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라를 위해 끝내 목숨을 바친 조선의 마지막 선비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삶과 정신이 무대 위에서 되살아났습니다. 충청남도 청양군은 지난해 11월 창작 뮤지컬 <마지막 선비 – 면암 최익현>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의병정신의 뿌리를 조명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익현 선생에게 돋보이는 것 가운데는 ‘지부상소’가 있습니다. ‘지부상소(持斧上疏)’는 지닐 ‘지(持)’ 자에 도끼 ‘부(斧)’ 자를 쓰는데 곧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하로서 내가 올리는 상소가 부당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도끼로 나의 목을 치라는 것이어서 폭군이라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부상소는 고려시대 충선왕의 실정을 지적하는 우탁 선생의 상소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뒤 조선 중기 수렴청정을 하며 실권을 휘두르던 문정왕후를 궁중의 한낱 과부로 깎아내린 남명 조식의 상소, 조선 말기 병자수호조약에 반대해 올린 면암 최익현 선생의 상소까지 목숨을 건 상소들이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 임금에게 가장 격렬한 그리고 용기 있는 상소문을 올린 이는 헌종 때 겨우 열다섯 살이었던 기생 초월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항일의병운동을 이끈 의병장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7)의 옷인 단령(團領)과 머리에 썼던 사모(紗帽), 허리띠인 삽금대(鈒金帶), 목화(木靴), 호패(號牌) 등 총 5건의 유물을 국가민속문화유산 「면암 최익현 관복 일괄」로 지정하였다. * 단령: 관직에 있는 사람이 공복(公服)으로 입었던 옷으로, 둥근 깃이 하나의 특징임. * 사모: 관복 착용 시 머리에 썼던 관모로, 2개의 뿔[角]이 좌우에 달린 것이 특징임. * 삽금대: 관복 착용 시 허리에 두르던 띠의 한 종류로, 무늬를 새긴 판(띠돈)을 띠의 둘레에 붙여 장식함. * 목화: 관복을 착용할 때 신던 목이 긴 형태의 신. * 호패: 조선시대 16세 이상 남자에게 발급한 패로서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음. 이번에 지정된 5건의 관복 일괄은 19세기 후반기 복식 연구뿐 아니라 공예 기술과 재료 연구를 위한 실증적 자료로서 값어치가 높다. ▲ 단령은 최익현이 당하관(堂下官)이던 시기(1855~1870)에 착용한 것으로, 조선 후기 전형적인 당하관용 단령(團領)의 형태와 제작 양식을 지니고 있다. ▲ 사모는 양쪽 뿔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이 초상화는 석지 채용신(石芝 蔡龍臣, 1848~1941)이 그린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1833~1906)의 초상화입니다. 초상화에서 최익현은 머리부터 허리까지 그려진 반신상으로 그려졌고, 머리에는 모관(毛冠, 털모자)을 쓰고, 몸에는 심의(深衣, 신분이 높은 선비가 입던 웃옷)을 걸친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화면 오른쪽 위에는 ‘면암최선생 칠십사세상 모관본(勉菴崔先生 七十四歲像 毛冠本)’, 왼쪽 아래에는 ‘을사맹춘상한 정산군수시 채석지도사(乙巳孟春上澣 定山郡守時 蔡石芝圖寫)’라고 씌어 있어, 1905년에 채용신이 그린 최익현의 74살 때의 초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최익현은 을사년(1905)에는 75살였고, 74살 초상을 그렸다면 병오년(1904)에 그려진 초상화입니다.) 이 초상화는 채용신이 그렸던 전형적인 초상화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곧 수없이 많은 붓질로 인물의 형태와 양감, 음영 등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모관은 가느다란 세필(細筆)로 마치 영모화(翎毛畵)를 그리듯이 묘사하였고, 심의는 탁한 흰색으로 두텁게 표현하여 맹춘(孟春: 정월)에 입었을 만한 겨울복색을 그렸습니다. 조선시대 사대부 또는 유학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