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이 금세기 조선에 저지른 최대한 죄악을 꼽는다면 단연 조선 침략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악랄한 점을 하나만 꼽는다면 문화재약탈이라고 필자는 지적하고 싶다. 능묘의 발굴이라는 내지(內地,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가리킴)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식민지조선에서는 경외감도 기피감도 없이 그리고 학자의 도덕적 양심도 없이 일어났다. 이는 조선총독부의 압도적인 지원에 의한 것으로 특히 동경제국대, 교토제국대라는 관학(官學)아 카데미에 의한 조사사업으로 발굴한 문화재는 모두 이들 대학으로 가져갔다 양심적인 시민단체가 꾸려가는 일본 고려박물관에서 발간한 《잃어버린 조선 문화유산》에서는 식민지 아래서 자행한 일본의 문화재약탈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6~8쪽에서는 세키노다다시(関野貞, 1868-1935)라는 인물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 대동강 고분 발굴조사 현장 1909년, 일본순사 감시 하에 조선인 인부들이 도굴을 하고 있으며 여성들이 물동이를 나르는 모습도 보인다. ▲ 고구려벽화가 그려져 있는 고분을 파헤쳐서 나온 현무도 1912년 한국인으로서 능묘의 도굴이라는 말에 분개를 느끼며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왕릉의
[그린경제/얼레빗 = 전수희 기자] ▲이렇게 잘 생긴 26 살 청년 조문상은 일제에 끌려가 포로감시원 노릇을 하다 전범으로 몰려 억울한 사형을 당했다. 너무나도 분주한 일생이었다 26년간 거의 꿈속에서 지내왔다 불꽃처럼 사라져버렸다 이 짧은 인생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왜 좀 더 살지 못했는가 비록 어리석고 불행한 삶일지라도 나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었더라면 좋을 것을 나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하고 내 것이라곤 거의 없음에 실망해있다 스물여섯의 조문상 씨는 그렇게 유서 몇 줄을 남기고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김완근, 문제행 등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본인 신분으로 포로감시원 노릇을 하다 전범이 되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은 비극 그 자체다. 제3회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일공동기획 특별전인 전범이 된 조선청년들 이 12월 8일까지 한국인 포로 감시원들의 기록이라는 부제로 서울역사박물관 로비에서 전시되고 있다. 역사관 로비의 아담한 전시 공간은, 1. 동원, 포로감시원이 되다,2. 전범재판, 형무소에서의 날들,3. 출소, 생활과의 투쟁,4. 동진회, 함께 나아가다,5. 망각, 풀리지 않은 매듭으로 전시실을 꾸몄는데 흑백사진과 당시 포로감시원이
[그린경제/얼레빗 = 황명하 재호주광복회장] 해마다 11월 17일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희생과 헌신을 기념하는 날이다. 순국선열이란 조국이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전사, 옥사, 사형, 자결, 피살 등으로 순국하신 분을 뜻한다.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늑결일(勒結日)인 11월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짓고 법정기념일로 제정한 것을 1997년부터 한국정부가 순국선열의날로 복원, 정부기념일로 제정하여 이날 기념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 밖에서 순국선열의 날을 기념하는 곳은 호주광복회와 카자흐스탄 두 곳뿐이다. 재호주광복회 황명하 회장은 지난 17일 재호주 광복회 주최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과 관련하여 호주일요신문 코리안 투데이 김태경 기자의기사를보내와 소개한다. (편집자 말) 지난 17일 재호주 광복회(회장 황명하)는 호주 시드니 한인회관에서 순국선열의 날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이휘진 주시드니 총영사와 송석준 한인회장를 비롯해 300명이 넘는 한인동포들이 참석해 한인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워 고국사랑 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번 행사는 1부 순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영 기자]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구나.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인간세상에서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매천 황현( 1855-1910)- ▲ 서울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이 있었다(사진 김진중 제공) 어제는 제 74주년 순국선열의 날로 국권 회복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기념식이 전국에서 있었다. 순국선열의 날은 1939년 11월21일 한국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31회 임시총회에서 망국일인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하여 올해로 74주년을 맞이했다. 정부는 이날 정홍원 국무총리와 독립유공자 유족 등 관계자 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념식을 갖고 순국선열의 높은 뜻을 기렸다. 이날 29명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이 있었으며 광복 이후 지금까지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 등 포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한 사석에서였습니다. 