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지난 1월 21일. 한파가 몰아친, 눈발이 날린 토요일, 전국독서새물결모임 독서아카데미 초중고 학생들 37명을 데리고 한글가온길 답사를 했다. 마지막 답사지인 세종로공원의 한글글자마당에서 한글가온길의 의미를 되새기며 모두들 한글만세를 외쳤다.
세종대왕 동상을 뒤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길 건너 정부종합청사 쪽으로 오게 되면 세종로 공원이 있다. 여기에는 2011년도에 먼저 조성된 글자 마당과 2013년도에 조성된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탑이 있다.
글자마당은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자긍심을 높이기 위하여 한글 첫소리(19자), 가운뎃소리(21자), 끝소리(27자) 글자로 조합 가능한 11,172자를 재외동포, 다문화가정, 국내거주 외국인, 새터민 등을 포한 전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하여 11,172명이 각각 한 글자씩 직접 쓴 글씨를 돌에 새겼다.
마침 이때 공모하여 자신의 글씨가 뽑힌 박정애 세종연수원 대표가 참가하여 공모 경위와 글맵시를 설명해 참석자들의 손뼉을 받았다. ‘릱’이란 글자인데 ‘ㄹ’자를 태극 모양으로 하여 천지자연의 조화를 담은 한글의 가치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11,172자의 과학
한글은 모음자를 중심으로 한 글자 단위로 모아서 쓴다. 곧 모음자를 중심으로 첫소리 자음과 끝소리 자음(받침)을 모아서 쓴다. 물론 받침이 없는 글자도 있다. 가로로 풀어쓰는 영어 알파벳과 다른 이런 특징 때문에 한글은 가로뿐만 아니라 세로로도 글자를 배열할 수 있는데, 그래서 바둑판처럼 논리정연하게 배열되는 음절표가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 모아쓰기 음절 글자의 장점은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수많은 음절 글자를 생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적 원리의 실용성을 보여주는 장점인 셈이다. 한글맞춤법에서는 한글 기본 자모의 수를 다음과 같이 24자로 규정하고 있다.
닿소리(자음)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 ㄹ(리을) ㅁ(미음) ㅂ(비읍) ㅅ(시옷) ㅇ(이응)
ㅈ(지읒) ㅊ(치읓) ㅋ(키읔) ㅌ(티읕)ㅍ(피읖) ㅎ(히읗)
홀소리(모음)
ㅏ(아) ㅑ(야) ㅓ(어) ㅕ(여) ㅗ(오) ㅛ(요) ㅜ(우) ㅠ(유) ㅡ(으) ㅣ(이)
위와 같은 기본 24자 외에 기본자를 바탕으로 응용하여 확장해 만든 글자로는 닿소리 5자, 홀소리 11자가 더 있다.
ㄲ(쌍기역) ㄸ(쌍디귿) ㅃ(쌍비읍) ㅆ(쌍시옷) ㅉ(쌍지읒)
ㅐ(애) ㅒ(얘) ㅔ(에) ㅖ(예) ㅘ(와) ㅙ(왜) ㅚ(외) ㅝ(워) ㅞ(웨) ㅟ(위) ㅢ(의)
위의 자모를 가지고 계산을 해 보면 첫소리에 올 수 있는 자음자의 수는 (14+5=)19자이다. 가운뎃소리에 올 수 있는 모음자의 수는 (10+11=)21자이다. 끝소리에 올 수 있는 글자 수는 모두 27자이다.
<받침>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ㅆ
ㄳ ㄵ ㄶ ㄺ ㄻ ㄽ ㄾ ㅀ ㅄ
그렇다면 받침 없는 글자 수는 (19자×21자=)399자가 되고, 받침 있는 글자 수는 (399자×27자=)10,773자가 된다. 이를테면 ‘ㄹ’ 받침을 조합한 글자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이렇게 나온 받침 없는 글자 수와 받침 있는 글자 수를 모두 합치면 11,172자가 된다. 이러한 놀라운 숫자는 한글의 과학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만큼 말소리를 적을 수 있는 영역이 넓다는 증거가 된다.
11,172자 가운데 실제 쓰이는 글자 수는 2,500자 안팎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말소리가 없어져 쓰이지 않는 글자가 많지만, 이런 글자를 응용해 모든 인류의 다양한 말소리를 적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한글은 잠재적 실용성이 뛰어난 문자이다.
한글의 이러한 놀라운 가치를 다양한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 멋진 조각품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바로 한글글자마당이다. 한글글자마당 가운데에는 11,172명의 글자 응모 사연을 알 수 있는 큐알 코드 앱이 깔려 있는 돌도 있다. 손말틀(휴대폰)에 큐알 코드 리더를 깔고 이 돌에 대면 사연이 뜬다. 아니면 한글마루지 한글 글자마당 참여자찾기(http://urban.seoul.go.kr/Marugi/main.jsp)에 들어가 다양한 검색으로 찾을 수도 있다.
한글이 새겨진 돌은 모두 22개다. 초성 닿소리를 기준으로 배치해 놓았는데 현대 기본 자모 14자에 된소리글자 5, 지금 안 쓰는 글자 ‘ㆆ, ㅿ, ㆁ’ 세 자도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용 예 없이 글자만 새겨 놓았다.
하나의 닿소리에는 기둥 위에 닿소리를 새기고 기둥 네 면과 땅바닥 네 면 모두 8개 면에 해당 닿소리로 시작하는 글자들을 새겨 놓았다. 11,172명이 직접 디자인하여 공모한 글자를 새긴 만큼 11,172개의 글맵시가 빛이 난다. 마치 24자의 기본 자모음이 결합하여 이렇게 형형색색 빛깔을 내는 것이 만백성이 쉬운 글자로 지식과 정보를 나눠 하늘 닮은 사람이 되라는 세종이 빛나는 것만 같다.
이런 뜻깊은 사연과 한글의 위대한 가치를 담고 있는 글자마당을 서울시는 없애고 콘서트홀을 짓고 싶어 한다. 다른 곳으로 옮겨 준다고 하지만 바로 세종대왕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거늘 어디로 옮긴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