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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만의 한(恨) 일본 우토로마을 기념관 들어서

교토 우지시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마을
<맛있는 일본이야기 648>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저희들은 우토로를 지키기 위해서 귀중한 성금을 보내주신 15만 명이 넘는 수많은 국민 여러분들, 국회의원님들, 네티즌 여러분, 멀리 나라 밖에 계시면서도 우토로를 위해서 온갖 힘을 써주신 여러분들, 위기 때마다 헌신적으로 보도를 해주셨던 방송사, 신문사 등 매스컴 관계자 분들, 그리고 아름다운재단,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지구촌동포연대(KIN)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활동가 여러분들, 이제까지 우토로에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조국 대한민국이 있어 무서울 것이 없는 용기로 우토로마을의 재건을 위해 힘써왔다는 김교일 회장의 위 인사말을 들은 것은 국치 100년(2010.8.11.)을 맞아 필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다. 그로부터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토로마을에 조선인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40년 무렵으로 일제는 태평양전쟁 중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때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함바(노동자가 합숙하던 임시 건물)를 지어 살았다. 서너 평 남짓한 함바에서 대여섯 명씩 숙식을 했던 강제 노동자들의 증언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참한 생활환경이었다. 놀라운 것은 필자가 이곳을 찾았던 2010년 8월에도 마을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찌그러진 함석지붕과 하수도 시설(상수도는 1989년 공동용으로 설치)이 변변치 않은 좁은 골목길은 60년대 한국의 달동네를 연상케 했다. “인간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주민들의 증언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단 한 번도 ‘우토로마을’이 뇌리 속에서 떠난 적이 없다. 그런 가운데 오늘자(1일) 교토신문의 “교토 우토로 지구, 공생의 장 대망의 평화기념관(京都・ウトロ地区、共生伝える場 待望の平和祈念館) 개관” 소식은 가뭄 속의 단비 같아 무척 기뻤다.

 

 

교토신문은 이어서 “이 지역은 해방 뒤에도 많은 조선인이 정착했지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생활이 힘들었고 민족차별도 있었다. 이곳은 토지 소유 기업에 의한 명도 소송이 오랜 세월 계속 되어, 2000년에 주민측의 패소가 확정되어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야할 지경에 놓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을 들은 후원자들과 한국 정부가 출자한 재단이 우토로 지역 동쪽의 토지를 매입해 주민이 살 수 있는 시영 주택이 건설되었고 평화기념관이 개관을 맞았다.” 라고 보도했다.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의 사무친 한(恨)이 80년 만에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 있자니 12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우토로마을 옆에는 작은 도랑이 있었는데 도랑 건너편은 번듯한 일본인 마을이었고 우토로마을은 철거를 앞둔 판자촌 모양 형편없는 주거 공간이었다. 그나마도 우토로마을 주민을 괴롭힌 것은 “뜬금없이 나타난 토지 소유주의 이주 소송 사태”였다. 수십 년을 살아온 주민들을 아무런 대책없이 쫓아내려는 소송이었다.

 

결국 이 소송에서 진 우토로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보다 딱한 노릇이 어디 있을까?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정부는 입만 열면 “서양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켜 아시아인의 행복을 추구한다” 라고 목청을 돋우었지만 강제로 동원한 조선인들의 알량한 삶터마저 빼앗고자하는 서일본식산회사의 ‘건물수거토지명도’ 소송에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필자에게 증언한 우토로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우토로에 처음 왔을 당시 주위는 풀이 더부룩하고 자갈투성이인 산이었습니다. 함바라 불리는 판자촌 공동 합숙소는 기둥과 삼목나무로 만든 벽과 지붕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날 당장 흙을 반죽해서 아궁이를 두 개 만들어서 밥을 해먹었습니다. 합숙소 방은 가족 수에 상관없이 한 가족 단위로 할당되었고 3평정도 공간에 바닥엔 짚이 깔렸습니다. 천정도 없었고 지붕을 엮은 삼목나무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 버렸습니다. 밤에는 별이 보였습니다. 비가 너무 세게 오는 날이면 대야를 받쳐놓고 아기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이리 눕히고 저리 눕히고... 합숙소는 집이 아닙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조선인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문광자, 86살-

 

 

"여기 조선인이 살고 있는 토지는 누구도 살 사람이 없고 또 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아 그냥 이대로 이상한 임시 건물에서 살아온 것입니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렸지만 깊게 구멍을 뚫을 수 없어 물은 빨간 색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집도 물이 빨갛고 기름도 떠 있었지요. 아침에 물을 퍼내고 붉은 기가 없어지고 나면 얼굴을 씻습니다.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불만이라고 하면 우지시(宇治市)가 한 선을 그어 조선인을 의도적으로 방치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국인이라 해도 시민이니까 보통의 취급을 해주면 되는데도 타인의 토지니까 수도도 가스관도 묻어줄 수 없다고 하고 다른 아무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정상석, 1985년 81살로 사망-

 

그러나 조선인들은 온갖 험난한 환경을 극복했다. 우토로마을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고 주민들이 편안한 쉼터를 마련하기 까지 애쓴 사람들과 단체는 한 둘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그리운 우리 조국,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랫동안 우토로에는 절망과 고통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땅, 아무도 구해줄 수 없는 땅, 역사에 기억조차 안 될 땅, 그것이 우토로였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희망이 없어지고, 끝까지 싸우자는 주민들의 외침도 허무하게 울려 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국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너무도 오랜 기간의 싸움에 지쳐 하나둘씩 주저앉기 시작했던 주민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안겨주고 가슴에 불을 지펴준 것은 바로 조국이었습니다. 지금 우토로에는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웃음이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먼저 우리의 곁을 떠나신 1세들도 오늘의 이날을 축복해주고 있을 것입니다. 조국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토로 주민 (주민회장 김교일) 일동 2008년 8월 21일,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보내는 감사문 중-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일본의 양심을 없애는 것”, “우토로에서 살아왔고 우토로에서 죽으리라” 는 등의 구호가 가득 걸렸던 우토로마을이 이번 '우토로 평화기념관'을 계기로 일본측에서도 재일조선인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기 전까지도 장마철이면 마을길이 질척거려 신발이 푹푹 빠지고 지붕이 새던 우토로마을. 집집이 있어야 할 상수도 시설 하나 없이 마을 공동 우물처럼 사용하던 이마저도 잦은 고장으로 펌프시설을 설치하여 쓰던 주민들은 이러한 열악한 환경보다도 더 가슴 아픈 것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우토로마을이 잊히는 것”이라고 했다.

 

다 쓰러져 가는 양철 지붕아래서 열무를 다듬던 할머니가 나의 손을 꼭 잡고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하던 절규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제(30일) 개관식에는 관계자 등 약 100명이 참석했으며 타가와 아키코(田川明子, 77) 관장은 “기념관의 컨셉을 <우토로에 산다, 우토로에서 만나다>로 정했다. 젊은 사람이 많이 와 주었으면 한다.” 라고 했다.

 

재일조선인 마을, 우토로는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으로 자주 가는 교토(京都) 인근 우지시(宇治市)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우지시에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통건축으로 꼽히는 세계문화유산지정의 평등원(平等院)이 있어 웬만한 여행객들은 거의 발걸음을 하는 곳이다. 또한 우지시는 시즈오카와 더불어 일본 차(茶)의 명산지인 우지차(宇治茶)로도 유명한 곳이라 관광객이 늘 붐빈다. 기왕에 교토 나들이를 한다면 이번에 새로 들어선 우토로 마을의 평화기념관에 들러 재일조선인들이 살아온 삶을 더듬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