우리가 앉았던 술상 맞은편 TV에 당시 취임하지 얼마 되지 않은 일본 총리가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서 어느쪽의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라며 사실상 2차 세계대전 당시 열강들의 침략사를 부정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일본 총리뿐만 아니라 일본 정계 유력인사들이 극우적 역사인식을 드러내고 있던 터라 일본 총리의 발언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꽤나 시끄러웠던 때였습니다.선배는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지금도 삼정사의 가람과 부속건물들은 규모가 커서 넓디넓은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 텐데 오오토모 씨가 창건할 당시에는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가질 않는다. 특히 지금은 삼정사 경내와는 다소 벗어나 있는 신라선신당까지 모두 삼정사 안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의 가람크기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의 큰절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삼정사에서 눈여겨 볼 곳은 아무래도 신라인 원진스님의 무덤인당원(唐院)과 우물 그리고 범종일 것이다. 중요문화재인 절 입구의 인왕문에서 걸어 들어가면 우리나라 대웅전에 해당하는 금당이 나오고 금당을 따라 올라가면 역대 일왕들이 태어났을 때 사용한 우물인 삼정의 영천(三井 靈泉)인 아카이야 (閥伽井屋)가 나온다. 그 길로 곧장 올라가는 길에 영종당(靈鐘堂)이 있는데 여기에는 나라시대의 종으로 알려진 커다란 범종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 지증대사 원진이 잠들어 있는 당원 입구 이 범종은 삼정사와 쌍벽을 이루던 연력사 승려들이 산문파(山門派)와 사문파(寺門派)로 갈라져 싸우던 시절에 변경이라는 스님이 윗 절인 연력사로 가지고 갔는데 종을 칠 때마다 ‘돌아가고 싶다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 견줄 만큼 드넓은 비파호수를 끼고 있는 시가현(滋賀県)은 예로부터 물이 좋아 기름진 옥토가 많고 쌀이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다. 이곳에 삼정사와 백제사 등 천년 고찰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천년 고찰과 더불어 가을철 단풍으로는 일본 최고로 알려져 있어 가을철이면 숙박시설이 동이 날 정도로 일본 전국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 삼정사 본당에 한무리의 답사단이 참배 중 삼정사(三井寺, 미이데라)가 자리한 시가현(滋賀県) 오오츠(大津市)는 천년고도 교토 동쪽에 자리하며 고대에는 오우미(近江)로 불렸다. 삼정사의 원래 이름은 원성사(園城寺, 온조지)로 이 고장은 백제인 오오토모(大友) 씨들의 근거지였다. 오오토모 씨는 《일본서기》에 따르면 아치노오미(阿知使主)의 후손인 백제계 도래인들로 황실과 깊은 관계에 있었던 호족이다. 이들이 정착한 이 일대에 천지왕은 오오츠궁(大津宮)을 세웠고 불심이 깊었던 그는 미륵보살을 모시는 절을 세우려고 발원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 원래 원성사이던 절이 삼정사로 바뀌었다.사진은 글쓴이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아들 오오토모황자(大友皇子, 후에 弘文天皇)도 숙부
[그린경제/얼레빗 = 반재원 소장] 우리가 민족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단군조선을 세운 단군의 자손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우리민족을 지칭할 때에는 왜 단군민족 또는 단군조선족이라고 하지 않고 한민족이나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것일까? 이는 단군조선 이전에 한임의 한국(桓國), 치우의 배달국이 있어 한민족 배달민족 배달겨레가 되었고 단군조선은 그 아랫대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桓國을 환국이라 하지 않고 한국이라 발음하는 데에는 《신리대전(神理大全, 1917년 대종교의 창시자 나철이 지은 경전(經典)》에 桓은 그 음이 한이요, 桓은 태일광명(太一光明) 곧, 밝음을 뜻한다.라고 한 기록에서 연원한다. 또 인(因)은 인(仁)이며 인(仁)은 한(桓)을 보살피는 이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고어(古語)에 (桓)은 천(天)이니 한인(桓因)은 곧 천부(天父)라고 하였고, 또 한인은 하느님을 이름이니 하늘은 크다(大) 한(一)이다(桓因亦曰天神 天卽大也一也)라고 하였다. ▲ 배달나라의 치우천왕으로 알려진 도깨비기와(왼쪽), 단군영정 또 桓因을 한임이라 하여 因을 임으로 읽는 것도 또한 인因은 인仁이며 인仁은 임任으로 발음한다.라고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오사카, 나라, 교토 3도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꼽으라면 나라의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를 꼽을 사람들이 많다. 동대사라고하면 세계 최대의비로자나불과 고대보물로 가득찬 정창원 등 국보급 보물을 숱하게 간직한 절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역사가 유서 깊은 절이다. 특히 동대사 앞에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슴이 눈에 삼삼하다는 사람도 꽤 있다. 관광버스가 한 무더기의 관광객을 내려놓으면 사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는다. 사슴먹이용 과자 한 봉지를 사면 수십 마리의 사슴들과 사진도 찍고 뿔도 만져 볼 수 있다. 이래저래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나라의 동대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인연이 깊은 곳이다. ▲ 국보 동대사 대불전 《동대사요록, 東大寺要録》에 따르면 동대사의 전신은 금종사(金鐘寺,긴슈지)로 금종사는 서기 733년 백제스님 양변(良弁)이 세운절이다. 당시 성무왕(聖武天皇)과 광명왕비(光明皇后)는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었는데 유일한 한 점 혈육이던 왕자 모토이노미코(基皇子)가 생후 11개월 만에 죽자 몹시 상심하였고 이를 계기로 더욱 불심이 깊어졌다. 성무왕은 당시 일본의 60여 곳에 국분사(国分寺)를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