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가정에 보관하고 있는 사초에 이름을 쓰지 않는 것은 옛 제도가 아닌 것으로 단지 사람을 투박하게 만들 뿐입니다. 의논하는 사람 가운데 만약 이름을 쓴다면 직필(直筆)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나 이는 더욱 그렇지 않습니다. 옛적에 사필(史筆)을 잡은 자는 도끼가 앞에 있더라도 이를 피하지 않고 썼습니다. 만약 강개(慷慨)한 선비라면 임금의 허물에 대하여 면전에서 옳지 않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하게 말하는 법인데 유독 가정에 보관하고 있는 사초에 대해서만 두려워하여 꺼리겠습니까? 이미 올린 것은 추서(追書)할 필요가 없거니와 아직 올리지 않은 것은 옛 제도대로 이름을 쓸 것을 영원한 법식으로 만드소서.“ 이는 《명종실록》 9권, 명종 4년(1549년) 1월 13일에 있는 기록입니다. ‘사관(史官)’이 임금의 곁에서 날마다 기록한 일기를 ‘시정기(時政記)’라고 하는데, 시정기는 매달 책으로 묶어서 춘추관에 보관하고, 시정기에 쓸 수 없는 긴밀한 이야기는 사관이 따로 적어 자기 집에 보관했지요. 사관이 집에 간직한 글과 시정기가 훗날 실록을 만드는 기초 자료인 ‘사초(史草)’가 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보인 동시에 1997년에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시대 제1대 임금 태조로부터 제25대 임금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 동안의 역사를 888권에 담은 역사서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제가 강제로 조선을 병합한 뒤 일본의 감독하에 편찬되어 일본인들의 왜곡된 기록이 들어있어서 《조선왕조실록》에 공식적으로 포함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상황을 낱낱이 기록한 실록의 기초 자료를 쓰는 이들은 ‘사관(史官)’이었고, 임금은 사관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어떤 신하도 만날 수 없었지요. 이런 사관의 역할이 워낙 중요했기에 과거 시험 합격자 가운데 가장 똑똑하고 올바른 사람을 골라 사관으로 삼았습니다. 사관은 춘추관((春秋館))이라는 관청에 소속되었고, 보통 두 명이었는데, 임금과 신하가 하는 말을 빠른 속도로 한문으로 번역하여 적어야 했기에 빠른 이해력과 필기 실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사관이 임금의 곁에서 날마다 기록한 일기를 ‘시정기(時政記)’라고 하는데, 시정기는 매달 책으로 묶어서 춘추관에 보관하고, 시정기에 쓸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