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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 사진에 담아야 하는 뇌운교 부근의 경치

평창강 따라 걷기 제4구간 – 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정자에서 바라보면 강 건너에 근사해 보이는 집들이 모여 있다. 이것은 ㈜선라이즈클럽밸리에서 운영하는 대규모 펜션 단지이다. 이곳에는 18평형부터 45평형까지 다양한 크기의 펜션이 있어서 여름에 가족단위 피서지로 인기라고 한다. 이 펜션 단지에 건너가기 위해서 무릉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강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길 왼편에 물고기 모양의 길 안내판이 나온다. 자세히 보니 쏘가리라고 쓰여 있다. 물고기 등지느러미가 뾰족한 것을 보니 쏘가리가 맞을 것 같다. 안내판에는 농원과 펜션들의 이름과 방향 그리고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안내판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뇌운리이다. 뇌운계곡은 뇌운리 앞으로 평창강이 흐르는 7km 구간을 말한다. 뇌운리는 《조선지지》에 ‘雷雲里’라고 하였다. 마을 가운데에 용산(龍山)이라는 작은 산이 있는데, 용처럼 생겼다. 조선 세조 때 새로 임명된 강릉부사가 부임하다가 문재(필자 주: 횡성군 안흥면에서 방림면 운교리로 넘어가는 높은 재. 지금은 문재터널이 있다.)에 이를 무렵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사 일행은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겨우 몸을 숨길 만한 바위를 발견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한동안 피를 피하는데, 천둥번개가 치면서 환해질 때 멀리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 부사가 “천둥 번개다!” 하며 외쳤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 번개가 멎고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천둥 번개가 칠 때 강릉부사가 본 마을을 뇌운(雷雲)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뇌운리 앞의 계곡을 뇌운계곡이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행정구역으로 뇌운리는 평창읍에 속한다.

 

뇌운계곡은 평창군에서도 남쪽에 자리 잡았다. 이날 뇌운계곡에는 진달래와 산수유 그리고 벚꽃이 활짝 피었다. 내가 사는 봉평은 평창군의 북쪽에 있어서 그런지 아직 산수유가 피지 않았다. 평창군이 워낙 넓다 보니 북쪽과 남쪽이 계절적으로는 1주일 정도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뇌운계곡과 금당계곡은 평창강에서 래프팅을 할 수 있는 장소이다. 뇌운계곡이 금당계곡보다 평창강의 하류 쪽에 있어서 수량이 더 많고 따라서 래프팅 장소로 더 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걷기 때문인지 몰라도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차 타고 갈 때는 안 보이던 모습이 보인다. 왼쪽으로 보이는 산의 능선에 줄지어 있는 활엽수가 보이는데, 아직 잎이 나지 않아서 나무줄기만 보인다. 능선 따라 보이는 나무줄기들이 흡사 사람 피부의 털처럼 보인다.

 

 

조금 더 강 따라 걷다 보니 강 건너편에 외딴집 하나가 보인다. 마치 그림 속의 집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강 건너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은 그림 같은 경치를 보면서 사니 얼마나 좋을까! 나는 2015년에 봉평면 면온리에 작은 집을 짓고 귀촌을 했다. 귀촌한 뒤 처음에는 그림 같은 외딴집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시골에서 살다 보니 아름다운 경치는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볼 때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멋있는 경치도, 보고 또 보면 점점 감탄의 강도가 줄어든다. 나중에는 평범한 수준으로 느낌이 약해진다. 저 건너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을 만나서 물어본다면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경제학자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었다. 그렇지만, 법칙의 이름은 몰라도 시골에 몇 년 살다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인간의 심리이자 세상의 이치다.

 

평창강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오른쪽에 집이 하나 나타나고 굴아우계곡 표시판이 보인다.

 

 

굴아우는 뇌운리 남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옛날 뇌운과 방림으로 갈리는 오솔길의 삼거리 지점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서 마치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다른 설로는 ‘굴바위’라는 옛 지석묘로 보이는 큰 바위가 있어 생긴 지명이라고 한다. 표시판을 자세히 보니 굴아우 계곡으로 들어가면 금낭화 군락지도 있고 폭포가 3개나 있다. 폭포 높이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평창에 폭포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언제 한번 굴아우 계곡으로 들어가 폭포 구경을 하고 싶다.

 

조금 더 걸으니 강을 가로지르는 큰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의 이름은 뇌운교. 산과 강과 다리가 잘 어울린다. 뇌운교 부근의 경치가 아름다워서 사진에 담아 보았다.

 

 

뇌운교를 건너가니 이제 강은 길의 오른쪽으로 흐른다. 한참 걷다 보니 왼쪽으로 집이 몇 채 나타나고 밭이 보인다. 아직 밭에 작물을 심기에는 일러서 밭은 맨흙이 드러나 있다. 찻길은 한가하고 우리의 발걸음은 느리다. 평창읍에서 방림으로 가려면 31번 국도와 42번 국도를 이용하면 빠르다. 뇌운계곡길은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우회도로이다.

 

평창읍 사람들은 우회도로를 이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걷는 길은 계곡 안쪽의 주민들만 이용하기 때문에 한적하다. 걷기에 매우 좋은 길이다. 조금 가다 보니 왼쪽에 뇌운약수터 표시판이 있는 샘물이 나타난다. 파이프를 통해서 지하수가 흘러나온다.

