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말뚝이 타령
이놈도 이리오라
저놈도 저리가라
통시 앉아 개 부리 듯
좌라좌라 우로우로
서러운 바사기 신세
어디 가서 한탄할꼬
말뚝이는 가벼운 놈,
남의 말 수이 마소
춤판 탈판 심심할까 재담하고 놀았는데, 반지빨라 못 쓸래라, 킥킥큭큭 이러쿵저러쿵 주둥이들 놀리지만, 쌀을 줬나 술을 줬나 눈대중으로 가늠마소. 버드남ㄱ에 쇠불알 추, 바람도 천근만근, 보풀인들 가벼우랴.
한치 앞
뵈지 않으니
제 앞가림 단디하소
연당못에 줄남생이
청석 틈에 송사리떼
말뚝인지 개뚝인지
맨맨한기 홍어좆이라
더럽고 아니꼬와서
유언장이나 쓰야것다
<해설>
어쭈구리! 양반님네들 춤을 보니 참 잘 나기도 하셨소 그려.
“통시 앉아 개 부리 듯 / 좌라좌라 우로우로 / 서러운 바사기 신세 / 어디 가서 한탄할꼬”
첫수 중장과 종장에서도 요즘 사라져 가는 시어 둘을 차용했다.
사실 예전에는 ‘통시’란 말은 대체로 통용되었는데, 지금 젊은 세대에겐 쓸모없는 말이 되었다. 같은 곳을 의미하지만, 통시, 뒷간, 변소, 화장실 등으로 변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쩌면 화장실이란 말이 가장 잘 못 된 말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좋은 우리 말이 있는데, 굳이 한자어를 조합하여 만들 필요가 있을까?
‘바사기’란 말도 이젠 아무도 쓰지 않는다. 아는 것 없고, 똑똑하지 못한 어수룩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한 마디로 ‘바사기 녀석’이라 하면 될 일은 이렇게 긴 문장으로 설명해야 하니 이 또한 말의 낭비가 아닌가.
둘째 수 중장 사설 부분을 인용해 본다.
“춤판 탈판 심심할까 재담하고 놀았는데, 반지빨라 못 쓸래라, 킥킥큭큭 이러쿵저러쿵 주둥이들 놀리지만, 쌀을 줬나 술을 줬나 눈대중으로 가늠마소. 버드나ᇚ*에 쇠불알 추, 바람도 천근만근, 보풀인들 가벼우랴.”
이 문장에도 평소 듣지 못한 말이 나온다. ‘반지빨라’란 말이 그것이다. ‘반지빠르다’란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수더분한 맛이 없이 얄밉게 약삭빠르다.”라고 되어 있다. ‘맨맨한기 홍어좇’이란 말은 요새 말로 ‘알쓸신잡’은 아니다. 제대로 알면 생태적으로 유익한 말이다.
홍어는 암컷이 더 크고 비싸다. 숫컷의 거시기는 어부들에겐 그다지 필요 없는 무엇이다. 만약 누가 “맛뵈기 좀 달라” 하면, 살점은 아까우니 수놈의 거시기를 떼어 맛 뵈어 주곤 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달려있어도 환영받지 못하는 거시기"이기에 제일 먼저 칼질당하는 것을 일컬어 “맨맨한기 홍어좆”이라고 불렀다. 애써 시를 써 놓고 이렇게 해석을 다는 일이 난망하긴 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다.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지켜내는 것도 시인의 몫이니.
* 버드나ᇚ : 버드나무, '나ᇚ'은 나무의 중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