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는 당쟁에 휘말려 20여 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한 까닭에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편지로 썼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제주도로 유배가 있는 동안 쓴 편지는 빠르면 두 달, 늦으면 일곱 달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편지에서 추사는 병약한 몸으로 지아비가 없는 20여 년 동안 효성을 다하고 덕을 쌓은 이 씨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표했고, 이에 이 씨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쑥스러워 했다고 하지요.
그런 와중에서 병을 앓던 이 씨는 1842년 11월 13일 세상을 뜨고 맙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11월 14일과 18일 연이어 편지를 보낸 추사는 다음 해인 1월에야 유배지에서 이 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처가(悼亡妻歌)” 편지를 보냅니다. “내세에는 서로 바꿔 태어나 천 리 밖에서 나는 죽고 그대가 살아 나의 이 슬픔과 고독을 그대가 알았으면.“이라는 편지글 속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지아비의 안타까운 마음이 잘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