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남쪽 지방에서 시작된 노란 산수유꽃이 서울 곳곳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봄 처녀의 화려한 나들이가 시작된 것이다. 1942년 봄 남쪽에서 서울 청년에게 이런 편지가 왔다. “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 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했는데, 마음속의 님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서울의 청년은 설레는 마음으로 경주 쪽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경주 근처 건천역에서 열차를 내리자 어떤 청년이 한지에 자기 이름을 써 들고 서울에서 온 청년을 맞았다. 둘은 곧 서로를 얼싸안았고 몇날몇일을 함께 지내며 삶과 문학을 논했다.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서울에서 내려간 22살의 조지훈이 26살의 박목월을 만난 순간이었다. 3년 전인 1939년 2월 서울에서는 《문장》이란 잡지가 창간되었다. 소설가 이태준이 편집인이었다. 표지의 문장(文章)이란 글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모은 것이었다. 1939년 《문장》 창간호에 박목월이란 시인이 시 「길처럼」으로 등장했다. 그 해 《문장》 3월호에는 조지훈이 「고풍의상(古風衣裳」, 12월호에는 「승무(僧舞)」가 추천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승 무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니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僧舞)’는 승복을 입고 추는 줌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춤꾼은 치마저고리나 바지저고리 등을 갖추어 그 위에 장삼을 걸쳐 입고 가사를 두르고 고깔을 쓴다. 염불장단에 맞추어 합장하면서 춤이 시작되고, 마지막에는 굿거리장단에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춤을 마무리한다. 오랜 세월 예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온 춤으로 한국춤의 본질인 정중동(靜中動)이 살아있다는 평가다. 곧 멈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