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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96. 세모에 떡방아 찧는 음악으로 아내를 위로한 백결선생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이나 선비, 사대부들은 거문고를 특히 애호하여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처럼 금을 좋아 하게 된 배경은 황폐화 되어가는 몸과 마음을 닦아 천리(天理)진정(眞情), 즉 하늘의 이치에 따르고 참된 마음가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다. 선비들에게 있어 거문고는 수양의 악기로 통한다. 글공부하는 선비나 사대부의 사랑채에는 금을 걸어놓고 책을 읽다가 분심이 생기면 자연스레 거문고를 비껴 타는 것이다. 그래서 선비들의 생활상을 표현한 말로 좌서우금(左書右琴), 즉 왼손에 책, 오른손에는 금을 든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거문고는 언제부터 연주되어 온 악기일까?

고구려시대로 알려져 있다.

 

처음 중국 진나라로부터 고구려에 금이 전해 졌는데, 고구려 사람들은 이것이 악기인줄은 알았으나 어떻게 타는 것인지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라사람들에게 이 악기를 타는 사람은 상을 주겠다고 방을 붙여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왕산악이란 재상이 거문고를 대폭 고쳐 만들고 스스로 곡을 지어 탔다고 한다.

 

거문고의 가락이 울려 퍼지자, 때마침 검은 학이 내려와 가락에 맞추어 두둥실 춤을 추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악기의 이름을 <검은학금>으로 지었다가 후에 학자를 빼고 <거문고>라 불렀다는 것이다. 금은 우리말로는 고이다. 가야금을 가야고라 하듯이 검은 금은 <검은+>가 된다. 한자이름으로는 <현금(玄琴)>이다. 위의 이야기는 우회적으로 거문고의 아름다운 음색과 가락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문고는 한반도의 북부와 만주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고구려의 고분인 무용총(舞踊塚)벽화나 안악(安岳)고분 등 벽화에도 나타나 있다. 하지만 고구려에서 왕산악 이후의 거문고의 명인이나 또는 거문고가 어느 정도 활발하게 연주되었는가 하는 점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신라시대에는 거문고와 관련되어 전해오는 이야기나 명인들의 이름이 나타난다. 이 중, 신라의 자비왕 때에 백결선생이 지었다고 하는 거문고의 대악(碓樂)이 유명하다. ()는 방아를 의미하므로 대악은 곧 방아타령이다. 이 음악이 어떤 형태의 음악인지는 몰라도 설에 양식을 걱정하는 아내를 위하여 거문고로 떡방아 찧는 소리를 내며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점에서 유명하다.

 

남들은 모두 떡방아를 찧으며 설 준비를 하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새해를 맞는단 말이요?”이 말을 들은 백결선생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무릇 죽고 산다는 것은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을 지니 오는 것을 을 수도 없고, 또한 가는 것도 막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오? 그대는 너무 상심하지 마오!”라고 위로 하면서 가야금으로 방아소리를 흉내 내어 그의 아내를 위로하였다고 한다. 이 음악이 후세에 전하여 대악으로 전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세상에서는 위의 백결선생이 <거문고>로 대악을 연주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거문고로 대악을 탔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여기에 등장하는 현악기는 거문고가 아니라 가야금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신라의 자비왕은 5세기 말엽의 임금이었고, 거문고가 신라에 퍼지기는 신라가 3국을 통일한 7세기 말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고구려의 거문고가 신라에서도 연주되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