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임금 가운데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를 둔 유일한 임금 영조는 품계 때문에 종묘에 어머니 위패를 모실 수 없게 되자 묘소의 지위를 소령원으로 높였습니다. 또 “붓을 잡고 글을 쓰려 하니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뒤덮는다(涕泗被面). 옛날을 추억하노니 이내 감회가 곱절이나 애틋하구나.”라는 “숙빈최씨소령묘갈 (淑嬪崔氏昭寧墓碣)”이란 비문도 직접 썼지요. 그뿐만 아니라 영조는 어머니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한 효성이 지극한 임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