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농익은 포도넝쿨 사이를 뛰놀다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단정하면서도 넉넉하게 생긴 항아리 표면에 새겨진 능숙한 화원(畫員)의 솜씨로 보이는 무늬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합니다. 철화(鐵畫)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물감이 바탕흙[胎土]에 스며드는 성질 때문에 뭉그러진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묵화(墨畫) 같은 깊은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한쪽 면에는 포도 넝쿨 사이에서 노니는 원숭이 한 마리가 보입니다. 조선 철화백자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몸체가 어깨부터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가 허리부터 서서히 좁아져 바닥에서 약간 벌어진 모습의 항아리입니다. 입 부분은 곧고 낮게 만들었는데, 이와 같은 형태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졌던 항아리들의 특징입니다. 철화 물감을 사용해 입 둘레에 연속적인 무늬를 장식하고, 어깨에서 허리 부분에 걸쳐 능숙한 필치로 포도와 넝쿨을 그려 넣었습니다. 원래 철화 물감은 태토에 스며드는 성질이 강한데, 이 작품의 경우 물감이 너무 많이 묻어서 포도와 잎이 엉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 화원의 성숙한 필력(筆力)과 적절한 구도는 살펴볼 수 있지요. 장인(匠人)이 정성 들여 수비(水飛, 곡식의 가루나 그릇을 만드는 흙 따위를 물에 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