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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자소암: 노파, 암자를 불태우다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번 찍어도> 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구는 쉬지 않고 태양 주위를 돌면서 가을이 깊어 갔다. 봄이 여자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다. 봄이 되면 여자들은 생기가 나고 멋도 부리고 싶고 노출되는 옷으로 치장을 하고 싶어진다. 여자들은 봄에 괜히 들뜬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속된 말로 하면 여자는 봄에 물이 오른다. 여자가 바람나기 쉬운 계절이다.

 

남자들은 가을이 되면 괜히 울적해지고 감상에 젖는다. 낙엽 떨어지는 돌담길을 걷고 싶어진다. 어디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인생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념에 사로잡힌다.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고서 어떤 남자는 우울증에 빠진다. 어떤 남자는 시를 쓰기도 한다.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날,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떤 남자는 종교에 귀의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라는 깨달음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한다. 여기서 행이라는 말의 의미는 광범위하다. 보이는 사물, 느끼는 감정, 관념적인 개념 등등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행이라고 말한다. 제행무상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는 뜻이다.‘

 

제행무상은 기독교의 기본 전제인 “변하지 않고 영원무궁한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느님도 제행무상의 철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하느님, 고대 로마시대의 하느님, 중세 암흑시대의 하느님, 제국주의 시대의 하느님, 그리고 21세기 교회당에서 목사님이 설교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절대 같지 않을 것이다. 불교에서 볼 때는 하느님이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제행무상이란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명제이지만, 그리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나무를 보라. 나무는 봄에 새순이 나고 꽃이 핀다. 여름에는 무성한 잎이 만발하고 싱싱한 녹색을 내뿜는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 빛깔이 변해 한잎 두잎 떨어진다.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은 초라한 모습이다. 이러한 반복은 계속되지만 언젠가 끝이 난다. 나무가 죽으면 고목이 되어 쓰러진다. 쓰러진 나무는 썩는다.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간다. 나무는 영원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 모습은 쉬지 않고 변한다. 누구나 아는 평범한 사실이다. 불교의 제행무상은 아마도 나무를 관찰하고서 깨달은 진리가 아닐까?

 

김 교수는 이제 40대 후반, 반올림하면 오십이다. 인생의 절정기는 이미 지났고, 이제는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삼십대에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사십을 넘자 세월이 빨리 가는 것 같다. 백남준이라고, 우리나라가 배출한 세계적인 비디오 예술가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감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천천히 흘러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빨라진다.” 매우 적절한 비유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왜 그리도 천천히 가는지. 학교에서 돌아와 친구들과 한참 놀아도 해는 중천에 떠있다. 어릴 때는 하루하루가 빨리 가기를 바랐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청년이 되고 나서는 할 일도 많고 시간이 천천히 가기를 바랬다. 노인들이 “인생이 너무 빠르다”라고 한탄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흘러가는 시간은 똑같지, 빠르고 느리고 할 수가 있나?”라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김 교수도 나이 사십을 넘자, 시간이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불교에서는 아무리 제행무상이라고 해도 김 교수에게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여자에 관한 관심이다. 사십은 불혹(不惑)의 나이라고 하지만, 사십이 지나서도 김 교수는 젊은 여자를 보면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난다. 삼십대에는 예쁜 여자만 만나고 싶더니, 사십대로 접어든 후에는 미모는 둘째이고 그저 여자가 젊기만 하면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이 자기에게만 나타나는 나쁜 욕심인지 아니면 모든 남자가 가지는 정상적인 욕망인지 궁금하여 언젠가 박 교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독실한 불교신자인 박 교수는 파자소암(婆子燒庵)이라는 불교 우화를 소개해 주었다.

 

불교에 전해 내려오는 공안(公案: 화두의 모음집으로서 1,700가지가 있다고 한다) 가운데 “파자소암: 노파, 암자를 불태우다”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노파가 장래가 촉망되는 스님 한 분에게 초암(草庵, 갈대나 짚ㆍ풀 따위로 지붕을 인 암자)을 제공하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고 참선수행에만 전념하도록 하였다. 그 스님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10년 동안 암자에서 열심히 정진하였다.

 

이 모습을 지켜본 노파가 어느 날 아름답고 젊은 여자를 암자로 보내면서 그 스님을 껴안도록 한 뒤에 느낌을 물어보도록 하였다. 얼마 뒤 젊은 여자가 전하는 스님의 대답이 “고목이 찬 바위에 의지하니 삼동(三冬)에 난기(暖氣)가 없도다!”하는 것이었다. 노파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노발대발했다. “내가 이런 속물을 10년 동안이나 공양하다니!” 하면서 승려를 때려서 내쫓고는 암자를 불살라 버렸다.


 

 

원래 불교의 우화라는 것이 알쏭달쏭할 때가 많다. 무슨 말이냐고 박 교수에게 뜻을 묻자, 박 교수의 대답은 이러했다. 여자가 껴안았는데, 아무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수행이 깊다는 것은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이것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긴다는 뜻이지 감정의 변화 자체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젊은 여자를 보면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자체는 별로 비난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만나자고 전화하거나 수작을 붙인다면 그때부터는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