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흥사(大興寺)가는 길 반세기 전 비바람 속 갔던 길 (돌) 일지암 바라며 옛 생각하네 (달) 차 한잔 속 담겨있던 깨달음 (초) 선차보다 초의 차맥 이었네 (심) ... 24.12.31.불한시사 합작시 이 시는 불한시사 시벗 다섯 사람이 남도 여행 중 해남 대흥사로 들어가는 숲길 한 주막에서 점심을 하며 함께 읊은 합작시이다. 오래전 비바람 속에 이 길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걷는 길 위에서 발구하고 각자가 한 구절씩 보탰다. 남도의 산길과 세월의 기억, 그리고 차향(茶香)이 겹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즉흥의 시편이다. 승구(둘째 줄)의 '일지암(一枝庵)'은 조선 후기의 선승이자 차인인 초의선사(草衣禪師)가 머물며 차를 달이고 사유를 펼치던 암자다. 대흥사 뒤편 산자락의 작은 암자지만 조선 차문화가 다시 살아난 중요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초의는 이곳에서 차의 이치를 정리한 글을 남기고, 다산(茶山)과 추사(秋史)는 물론 당대 한양의 여러 문인과 교유하며 차의 정신을 널리 전하였다. 특히 남도 차문화의 흐름을 말할 때 다산 정약용과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강진 유배 시절의 다산은 인근 절의 승려들과 교유하며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조선 후기 차문화 부흥을 이끈 인물로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를 빼놓을 수 없다. 초의의 본명은 의순(意恂)으로,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출가하였다. 이후 해남 대흥사 일지암(一枝庵)에 머물며 선 수행과 함께 차를 통해 마음을 닦는 삶을 평생 실천하였다. 그는 《동다송(東茶頌)》을 남겨 차의 제다법과 정신을 정리하였고, 차를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수행의 길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된다. 초의선사의 삶에 깊이 새겨진 또 하나의 이름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다. 조선 후기 최고의 금석학자이자 서예가였던 추사는 제주 유배 시절 극심한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지냈다. 그에게 초의가 보내준 차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세상과 이어지는 숨줄과도 같았다. 추사는 차를 기다리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이렇게 적었다. “차 시절이 아직 이른 건가요? 아니면 이미 차를 따고 있는 건가요. 몹시 기다리고 있소. '일로향실(一爐香室)' 편액은 적절한 인편을 찾아 보내도록 하겠소.” 대흥사에 남아 있는 이 글씨는 오늘날까지도 한국 차문화의 정신적 상징처럼 회자된다. 이 편지 속 문장에는 차를 향한 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