사람들이 많다. 동대사라고하면 세계 최대의비로자나불과 고대보물로 가득찬 정창원 등 국보급 보물을 숱하게 간직한 절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역사가 유서 깊은 절이다. 특히 동대사 앞에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슴이 눈에 삼삼하다는 사람도 꽤 있다. 관광버스가 한 무더기의 관광객을 내려놓으면 사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는다. 사슴먹이용 과자 한 봉지를 사면 수십 마리의 사슴들과 사진도 찍고 뿔도 만져 볼 수 있다. 이래저래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나라의 동대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인연이 깊은 곳이다. ▲ 국보 동대사 대불전 《동대사요록, 東大寺要録》에 따르면 동대사의 전신은 금종사(金鐘寺,긴슈지)로 금종사는 서기 733년 백제스님 양변(良弁)이 세운절이다. 당시 성무왕(聖武天皇)과 광명왕비(光明皇后)는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었는데 유일한 한 점 혈육이던 왕자 모토이노미코(基皇子)가 생후 11개월 만에 죽자 몹시 상심하였고 이를 계기로 더욱 불심이 깊어졌다. 성무왕은 당시 일본의 60여 곳에 국분사(国分寺)를 지
[그린경제/얼레빅 = 이한꽃 기자] 의사(義士)님께서 이승을 하직하신지도 어언 81년이 되었습니다. 의사님의 육신은 일본의 가나자와에서 암장되었다가 해방된 다음 해에 고국으로 모셔졌습니다. 의사님께서 도쿄 우에노역에 도착하였을 때 이봉창의사와 백정기의사께서 마중 나오셨습니다. 의사님을 포함한 세분께서는 도쿄의 우리 청년들의 등에 업혀 이봉창의거 현장인 앵전문까지 모셔졌습니다. 청년들은 의사님의 귀에 들리게 하기라도 하듯이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했습니다. 의사님의 장례식은 원래는 1946년 6월 30일 치르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너무나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원통함을 빗물로 씻겨내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1주일이 지난 7월 6일에 서울 시민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효창공원에서 국민장이 거행되었습니다. 의사님의 옆에는 이봉창의사와 백정기의사도 함께 모셨습니다. 의사님이 존경하던 백범 선생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의사님 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때 의사님 고향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서산시 운산면과 의사님의 고향인 덕산과는 가야산을 서로 마주보는 지척의 거리입니다. 의사님께서 수덕사에 자주 오르셨죠. 저도 초등학교 때 소풍을
[그린경제/얼레빗 = 반재원 소장]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보편화되어 사랑하는 이에게 초콜릿이나 꽃을 선물로 준다. 이러한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최근에는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빼빼로데이, 블랙데이, 포도데이, 와인데이에다가 심지어는 포옹데이, 키스데이에 이르기까지 정체불명의 기념일들이 생겨났으며, 제품 생산업체는 그때마다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벌여 톡톡히 매출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대부분 상술로 만들어낸 것인데 젊은 층 사이에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어느덧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북부여기》나 《조대기》의 기록에 따르면 4월 초파일은 해모수가 나라를 세운 날로 고구려 소수림왕 이전부터 온 백성이 제등(提燈) 잔치를 벌였던 날이다. 그런데 지금의 4월 초파일은 불교잔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석가의 입멸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세일론에서는 기원전 543년 설, 태국과 미얀마에서는 기원전 544년 설, 투르노(Turnour)의 기원전 458년 설, 중성기에 의한 기원설에는 485년 설, 커닝햄(Cunnungham)의 기원전 477년 설, 그가 후에 말한 기원전 478년 설, 막스 밀러 (Max Miller)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1908년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수난처로, 해방 이후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화운동가들의 고난처였던 우리나라 독립과 민주화 역사의 현장 서대문형무소. 이 서대문형무소는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관장 박경목)으로 재탄생했다. 독립운동가들과 민주화운동가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심도 있는 역사물 전시ㆍ교육ㆍ체험 학습을 통해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개관 15돌 기념 학술심포지엄 모습 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개관 15돌을 맞아 뜻 깊은 심포지엄을 열었다. 11월 2일 늦은 2시부터 서대문공원 안 독립관 무궁화홀에서 서대문구 주최, 서대문도시관리공단 주관의 4ㆍ19혁명기 서대문형무소가 그것이다. 먼저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정일택 이사장의 인사말씀이 있었고,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의 환영사가 있었다. 문 구청장은 환영사에서 프랑스는 우리보다 짧은 피지배 역사였지만 5만의 나치협력자를 처단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친일과 단절했는지 반성해봐야 한다. 역사는 가르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고대사에 보면 가뭄이 들어 비가 계속 내리지 않아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많다. 천문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가뭄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모두 하늘의 조화로 여겼기 때문이다.특히 모내기 철에 장시간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조정에서는 용한 승려를 불러 기우제를 지내게 했는데 일본의 정사인 《일본서기》에도 기우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서기》권 24 황극왕(皇極天皇) 원년 7월 27일에 보면 백제대사 남쪽 뜰에서 불보살상과 사천왕상을 안치하고 승려와 사부대중이 대운경(大雲経) 독송했다. 28일에 비가 내렸다. 또 권 29 천무왕(天武天皇) 12년 7월부터 가뭄이 계속되었는데 백제승 도장(道蔵)이 기우제를 지내자 비가 내렸다.는 기사가 보인다. 이 밖에도 백제스님 도장이 기우제를 행한 기사가 일본서기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도장스님의 도력(道力)이 조정에서 인정 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한때 남도 7대사에 속하던 큰 규모의 대안사 본당(대웅전)의 현재 모습은 조촐하다 백제출신 도장 스님은 일본에 성실종을 전한 스님으로 806년의 태정관부(太政官符) 에 따르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