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인천의 국악전용 공연장 <잔치마당>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9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한국의 풍물을 지도하고 있는 박호진 교장의 초청으로 잔치마당이 미국을 방문, 공연과 교육, 행진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의 풍물패가 미국 땅에서 공연을 펼친 예는 70년대 초, 미국 LA에서 열린 제1회 <코리안 퍼레이드>, 곧 <한국의 날>행사가 된다는 이야기, 이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 고유미를 발휘한 풍물패의 행진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모자에 달린 긴 줄로 그리는 원의 광경은(12발 상모) 누구나 ‘감탄할 묘기’였다는 신문 기사를 소개하였다.

 

이번 주부터는 2004년 7월, 인천에 세워진 국악전용 공연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본다.

 

이 전용 공연장은 인천시청이나 어느 구청에서 직접 새로 지었거나 기존의 건물을 증축한 형태도 아니고, 어느 독지가가 공공의 이익이나, 문화 예술의 발전을 위해 새로 건물을 신축한 것도 아니다.

 

단지, 풍물을 좋아하는 서광일을 위시한 풍물패 몇 사람이 의기투합해 그들의 연습 장소를 구하고, 그 건물의 지하층을 활용하여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이다. 원래 이 건물은 <꿈나무 어린이 소극장>으로 쓰였던 장소였는데, 이 소극장이 폐관된 이후, 가구를 전시하던 공간으로 쓰고 있었던 곳이다. 가구 전시 공간이어서 그랬을까? 그곳은 기둥이 없어서 넓게 활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에, 이 건물을 빌려 <잔치마당 국악전용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게 된 것이다.

 

 

극장이라는 간판을 붙인 이후에는 일반인들에게 대관도 해 주고, 명인이나 명창을 초대해서 기획공연을 하며 애호가층도 확대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젊은 국악인들에게 발표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 점차적으로 공연이 활발해지면서 ‘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 공간 지원사업에 뽑혀 2009년 이후부터는 공간 확보에 대한 지원도 받고 있다.

 

극장을 세우고, 애호가층을 통한 상설공연 유치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악 애호가 외에 일반인들에게 국악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과정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풍물공연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일반인의 관심을 끌어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심을 유도하고자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관계자들은 그 고충을 털어 놓는다.

 

서광일 극장 대표를 위시한 단원들은 공연장을 통한 국악의 활성화 방안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본떠 가수 대신 풍물 연주자를 대입하여, ‘나는 광대다’라는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하면서 일반 관객으로부터 매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전문 평가단과 청중 평가단 시스템을 도입해서 관객들이 직접 으뜸 연주자를 뽑아 투표함으로써 스스로 공연에 대한 직접 참여를 유도한 것이다. 또한 관객들도 자신이 공연의 주체가 된 처지에서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운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더 부담스러운 쪽은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이었다. 관객들의 평가를 받게 되니 그 부담이 가중되어 열심히 준비하게 됨은 물론, 최선의 연주를 위해 더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계기를 통해 연주자 개개인의 실력은 점점 향상할 수 있게 된 것이고 관객들의 호응이 점차 좋아지자, 극장 운영팀은 단순하게 풍물에만 국한되어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더 확장하여 <광대들의 놀음판>으로 판을 키웠다.

 

‘광대들의 놀음판’에서는 풍물 외에 기악과 무용, 그리고 각 지역의 특징 있는 소리 등, 4개 분야로 확대해 경쟁적인 공연을 하기 시작하였다.

 

공개적인 모집을 통해서 매달 무용공연, 풍물놀이, 기악연주, 판소리 등으로 진행하여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끊임없이 접촉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해 나간 것이다. 아울러 청중평가단 제도를 도입해서 객석에서도 주체적으로 참여가 곁들여지기 시작하면서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그 흥취는 더더욱 고취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공연의 주체자가 될 방안도 구상하여 풍물과 기악 교육을 받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도 시도해 보았는데, 이럴 때에는 전문가를 초빙, 연기 연습이 이루어지도록 충분한 사전 교육을 하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무대 위, 다른 사람들 앞에 선다는 기대감이나 설렘은 또 다른 경험이며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와 많은 시민이 참여를 희망해 왔다고 한다. 풍물 외에 연극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경험한다는 것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극장이 비어있는 날은 최소화하고, 매주 목요일은 공연이 있는 날로 지역에 인식을 시켜줌으로써 공연장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유지해 왔다고 하니 공연장 관계자들의 노력도 보통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 결과 인천시로부터 지원금까지 받게 되면서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인식되어 풍물을 위시한 국악교육과 공연을 위한 대관사업에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