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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도섬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후안무치의 극치

맛있는 일본이야기<638>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니가타현에 속하는 사도섬(新潟県 佐渡島)을 알게 된 것은 모리 오가이(森鷗外)의 소설인 《산쇼다유(山椒大夫)》를 통해서다. 《산쇼다유》는 헤이안시대(794~1185) 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사회 혼란기를 틈타 인신매매로 가족이 흩어지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인기리에 방영되는 바람에 근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사도섬(佐渡島)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근대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사도는 그 옛날, 발해국 사신들이 이곳을 통해 일본에 건너온 기록 등 우리와도 관련이 깊은 땅이다.

 

 

《속일본기(續日本紀)》 권제18, 천평승보 4년(752년)조에 “발해사보국대장군모시몽 등 75인이 도착했다.(渤海使輔国大将軍慕施蒙ら75人が着く)” 라는 기록이 있다. 발해국에서 일본으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사도섬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로 접어들면 사도섬은 유배지로 전락하게 된다. “승구 3년 (1221), 승구의 난으로 순덕상황이 사도로 유배되었다(承久の乱、順徳上皇が佐渡に流される)” 라는 기록에서 보는 것처럼 일왕의 아버지인 상왕조차 유배를 보낼 정도로 사도섬은 오랫동안 유배지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사도섬은 '사도금산(佐渡金山)'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상당한 금은광맥이 자리하고 있어 17세기부터 본격적인 금광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에 에도시대(1603~1868)에는 사도 광산에서 산출한 금과 은으로 화폐를 주조할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이러한 사도섬이 다시 뉴스에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이 섬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 때문이다. 이곳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뒤 관영으로 전환되었다가 1918년 민영화되면서 근대식 채광 시설이 도입되어 산출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최전성기였던 1940년에는 연간 금 1,500kg, 은 25t을 산출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생산량이 줄어들었고, 1952년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1989년 폐광되었다.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이곳을 ‘세계문화유산화’ 하려는 태도다. 일본은 1967년 사도 광산 가운데 일부를 '사도 광산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했고, 2008년 광산 시설의 일부를 유형문화재로, 2012년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이어 2018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륙 침략과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강압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강제 노역을 했던 한국과 중국의 반발로 추진을 보류했으나, 2022년 2월 1일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보로 뽑아 발표했다.

 

사도광산이 단순한 문화유적이라면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려는 시도를 나무랄 것이 못되지만 이곳은 엄연한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뭉개고 세계문화유산화하려는하는 것이야말로 후안무치한 일이다.  일본은 말끝마다 조선인 강제노역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9년에 낸 자료에는 최대 1,200여 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사실, 일본의 조선인 강제노역 동원 현장은 일본 땅 어느 한곳에 특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 경영으로 한창 독이 올라있던 시절 일본은 조선인을 무임금, 저임금으로 마구 잡아다 부려먹기 좋은 ‘노동력’ 이었을뿐이었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을 위한, 비행장 건설 현장이라든가 탄광, 금광 광산 등에서의 조선인 강제노역은 수많은 증언과 자료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어찌 세계문화유산이 인간의 인권보다 앞선단 말인가! 양심이 있고 의식이 제대로 박혀있는 국가라면 제발 피해국 국민의 아픈 부분을 또다시 짓밟는 이러한 행위는 당장 그쳐야 한다. 사도섬 유네스코 등록문제 당장 철회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