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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김의 음악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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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주교 뮈텔과 정의파 주교 지학순

누가 진정 우리를 위한 신의 사도인가?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어린이와 함께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방송으로 보면서, 나도 4~5살 때쯤 지학순 주교가 집전하던 대미사 중에 내가 뒷짐을 지고 제대 위에 올라와 여기저기 활보하는 바람에 다들 놀라 노심초사했다는 얘기가 생각 난다. 다행히도 지학순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아무 말 안 하셨기에 나는 제대 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그냥 내려왔다. 8월의 교황 방한의 여운을 간직하기 위해 요즘 나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로 시작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간단한 기도(Preghiera Semplice, 평화의 기도를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초연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성프란치스꼬는 13세기에 돈과 권력 속에서 타락하는 교회를 경계하며 청빈과 겸손을 실천한 참으로 위대한 성인이다. 내가 이 노래를 작곡을 한 때는 2002년 11월 말. 이태리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바로 전날 이태리 작곡가 친구 라파엘레와 함께 작곡한 이별기념곡이다. 이번에 방문한 교황의 이름도 프란치스코이기에 이번 공연에서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공연 관람객들과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구상하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준비하는 중에 지인 양승국 변호사

K-문화독립운동을 시작해 볼까?

이제 K-문화독립군이 돈키호테처럼 나설 때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오후 4시 경. 서울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남산도서관 버스정류장 앞에 이색적으로 가슴에 안중근의사의 유묵을 어깨띠로 두른 대학생들이 등장한다. 내 동지들이다. K-문화독립군 청소년들이 K-문화독립운동을 위하여 안중근의사기념관 상설문화공연을 안내하는 것이다. ▲ K-문화독립군으로 나선 청소년 로타렉트3650 학창 시절 내 별명 중에 하나가 돈키호테였었다. 친구들은 내 이름 김 동규를 변형하여 동큐호테=돈키호테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정말로 돈키호테가 된 느낌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기사도를 발휘하며 남산에자리 잡은안중근의사기념관을 돕기 위하여 한가지 좋은 일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내가 인연을 맺는 것은 지난 3월 26일 안의사 서거일에 내가 작곡하여 부부가 함께 부르는 안중근 의사의 옥중편지 아들아 아들아(Dear My Son)를 순국기념식에서 노래하면서이다. 그날 기념식에는 여러 방송들이 취재를 나왔고 우리 노래를 방송에 내보내겠다고 미리 저작권 허락을 구하는 전화까지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당일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 그만 무선마이크에 방해전파

가장 아픈 이별, 죽음

세월호 추모곡, 이별은 차마 못했네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시(詩)는 죽었다고 마음 아파하던 이상백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09년으로 기억된다. 이 시인과 우리 부부는 뭐가 그리 잘 통했었는지 음악을 통하여 세상에 해주고 싶은 얘기들을 아름다운 우리말 시로 만들고 노래의 날개를 달아보기로 하였다. 그중에 우리가 함께 만든 곡 하나가 추념곡이었다. 이태리에 있었을 때는 모든 장례식이 성당에서 이루어지기에 우리 부부는 레퀴엠(=진혼곡)을 비롯하여 장례미사에서 성가를 부른 적이 꽤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장례식장에서 들려주는 노래가 적절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가장 아픈 이별인 죽음에 대한 노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하는 천의 바람이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나는 이 시인에게 죽은 이가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추념곡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한달 쯤 지나 2010년 초, 도곡동에서 해지는 매봉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상백 시인이 전화로 방금 완성한 해후를 내게 읽어주었다. 울지 말아요. 언제나 그랬듯이 / 내 이름 불러봐요. 천천히 소리 내어그대들의 가슴속에 나 다시 살아 / 강을

11월의 크리스마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몇 년 전 11월 중순. 한국의 한 사교단체와 이태리 대사관이 서울 중심가의 한 대형 호텔에서 유럽의 각국 대사와 가족들 그리고 한국의 인사들을 초대하여 이태리를 알리는 문화의 밤 행사를 했는데 우리 부부는 거기에 공연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나와 아내는 음향 리허설을 위하여 3시간 일찍 도착하였는데 무대장치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설치에 분주한 틈을 이용하여 호텔 로비를 둘러보며 잠시 기다리는 시간을 가졌다. 계단이 많은 로비 한 가운데에는 놀랍게도 20 미터 높이는 족히 될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이미 장식되어 있었고, 각 나라의 산타클로스 인형들도 수백여 개가 양쪽 벽면을 메우며 전시되어 있었다. 마구간처럼 보이는 집의 지붕 위에는 대형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굴뚝 옆에 누워있었다. ▲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된 11월의 호텔에서 (팝페라부부 듀오아임) 11월 중순의 대한민국 서울 백화점과 호텔의 풍경이 이렇다. 11월에 크리스마스트리라니........ 이건 아직 아닌데 너무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다음 달이 12월 아기 예수가 오실 달이구나 하는 연말의 설렘도 잠시 생겼다. 대

로마 어학원의 추억

이태리어 배우다 얼굴 빨개진 여학생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실감 날 것이다. 특히 띠부르띠나(Tiburtina) 길은 로마에서 출발하여 유럽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로마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든 길이어서 북부 도시에서 쉽게 도로 표지판을 찾을 수 있다. 로마가 최초로 만든 큰 길은 로마에서 나폴리 근교까지 뻗어 있는 압삐아 가도(Via Appia)로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길들이 시작된 지점은 현재 로마의 중심부에 위치한 로마의 발생지이며 가장 많은 관광객이 지나가는 고대유적지인 포로 로마노(Foro Romano)이다. 로마는 기원전 공화정이라는 원로원 정치제도와 로마인으로서의 긍지가 대단했던 일등 시민들 덕분에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그 힘이 막강해졌고 로마제국은 전 유럽을 쉽게 다스릴 수 있었다. 길이 좋아서 로마는 서양 문명의 중심지가 되었고 식민지의 노예들도 쉽게 데려다 건축에 동원하였을 것이다. 티토 황제는 로마의 번영을 상징적으로 볼 수 있는 건축물로 콜로세움(원형경기장)을 만들었는데 유대인 노예들을 데려다 지었으며 노예들의 처형장이자 검투사들에게 경기를 시키고 놀음을 하던 경마장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