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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향기나는 황제 절이란 뜻의 분황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45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주시 분황로에 가면 사적 제548호 경주 ‘분황사터’가 있습니다. 분황사터는 신라의 대표적인 절 가운데 하나인 ‘분황사’가 있던 곳으로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분황사’는 선덕왕 3년(634)에 창건되었으며,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과 원효(元曉)가 머무르면서 불법을 펼쳤던 유서 깊은 절입니다. 또 분황사는 황룡사, 흥륜사 등과 함께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 왕경(경주)에 조성되었으며,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던 7곳의 가람 곧 칠처가람(七處伽藍)의 하나라고 하지요.

 

 

분황사터에 남아있는 유물 가운데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模塼石塔)’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으로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습니다. 탑은 넓직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입니다. 선덕여왕 3년(634) 분황사의 창건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표현된 인왕상 조각은 당시 7세기 신라 조각양식을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밖에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화쟁국사비적, 삼룡변어정(8각 석정)이라는 우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9호로 지정된 분황사약사여래입상 등이 남아있습니다. 선덕여왕이 창건한 분황사의 ''분황(芬皇)'은 '향기날 분', '황제 황'자로 향기나는 황제 절이란 뜻으로 분황사는 선덕여왕이 신라에서 처음 여왕에 올라선 것을 나라 안팎에 알리는 상징적인 절입니다. 주춧돌의 규모로 보아 당시에는 대단히 큰 규모의 절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