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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시대 표구가 아닌 ‘장황ㆍ배첩’이라 써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1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종실록》 108권, 세종 27년(1445년) 4월 5일 기록에는 “편찬한 시가(詩歌)는 모두 1백 25장(章)이온데, 삼가 쓰고 장황(裝潢)하여 올라옵니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이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이를 시험하기 위해 의정부 우찬성 권제(權踶)ㆍ우참찬 정인지(鄭麟趾)ㆍ공조 참판 안지(安止) 등에게 맡겨 펴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0권을 이들이 올리면서 아뢴 말입니다.

 

여기 기록된 ‘장황’이란 말은 글과 그림에 종이ㆍ비단 따위를 붙여 미적 값어치를 높임과 동시에 실용성과 보존성을 높여주는 서화처리법을 거쳐 족자ㆍ액자ㆍ병풍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종실록》 단종 1년(1453년) 7월 4일 기록에는 "일본의 중 도안(道安)이 일본과 유구(琉球) 두 나라의 베낀 지도(地圖) 4벌을 가져왔는데, 장배(粧褙)하여~”라고 하여 “장배”라고도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밖에 여러 기록에는 “장표”, “표배”, “배첩(褙貼)”이라는 말도 쓰였습니다. 그 가운데 간재집(艮齋集)에서는 “안감을 대어 풀을 붙이는 것을 속어에 배첩(褙貼)이라 이른다고 하였는데 병풍장, 배첩장(褙貼匠)이라는 다른 기록들과 함께 적어도 조선후기에 배첩이 주로 쓰는 말이었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표구(表具)’란 말이 들어와 주인 자리를 꿰찼지만, 지금 국가무형유산 이름은 ‘표구’가 아닌 ‘배첩’이며, 무형유산 보유자는 배첩장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