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국립경주박물관(관장 함순섭)은 금령총 발굴 100돌을 기려 학술토론회 ‘금령총의 주인공과 그의 시대’를 연다. 이번 학술토론회는 일제가 발굴한 금령총을 광복 이후 국립경주박물관이 다시 발굴한 성과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있어 크게 주목된다. 금령총은 1924년 조선총독부가 식리총과 함께 발굴한 신라 능묘로 현재 진행 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순회전에 출품된 보물 ‘금령총 금관’을 비롯해 국보 ‘말 탄 사람 모양 주자’, ‘황금 방울’ 등이 출토된 신라 어린 왕족의 무덤이다. 그러나 당시 일제의 발굴은 문제가 많아 국립경주박물관이 2018년부터 3년 동안 다시 발굴했으며 그 성과를 2022년과 2023년 두 권의 보고서로 펴냈다. 이번 학술토론회는 국립경주박물관이 금령총을 재발굴한 성과를 토대로 무덤 주인공과 그가 살았던 시대에 초점을 맞췄다. 학술토론회는 먼저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연구자인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과 요시이 히데오 일본 교토대학 교수가 1924년 금령총의 발굴이 한일 고고학계에 끼친 영향을 발표한다. 이어서 ‘금령총 출토품의 신고(新古)와 장례(葬禮) 시점’(김대환 국립경주박물관), ‘금령총의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보 <기마인물형토기(騎馬人物形土器)>는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문화재입니다. 1924년 발굴될 때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지금도 신라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관람객의 사랑을 받습니다. 주인과 하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각각 말을 탄 모습으로, 말 탄 사람의 옷과 각종 말갖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신라인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입니다. 어떻게 발굴했을까? 이 기마인물형토기는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금령총(金鈴塚)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5월 30일이었습니다. 금령총은 6세기 초,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쯤의 신라 무덤입니다. 금령총 주변에는 신라의 초대형 무덤이 모여 있습니다. 금령총의 북쪽에 약 15m 떨어져서 단일 무덤으로는 신라의 가장 큰 무덤인 봉황대가 있고, 서쪽에는 금관총, 서봉총, 남쪽에는 황남대총, 천마총이 있습니다. 금관이 처음으로 발견된 금관총은 금령총과 불과 50여 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1920년 금관총에서 금관이 발견되었을 때 당시 언론은 ‘동양의 투탄카멘’이라고 특필하였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금관총은 집을 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