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마량만(馬梁灣)에서
사람만 배타나 말도 배타네 (빛)
제주에서 타고 마량에 내려 (돌)
말들처럼 늘어선 저 까막섬 (달)
만주까지 달려가야 할 자리 (초)
... 25.1.30. 불한시사 합작시
장흥의 사자산 기슭에 자리 잡은 강대철의 토굴조각을 구경 간 지가 벌써 한참 지났다. 불한시사 시벗들이 몰려가 그가 10년에 걸쳐 파고 깎고 꾸며놓은 신비스런 조각토굴을 둘러보고, 다 함께 바닷바람을 쐬자고 가보았던 곳이 마량이다. 장흥에서 비롯한 탐진강을 따라 ‘수문리’를 거쳐 오면서, 숨어 사는 조각가 강대철을 빗대어 “숨은 이가 여기 있다고 수문리인가” 보다는 재담으로 터졌던 함박 웃음소리가 귀에 어린다.
마량은 여러 곳에 지명으로 남아있지만, 이곳은 제주도에서 키운 말들이 배에서 내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마량이란 말 마(馬) 자와 나무다리 량(梁) 자가 합쳐져서 ‘말이 건너는 나무다리’란 뜻이다. 포구의 표지판을 보니, 이곳은 조선시대에 군대가 머물던 전략요충지였다고 한다. 태종 임금 때에 마두진이 세워졌고, 정유재란 뒤에는 거북선 한 척이 묵었다고 한다.
전장을 누빌 말들이 씩씩하게 나무다리 마량을 건너오던 모습은 둘레의 까막섬을 배경으로 장관이었으리라. 마침, 황금빛 노을을 등진 까막섬들이 말 잔등처럼 보이는 것도 예사스럽지 않다. 말들은 마량진에서 한 달 남짓 풀을 뜯으며 풍랑의 피로를 씻은 다음 군진으로 보내졌다. 전해오는 바로는 몽골이 침입하기 훨씬 앞선 7세기 무렵부터 제주 말을 마량만으로 수송해 왔다고 한다.
불암시벗들은 낙지나 쭈꾸미가 많이 나오는 이곳 풍성한 바닷가에 자리 잡고 저녁 등불을 밝히며 막걸리와 소담을 나누었다. 밤이 지긋해지자, 초암을 집으로 떠나보내고, 모두 덧없는 나그네가 되어 한밤을 묶었던 마량의 추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한빛).
| ㆍ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의 불한티산방에서 만나는 시벗들의 모임이다. 여러 해 전부터 카톡을 주고받으며 화답시(和答詩)와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합작시의 형식은 손말틀(휴대폰) 화면에 맞도록 1행에 11자씩 기승전결의 모두 4행 44자로 정착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으로 싯구를 주고받던 옛선비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