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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주교 뮈텔과 정의파 주교 지학순

누가 진정 우리를 위한 신의 사도인가?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어린이와 함께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방송으로 보면서, 나도 4~5살 때쯤 지학순 주교가 집전하던 대미사 중에 내가 뒷짐을 지고 제대 위에 올라와 여기저기 활보하는 바람에 다들 놀라 노심초사했다는 얘기가 생각 난다. 다행히도 지학순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아무 말 안 하셨기에 나는 제대 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그냥 내려왔다.

 

8월의 교황 방한의 여운을 간직하기 위해 요즘 나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로 시작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간단한 기도(Preghiera Semplice, 평화의 기도>를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초연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성프란치스꼬는 13세기에 돈과 권력 속에서 타락하는 교회를 경계하며 청빈과 겸손을 실천한 참으로 위대한 성인이다.

 

내가 이 노래를 작곡을 한 때는 2002 11월 말. 이태리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바로 전날 이태리 작곡가 친구 라파엘레와 함께 작곡한 이별기념곡이다. 이번에 방문한 교황의 이름도 프란치스코이기에 이번 공연에서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공연 관람객들과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구상하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준비하는 중에 지인 양승국 변호사가 <신흥무관학교>라는 책의 감상문을 <한국문화신문> 기사로 올려주었다. 그 내용 중에는 천주교 신자였던 도마 안중근의 사형집행을 앞둔 시기에 천주교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의 자필 일기가 그대로 공개되어 있었는데, 읽다 보니 뮈텔 주교의 친일 행위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정확히 인식하여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더욱 확고하게 하자는 취지로 공연 때 잠깐이라도 두 주교의 대조적인 이야기를 언급하기로 하였다.

 

   
▲ <신흥무관학교> 안천 지음 (교육과학사,1996)

 


친일파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

 

조선의 대주교가 일제에 핍박 받고 있는 백성은 외면하고 교세 확장을 위해 일제와 손을 잡았다면 아마도 소설이나 영화 속의 이야기인가 할 것이다. 조선교구장으로서의 뮈텔 주교의 긍정적인 업적도 당연히 있으리라. 하지만 양 변호사의 감상문을 통해 그의 일기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분통이 터질 것만 같다.

 

안중근 의사가 뮈텔 주교에게 대학교 설립을 도와 달라 간청하자 뮈텔은 "한국인의 학문이 높아지면 신앙심은 거꾸로 약해 진다. 프랑스에서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신앙심을 약해 진다. 대학교 설립은 도와 줄 수 없다." 고 답변한다.

 

여순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안 의사에 대하여 "뮈텔 주교는 살인범에게 미사를 베풀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빌렘 신부는 명령을 어기고 안의사를 위하여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안 의사 사형집행 뒤 일본이 주검의 인도를 거절했다는 소식에 뮈텔은 "일본인들이 그 주검을 가족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한다. 극히 당연한 일이다." 라고 일기에서 옹호 하였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애국계몽운동기의 비밀결사인 신민회 대표 인물 105명을 감옥에 가둔 105인 사건도 뮈텔 주교가 당시 아까시 장군에게 제보한 것이고, 이에 대한 대가로 명동성당의 진입로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한다. 그는 40여 년 이상이나 교구장을 하면서 독립운동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만세 운동에 동참하려는 신학생들에게 오히려 신학교를 떠나라고 했다."고 자신의 일기에 써놓았다그래서 3.1만세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에 천주교 대표가 한 명도 없었던 것에 대해 역사가들은 바로 친일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 하는 것 같다.

 

   
▲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주교회는 뮈텔 주교의 위와 같은 유감스러운 과거에 대해 고백성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부끄러움 속에서 자성하였을 것이다. 또 이를 교훈 삼아 분명 나름대로 열심히 사명을 다했으리라 여긴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본받을 만한 성직자들도 꽤 많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리라 믿으며 내가 가까이에서 본 주교 한 분을 소개한다.


 

정의파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원주 출신인 나는 유년기부터 지학순 주교를 가까이서 지켜 보는 행운을 가졌었다. 원동 성당에서 집회를 하면 경찰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었고, 잡혀 간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어린 나는 영문을 모르고 종교란 원래 이렇게 살벌한 것이구나 하면서 자랐다.

 

지학순 주교는 평생을 독재, 부정부패와 싸우며, 인권보호와 양심수 석방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힘쓴 분이라 빨갱이로 몰린 적도 있다성깔도 꽤 있으셨다. 박정희 정권에다 대고 "유신헌법은 무효"라고 양심선언을 했으니, 마피아의 본거지에 가서 마피아를 파문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다름 없었겠다. 미사 때 언론 기자와 경찰 정보요원들에게 "정의가 강물처럼" 이 아니라 "정의가 똥물처럼" 흐른다며 제대로 하라고 호령하시던 카리스마. 이제는 아련하다.

 

   
▲ 1974년 7월 23일 양심선언을 하고 있는 지학순 주교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

 
뿐만 아니라 민생도 챙기셨다. 1972년 남한강 대홍수 때 정부도 속수무책이자 교회가 나서 재해대책본부를 만들어 수재민을 직접 도왔고, 뒤에는 서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신용협동조합을 강원도에 60개 이상 생기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한 신학교에서 민주화을 외치던 신학생을 퇴학시키자, 그 신학생을 불러 다른 신학교로 가도록 배려하여 현재 가톨릭 농민운동의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는 성직자도 있다.

 

   
▲ 1975년 2월 17일 서울 구치소에서 나오는 지학순 주교 (우측에 김수환 추기경)

 

세상에 공짜는 없나 보다. 어린 시절 제대 위를 활보하는 나를 "저 아이 뉘 집 애야" 하며 호통을 치지 않고 귀엽게 봐주셨고 내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셔서 그런지, 선종하신 뒤 그 뜻을 이어 가고 있는 <지학순 정의평화상> 시상식이 있을 때면, 나도 옛 일이 그리워 가끔 축하 공연으로 기꺼이 봉사하러 간다.

 

이번에 한국을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 무신론자의 신앙에 관한 질문에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종교를 믿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서 살면 된다." 는 대답으로 종교까지 초월한 모습을 보여 준 프란치스코 교황. 약자의 편에 서기를 고집하는 교황의 모습을 보며, 한 때 우리 역사 속에 스쳐 사라져 간 한국 천주교의 대조적인 두 주교, 유감스러운 친일파 뮈텔 주교와 정의의 사도 지학순 주교를 생각한다.

 

 

   
▲ 주세페 김동규

*** 김 동규 (예명_ 주세페 김 Giuseppe Kim)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소프라노 구미꼬 김(Gumico Kim)과 함께 팝페라그룹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duoaim.com   / 유튜브검색(듀오아임) www.youtube.com/duoa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