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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봉 어머니와 헤이안시대 원신스님 어머니





















     
 






≪왕생요집(往生要集、984年)≫을 써서 헤이안시대 유명한 승려로 자리매김한 원신 (源信, 942-1017)스님은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9살에 히에이산(比叡山)에 맡겨져 승려의 길을 걷게 된다.

어머니의 간절한 불공 덕인지 15살의 원신스님은 무라카미왕(村上天皇)의 신임을 얻어 왕실법회를 맡을 수 있는 엘리트 강사로 발탁되는데 이때 무라카미 왕은 원신스님에게 면포 등 두둑한 하사품을 내린다. 뛸 듯이 기뻐하며 원신스님은 첫 왕실 출입으로 받은 귀한 물건을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들뜬 마음으로 보낸다.

그러나 아들이 보내온 왕실 하사품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 어머니는 원신스님께 되돌려 보내면서 한 통의 편지를 담아 보낸다. “보내주신 물품은 기쁘게 받았습니다. 왕실 출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학승이 되었으니 더없이 기쁩니다. 그러나 왕실 출입을 계기로 여기저기 유명 강사로 불려다녀 세속적 고승(高僧)으로 화려한 대우를 받고 그럭저럭 지내라고 출가시킨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이미 늙어서 이제 얼마 살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그대가 성인(聖人)이 되어 나를 보러 온다면 나는 그때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며 원신 어머니는 왕의 하사품을 되물리고 있다.

출가자가 세속적인 영화에 눈이 어두워 지지 않도록 따끔한 채찍질을 아끼지 않는 원신 어머니의 모습에서 헤이안시대 사람들의 깊은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다. 원신이 살다간 시대는 이미 천 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원신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일심(一心)’ ‘성불에 대한 일심(一心)’ '승려의 지나친 세속화 우려'는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또 일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도 적용된다. 과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재미나다.

원신스님 이야기가 실린 책은 일본 헤이안시대(794-1192)의 최대 설화집인 《今昔物語集, 곤쟈쿠이야기, 권15-39》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 책은 당시 사람들의 신앙생활, 가치관, 풍습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라쇼몽》의 저자 아쿠다카와 류노스케는 이 설화집에서 많은 소재를 가져다 “해박한 고전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심리를 가미한 소설” 을 써서 호평을 받았다.  

자식을 좀 더 큰 인물로 만들기 위해 자잘한 성취에 채찍을 가하던 한석봉 어머니처럼 원신스님 어머니 역시 불가의 가르침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엄한 잣대로 성인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 어머니의 바람대로 원신은 일본 불교사의 큰 인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