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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이름 없는 광부의 그림 세계기록유산에 오르다








                     

후쿠오카 탄광촌에 평범한 광부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은 야마모토 사쿠베이(山本作兵衛,1892-1984)씨. 탄을 캐는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 무렵부터 형과 함께 갱내에 들어가 탄차를 미는 등 가계를 도우면서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사쿠베이 씨는 15살 때 야마우치 탄광에 입사하여 1955년 다가와시 이토탄갱의 폐광으로 퇴직할 때까지 약 50년간 18개의 탄광에서 청춘을 보냈다.

정년퇴직 후 그는 그림에 몰두했다. 자신의 50년 탄광 생활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의 탄광 그림은 놀랄만한 정확도와 치밀함으로 지금까지 세계에서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탄광 기록화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쿠베이 씨는 일본에서 가장 큰 탄광도시 이즈카(飯塚)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쿠베이가 그림을 그리려고 한 것은 형과 함께 갱내에 들어가기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 무렵으로 지인이 동생에게 선물한 가토기요마사의 무사 인형을 반복해서 그리기 시작한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소년기에는 일시적으로 광부를 그만두고 화가를 목표로 후쿠오카시의 페인트가게에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가정 형편상 결국에는 탄광 광부 생활을 계속하게 되는 바람에 약 40년 동안은 붓을 잡을 여유가 없었다.

탄광 기록화를 그리려고 붓을 잡은 것은 이토 탄광 폐광 뒤로 사쿠베이 씨가 65살(1957) 되던 해였다. 다가와시 유게타 나가오광업소(田川市 弓削田 長尾業所) 본사의 숙직원이 된 뒤로 말라카해협 해전에서 전사한 장남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기분 전환하려고 일기장 여백 부분이나 광고지 뒷면 등에 탄광 그림을 그린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손자들에게 탄광 생활이나 채탄 작업등을 글로 남기고자 했다. 그러나 몇 년 지나면 읽지도 않고 보관도 귀찮아 청소할 때 버릴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그는 그림이라면 바로 보고 이해할 수 있으니 그림으로 그려야겠다고 「자필연보」에서 술회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붓을 한번 들면 시간이 가는 것도 잊을 만큼 몰두했는데 그가 그린 탄광 그림을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가 근무하는 나가오광업소의 회장인 다츠오 씨는 사쿠베이의 작품을 의미깊게 여기고 작품활동을 도왔다고 한다.


그림은 주로 메이지 중기의 탄갱, 갱부를 묘사한 「옛날 탄갱의 사람들」로 시작해서 갱 안과 갱 밖 노동, 시설관리, 생활, 속신(俗信), 탄갱을 방문한 예능인상인, 유행가, 동물, 쌀 소동, 싸움, 린치, 주요 사건 등을 주제로 강한 터치의 그림을 그렸으며, 그 한 장 한 장에는 해설도 쓰여있다.

탄갱 노동자가 아니면 도저히 그릴 수 없는 사쿠베이의 그림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메이지, 다이쇼 탄갱 그림책』이라는 이름으로 1963년 9월에 책으로 세상에 내놓게 된다. 그러나 서점과 사회의 냉대가 심했다. 아마도 열악한 탄광 생활을 폭로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한지 서점을 비롯한 언론도 판매 금지 분위기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다가와시립도서관 관장인 도시오 (永末十四雄) 씨가 사쿠베이 노트와 사쿠베이 그림이 지니는 자료적 가치에 주목해 스스로 사쿠베이 노트의 필사를 하는 한편, 다가와 향토연구회에서는 1964년 6월부터 “탄광자료를 모으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고 이때 사쿠베이 씨는 스케치북(세로 25.5센티미터, 가로 35.5센티미터)에 수채화 23점을 그려 시립도서관에 기증했는데 모두 탄광 안에서 노동하던 어린이 그림이었다.

이후에도 작품은 꾸준히 이어져 현재 584점(묵화 원화 306점, 수채화 278점)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는 생생한 탄광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그린 귀중한 역사 민족 자료로써 1997년 7월 3일에는 후쿠오카현 유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아울러 2011년 5월 25일자로 세계기억유산에 등록되었다. 작품은 다가와시 소유의 회화 585점, 일기 6점, 잡기장, 원고 등 36점을 포함한 697점이 등록되었다.

참고로 세계 기억유산이란 유네스코 세계기억유산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를 거쳐 2년에 1번씩 등록해주는 문화유산으로 프랑스인권선언문, 안네의 일기, 베토벤 제9교향곡 원고 등이 등록되어 있다.

 

 

* 일본 한자는 구자체를 썼습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