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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92] 은희의 ‘꽃반지 끼고’

그대가 남기고 간 사랑 흔적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실로 오랜만에 와보는 춘천이었다. 가끔 대성리나 청평은 친구들과 다녀갔지만 춘천까지는 오지 못했다. 그동안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신군부정권이 들어서는 격랑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도 춘천은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춘천역이며 시청 부근, 명동도 모두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춘천에도 음악다방 붐이 일어 설파라든가 전원’ ‘준 다방같은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우리는 명동 어느 닭갈비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실내는 이미 빡빡머리청년들로 붐비고 있었다. 몇 번의 소주잔 부딪는 소리가 들린 후 우리 자리에서 시작된 입영전야가 전좌석의 예비 장병들을 동참시켜 그 합창소리로 골목을 채웠다. 이미 몇 해 전에 군복무를 마친 나였지만 마치 내가 입대하는 기분이었다. 한참 아래 후배가 입대하는데 주책없이 따라온 것도 모자라 제 일처럼 설쳐대는 내 꼴이 보나마나 목불인견이었을 것이다.

 

밤늦게까지 소주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우린 다음날 아침 신병훈련소로 향했다. 유월이지만 때 이른 더위 때문에 햇살이 주삿바늘만큼이나 따끔거렸다. 훈련소 앞은 벌써 석별의 정을 나누는 입대 장정과 배웅객들로 북적였고, 학업 때문에 몇 년 늦은 입대를 하는 그 후배는 군계일학처럼 의젓하게 굴었다.

 

마음 깊이 사랑하는 연인을 위로하려고 더욱 그랬으리라. 짧은 작별인사만 건네고 뒤 한번 돌아보지 않은 그는 눈물을 흩뿌리며 뛰어갔으리라. 그렇게 그 후배와 작별을 한 우리 일행은 허전한 발걸음으로 경춘선에 올랐다. 객실 안은 때 이른 여름을 만끽하려는 청춘들로 왁자지껄했다. 여기저기서 통기타를 꺼내들고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기차가 가평을 지날 즈음 후배 리이베가 뜻밖의 부탁을 해왔다. 은희가 부른 꽃반지 끼고의 반주를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옆자리의 대학생에게 기타를 빌려 아르페지오주법으로 반주를 시작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주변부터 조용해지더니 점차 옆자리가 옆자리를 잠식해나가 나중에는 객실 전체에 그녀의 노래 소리만 남았다. 청보리 물결처럼 번져나가던 그녀의 노래가 끝났을 때 그녀의 눈에선 연잎에 고였던 빗물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

 

생각난다 그 바닷가

그대와 둘이서 쌓던 모래성

파도가 밀리던 그 바닷가도

이제는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

 

정녕 떠나버린 당신이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어요

여기 당신이 준 꽃반지를 끼고

당신을 생각하며 오솔길을 걷습니다

 

 

삼다도 비바리 은희는 1951년에 태어났다. 1971년에 한민과 함께 라나 에 로스 포라는 혼성듀엣을 결성하여 저 유명한 사랑해를 남겼다. 같은 해에 한민과 결별한 은희는 곧바로 솔로로 데뷔하여 꽃반지 끼고로 스타덤에 오른다. 7만장이라는 경이적인 음반판매고를 기록한 여세로 그해 MBC 10대 가수 시상식에서 여자신인가수상을 수상하며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현재 고향에서 제주의 전통옷감인 갈옷 디자이너로 활동 중에 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