 

 

위 사진에서 물을 뜨고 있는 사람이 은곡이다. 제2구간 답사기에서 나는 그를 기인(奇人)끼가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몇 차례 대화해 본 결과 나의 첫인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도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인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목각 공예가로서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내가 보기에 매우 부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판소리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정식으로 배운 것이 아니고 판소리 공부하는 딸의 어깨 너머로 판소리와 북을 배웠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가 공연하는 판소리는 내가 하는 판소리와 뭔가 달랐다. 이날 답사에 참가한 대학 동창 오종실(호가 해당-海堂이므로 이제부터 이렇게 부름)의 말에 의하면 은곡은 기존의 틀에 넣을 수 없는 은곡류의 판소리를 터득하였다.

 

은곡이 짊어진 걸망이 그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잘 보여준다. 그의 걸망은 내가 맨 등산 배낭과는 다르다. 걸망 짊어진 사람은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천으로 만든 수제품 걸망이 내 눈에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보였다. 걸망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정답은 막걸리 한 병. 그는 막걸리를 좋아하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다. 내가 아직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부인은 이런 남자와 살면서 고생 꽤나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오후 4시에 뇌운약수터에 도착해서 잠시 쉬었다. 쉬는 동안 칭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으니, 누구라도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신이 날 것이다. 국문과 교수 출신인 석영이 칭찬에 대해서 짧은 강의를 했다. 면전에서 칭찬하면 아부라고 볼 수 있다.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칭찬하는 것이 진정한 칭찬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갑이라는 사람이 당신을 칭찬하더라’라는 말을 들을 때에 가장 기분이 좋다.

 

내가 일부러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남이 없을 때 칭찬하는 것보다는 욕하는 것이 더 재미있던데. 스트레스가 풀리던데.” 일리는 있지만 세상 사는 지혜는 아닐 것이다. 내 말을 듣더니 석영은 가장 큰 욕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면서, 판소리 명인 동초 김연수(1907~1974) 선생의 일화를 소개했다.

 

동초는 국악계의 큰 인물로서 나도 그의 이름은 들었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국립극장 어디에서 그의 흉상을 본 적이 있다. 동초가 나이 들어 병들고 가난해지자 그의 제자들이 돌아가며 스승을 찾아와 돌보았다. 그런데 동초가 가장 아꼈던 제자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다른 제자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말했다. “선생님, 그 녀석을 혼 좀 내주시지 그래요.” 그러자 동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그 녀석을 불러 욕을 좀 해줄까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면 사람 될까 봐서 그만두었어.” 맞는 말이다. 최고의 욕은, 역설적으로, 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후 4시 15분에 약수터를 출발하였다. 시원스러운 평창강 물소리를 기분 좋게 들으며 조금 가다 보니 오른쪽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이름 없는 바위인가 보다. 아무 표시도 없다. 단지 그 옆으로 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무명바위를 지나 조금 더 가자 계곡이 끝나면서 마을이 나타난다. 양쪽에 경작지와 집들이 나타난다. 마을 초입에는 반송(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을 기르는 묘목장이 왼편과 오른편에 연이어서 나타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마을이 다수리이다. 다수리(多水里)는 강물이 많다는 뜻에서 다수라고 하였다고 한다. 여름 한철 어디를 가나 물이 많이 나는 곳이다. 다른 설로는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수(多壽)’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아래 그림을 보면 평창강이 다수리를 휘감고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카카오맵에서 ‘강원 평창군 평창읍 다수리’라고 입력하면 이러한 그림이 나타난다. 분홍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다수리 구역을 나타낸다.

 

 

우리는 마을 중간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 하일ㆍ원당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하일교를 건너갔다. 다리를 건너면 하일리이다. 하일리를 알리는 아주 커다란 비석이 우리를 반겨준다.

 

 

하일리는 평창읍에 속하는 마을로서 평창군 오면지도(1872)에는 河日里, 《조선지지》에 하일리(河一里)라고 표기되어 있다. 서쪽에서 발원한 물이 동쪽으로 흐르는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 형태의 마을이다. 물이 한 일(一)자로 곧게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천하에 물이 으뜸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고지도에는 상수청, 하수청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수청이란 물이 맑고 깨끗함을 의미하며 우리말 지명으로는 물푸레다.

 

근현대사를 보면,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한 뒤에 하일리 마을에 공소(公所)를 짓고 포교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산골짜기 마을에 공소가 있었다니 종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개화기에는 이 마을 출신인 독립운동가 이승로(1876~1956)를 중심으로 하일리에서 항일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백덕산에서 발원하는 원당계곡물과 물푸레계곡물이 하일삼거리에서 합류하여 하일천을 이루며 2km 정도 흐른다. 하일천은 배터거리(하일교 부근)에서 뇌운마을을 거쳐 내려오는 평창강과 합류하고, 평창강은 다수리를 휘감고 흐른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여 둑길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둑길의 왼쪽으로 강이 흐른다. 평창강은 이 지점에서 강폭이 넓어지면서 강물이 갈라지는데, 주변 산과 어울려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올 것 같았다. 나보다 석영이 찍은 사진이 더 멋있어서 그의 사진을 올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