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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판소리 말고는 그 어떤 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2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인천 무형문화재 회관에서 열린 젊은 소리꾼, 이경아의 <동초제 심청가> 완창(完唱) 공연이 4시간 40분 동안 진행되었다는 이야기, 이모(姨母) 조소녀 명창과 어머니(조영자 명창)에게 어려서부터 판소리와 민요를 배웠다는 이야기, 임방울 대회의 <대통령상>이 소리길 종착역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완창 발표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날(2023. 4월 15), 인천 무형문화재회관에서 열린 이경아의 완창 공연은 4시간 40분이 소요되는 <동초제 심청가> 한 바탕이었다.

 

<동초제 심청가>란 무슨 말인가?

 

간단하게 말해, <동초제>는 판소리의 한 유파(流波)를 가리키는 말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를 지낸 김연수(1907~1974) 명창이 새롭게 짠 심청가라는 말이다. 김연수의 아호가 동초(東初)이기에 소리 세계에서는 이름 대신 아호를 넣어 동초제(制)라 부르는 것이다.

 

참고로 이 유파는 그의 제자, 오정숙(1935~2008) 명창이 이어받았으며, 1997년에는 동초제 보존회가 결성되어 전주를 중심으로 확산해 왔는데, 이일주, 조소녀, 최승희를 비롯한 기라성같은 명창들에 의해 더더욱 전승력이 강한 소리제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판소리라고 하는 용어는 놀이판에서 부르는 소리라는 말로 음악이 중심이 되지만, 문학적 특성도 강하고, 더욱이 연극적 특성이나 무용적 요소도 강한 편이어서 이들의 종합예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1900년대 이전 시기, 곧 20세기 이전의 판소리 공연 형태는 1인의 북 반주에 맞추어 혼자 부르던 형태인 성악(음악)이 중심이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완창이 아닌 토막소리를 불렀다. 그 이후에 판소리의 연극적인 특성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종래의 독창 형식에서 2인의 대화(對話)창 형태, 또는 더 확대되어 3인 이상의 창자들이 역할을 분담하는 분창(分唱)형태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여러 창자가 역할을 분담하며 극 중의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었으니, 판소리의 연극적 요소가 중요한 핵심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결과, 판소리는 <창극>이라고 하는 새로운 공연양식으로 확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확산이 반드시 판소리의 발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창극의 형태가 종래의 1인 체제의 소리 형태에서 확대되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토막소리를 주로 불러오던 판소리라는 공연양식에서 여러 창자가 역할을 분담하며 창극으로 변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소리꾼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동초 김연수 명창이다.

 

 

이날, 동초제 판소리, <심청가>의 완창발표회를 펼친 젊은 소리꾼, 이경아는 대통령상 수상자답게 소리와 아니리, 그리고 발림을 적절히 구사해 가며 조화롭고 실감이 나게 <심청가>를 풀어냈다. 비교적 맑은소리로 시작된 소리의 음색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투명하게 뿜어져 나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한 소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와 함께 적절한 발림은 그간의 공력을 여지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다.

 

“저는 국악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 조영자 명창(전라북도 도립국악원 창극단장)과 이모, 조소녀 명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춘향가 보유자)의 권유로 1993년, 판소리에 입문, 올해로 30년이 됩니다.

 

어린 시절, 자연스레 판소리와 민요를 듣기 시작하며 혼자 흥얼거리다가 9살이 될 무렵, 이모님과 어머니의 ‘제자 발표회’ 무대에 서게 되었어요. 얼마나 기다려지고 또한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뒤, 판소리 경연대회에 나가 부채를 쥐고 발림을 하며 초등부 대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험이 본격적으로 소리 전공으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중-고- 대학을 거치며 소리와 연기, 국악가요도 배우며 소리 인생에 전환기를 맞게 되었지요.”

 

 

이경아 명창은 소리를 하면 할수록 이면도 더 이해하게 되었고, 감정선 표현을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점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었다고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여기서 이면(裏面)이란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면이란 사설의 내용에 따라 소리와 발림(몸짓)이 함께 어울려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춘향이가 이 도령을 “천리만리라도 따라간다”라는 사설이 있다고 하자, 여기에서 천리(千里)는 짧게 표현해야 하고, 만리(萬里)는 길게 불러야 사설의 뜻을 올바르게 음악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된다. 또 다른 예로 “하늘 높이 떠 있는 저 달이”라는 대목은 달이 높이 떠 있어서 ‘높이’라는 말은 고음(高音)으로 높게 불러야 하고, 저 달은 멀리 있으므로 길게 불러야 이면이 맞는다고 할 것이다.

 

이경아 명창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강남 논현동에 국악 학원을 개원했다.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현대음악이나, 퓨전, 락밴드의 가수로 뽑히면서 국악가요 등도 부르며 잠시 전통에서 벗어나 외도를 해 보기도 하였지만, 곧바로 판소리의 길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판소리 말고는 그 어떤 종류의 노래도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에 역시 소리꾼다운 자세를 지녔다는 생각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