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제가 사는 이곳 진주의 숨씨(공기)도 아침저녁으로 제법 매섭습니다. 어느덧 들겨울(11월)도 끝자락, 스무아흐렛날이네요. 간밤에 기온이 뚝 떨어져 옷깃을 한껏 여미게 되는 오늘, 기별종이(신문)에서 마주한 기별이 바깥바람보다 더 시리게 다가옵니다.
요새 이른바 '고독사'로 누리(세상)를 등지는 분들 가운데 가웃(절반)이 쉰에서 예순 살 언저리의 남성이라는 알림이었습니다. 일자리에서 물러나거나 헤어짐으로 한동아리(사회)와 멀어진 채 홀로 지내는 이들의 아픔을 다룬 글을 읽으며, 문득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외진 곳’을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흔히 이런 곳을 두고 ‘사각지대’나 ‘소외된 곳’ 같은 한자말을 쓰곤 하는데요. 오늘은 이 딱딱한 말을 갈음해 쓸 수 있는 말이자, 찬 바람이 불면 더 시리고 아프게 느껴지는 우리 토박이말, ‘도린곁’ 이야기를 해 드립니다.
이 말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참 쓸쓸하면서도 야릇한 울림이 있지 않나요? ‘도린곁’은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낱말의 짜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맛이 더 깊어집니다. 둥글게 빙 돌려서 베거나 파낸다는 뜻을 가진 우리말 ‘도리다’의 끝바꿈꼴(활용형)인 ‘도린’에, 옆이나 근처를 뜻하는 ‘곁’을 더해 만든 말입니다. 마치 따뜻한 복판에서 둥글게 도려내어져 뚝 떨어져 나온 가장자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도린곁’이라는 소리에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도려내진 듯 아린’ 슬픔이 배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 그 빛을 더 잘 냅니다. 송기숙 님의 소설 《암태도》를 보면 “남강 선창에서 저쪽으로 해변을 돌아가면 후미진 도린곁에 문지주 집이 있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지음이(작가)는 그저 구석진 곳을 나타내려 했겠지만, 읽는 우리는 ‘후미진 도린곁’이라는 말에서 그 집이 품고 있을 고요함과 쓸쓸함 그리고 누리(세상)와 동떨어진 외로움을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볕이 잘 들지 않고 사람의 발길마저 끊긴 그곳, 그 쓸쓸한 바람빛(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지요.
그렇다면 이 아름답고도 슬픈 말을 우리네 나날살이에는 어떻게 들여놓을 수 있을까요? 알림글(보도문)에서 흔히 쓰는 ‘복지 사각지대’라는 말을 갈음해 “찬 바람이 불수록 우리 삶의 빛나고 아름다운 한가운데보다는, 발길이 닿지 않는 ‘도린곁’을 살피는 마음이 꼭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오랜만에 만난 동무와 나누는 마주이야기(대화)에서도 “요즘 마음이 좀 허전해.”라는 말에 “네 마음속 도린곁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마. 내가 맛있는 밥 살테니 우리 만나서 이야기해.”라고 살가운 말을 건네볼 수도 있을 겁니다. 김장과 해끝 모임으로 바쁜 요즘,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나의 ‘도린곁’은 어디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둘레를 돌아보는 글을 남겨보아도 좋겠습니다.
겨울은 늘 ‘도린곁’부터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빛나고 아름다눈 해끝 불빛들이 켜질수록 그 빛이 닿지 않는 그늘은 더 짙어지기 마련입니다. 들겨울(11월)의 마지막 이레끝(주말)인 오늘, 우리가 생각없이 지나쳤던 마음속, 그리고 우리 마을의 도린곁을 한번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꽁꽁 얼어붙은 그 외진 곳의 차가움을 녹일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의 따뜻한 눈길과 마음뿐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