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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란 무엇일까?

《걷는 독서》, 박노해, 느린걸음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7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걷는 독서》라는 책을 냈습니다. 걷는 독서라니?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꼭 책을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걸으면서 묵상하고, 주위 자연과 교감하며 깨달음을 얻는 것도 걷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박 시인은 어린 날 마을 언덕길이나 바닷가 방죽에서 풀 뜯는 소의 고삐를 쥐고 책을 읽었고, 학교가 끝나면 진달래꽃, 조팝꽃, 산수국꽃 핀 산길을 걸으며 책을 읽었답니다.

 

 

그러다보면 책 속의 활자와 길의 풍경들 사이로 어떤 전언(傳言)이 들려오곤 했답니다. 감옥 독방에 있을 때에도 박 시인은 ‘걷는 독서’를 계속합니다. 비록 세상 맨 밑바닥 끝자리에 놓인 두 걸음 반짜리 길의 반복이었으나, ‘걷는 독서’를 하는 동안은 박시인의 정신 공간은 그 어떤 탐험가나 정복자보다 광활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을 박시인은 감탄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철저히 고립되고 감시받는 감옥 독방의 그 짧고도 기나긴 길에서 아, 나는 얼마나 많은 인물과 사상을 마주하고 얼마나 깊은 시간과 차원의 신비를 여행했던가!”

 

자유의 몸이 된 뒤, 박 시인의 걷는 독서는 국경 너머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 시인은 자신의 인생의 풍경을 단 한 장에 새긴다면 ‘걷는 독서’를 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그리하여 ‘걷는 독서’는 모든 것을 빼앗긴 시인의 인생에서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한 박 시인만의 자유였고 시인만의 향연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평생 ‘걷는 독서’를 해온 박 시인은 그동안 그렇게 해온 독서를 시로, 책으로, 사진으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걷는 독서’가 책으로 나온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번 책은 종전의 책과 다릅니다. 책의 오른쪽 페이지마다 짧은 경구, 격언 같은 말들이 하나씩 적혀있습니다. 왼쪽 페이지에는 시인이 ‘평화’를 화두로 지구촌 분쟁의 현장을 누비며 찍은 사진 가운데 그에 걸맞은 사진이 실려있고요. 그러니까 이번 책에는 시인의 생각이 응축되고 응축되어 삶의 혜안이 번쩍이는 두세 줄의 경구로 실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인은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은 지난 30여 년 동안 날마다 계속해온 나의 ‘걷는 독서’ 길에서 번쩍, 불꽃이 일면 발걸음을 멈추고 수첩에 새겨온 ‘한 생각’이다. 눈물로 쓴 일기장이고 간절한 기도문이며 내 삶의 고백록이자 나직한 부르짖음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걷는 존재이고 만남의 존재이고 읽는 존재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하고 삭막한 이 시대에, 부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사라지지 말자고 이제 와 내 품속의 편지를 띄워 보낸다. 이 《걷는 독서》가 그대 안에 있는 하많은 생각과 지식들을 ‘목적의 단 한 줄’로 꿰어내는 삶의 화두가 되고 창조의 영감이 되고 어려운 날의 도약대가 되기를.

 

어디서든 어디서라도 나만의 길을 걸으며 ‘걷는 독서’를 멈추지 말자. 간절한 마음으로 읽을 때, 사랑, 사랑의 불로 읽어버릴 때, 《걷는 독서》는 나를 키우고 나를 지키고 나를 밀어 올리는 신비한 그 힘을 그대 자신으로부터 길어 내줄 테니. ‘걷는 독서’를 하는 순간, 그대는 이미 저 영원의 빛으로 이어진 두 세상 사이를 걸어가고 있으니.”

 

 

이제 박 시인이 말하는 ‘걷는 독서’가 뭐라는 얘기는 그만 하고, 책에 실린 ‘걷는 독서’의 결정체 몇 가지를 보겠습니다. 제가 그 결정체를 보면서 느낀 점을 각 경구마다 사족처럼 달고도 싶으나, 각자 조용히 묵상할 수 있게, 그저 박시인의 경구만 보여드립니다.

 

 

1.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이 깊어서가 아니다. 너무 현란한 빛에 눈이 멀어서이다.

2. 삶은 짧아도 영원을 사는 것. 영원이란 ‘끝도 없이’가 아니라 ‘지금 완전히’ 사는 것이다.

3. 행복은 그림자 같은 것. 잡으러 뛰어가면 달아나고 문득 돌아보면 가만히 나를 따라오는 것.

4. 내가 소유한 것들이 나를 소유하게 하지 말며, 내가 올라선 자리가 나를 붙박게 하지 말기를.

5. 어둠 속을 떨며 걸어온 인생은 알리라. 아침에 눈을 뜨면 눈부신 세상이 있고 나에게 또 하루가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큰 경이인지.

6. 똑똑한 사람은 알맞게 옳은 말을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때맞춰 침묵할 줄 안다.

7. 악의 완성은 선의 얼굴을 갖는 것이다.

8. 경험은 소유하고 쌓아가는 것이 아니다. 체험 속에 나를 소멸해가는 것이다.

9. 정치의 본질은 ‘약한 자 힘주고 강한 자 바르게’

10. 온몸으로 살아낸 하루는 삶의 이야기를 남긴다.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하루는 살아도 산 날이 아니다.

11.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여기서 그만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 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지금 스스로 그어버린 그 선이 평생 나의 한계선이 되리니.

12. 두려운 것은 답을 틀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물음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13. 세상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나에게 하나뿐인 그 존재. 못나도 울 엄마, 못나도 울 아빠.

14. 신독(愼獨), 홀로 있어도 삼가함. 홀로 있을 때의 모습이 진짜 그의 모습이다.

15. 하늘이 흐르는 구름을 붙잡지 않듯이, 그렇게 집착하지 말고 흘러갈 게 있다.

16. 하르르 하르르 꽃잎이 질 때면 지는 꽃잎 사이로 하늘을 보다 이대로 그만 죽어도 좋았다.

17. ‘바빠서’라는 건 없다. 나에게 우선순위가 아닐 뿐.

18. 쌉쌀한 커피 한 모금. 그윽한 여운 한 모금. 인생의 고독 한 모금.

19. 죽는 날까지 자기 안에 소년, 소녀가 살아있기를.

20. 조로한 젊음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미숙한 어른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어휴! 최소한만 인용하려고 하였는데, 스무 개나 인용하였네요. 각 사람이 살아온 삶이 다 다르니, 책에 실린 423개의 경구는 읽는 사람마다 자신의 가슴에 꽂히는 경구가 다양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걷는 독서》를 음미하며 어떤 경구가 자신의 가슴에 꽂히는지 시험해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라 카페 갤러리(종로구 자하문로 10길 28)에서는 9월 26일까지 《걷는 독서》전을 하고 있습니다. 박 시인의 삶이 응축된 경구와 그에 걸맞은 사진 작품 57점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지요. 시간이 되시면 라 카페 갤러리도 방문하여 크게 확대한 <《걷는 독서》를 감상해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