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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딱 두 줄짜리 절교편지를 받다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2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미스 K가 운전하는 그랜저는 최초 모델인 ‘각 그랜저’가 생산 중단되고 1992~1998년 사이에 생산된 ‘뉴 그랜저’였다. 소형차인 프라이드를 8년째 타는 K 교수가 그랜저를 타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승차감이 아주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 위를 미끄러져 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은 차보다 큰 차를 선호하는가보다 이해가 되었다. 자기가 타는 프라이드는 소달구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차를 바꿀 때는 좋은 차로 바꾸고 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날 정도였다. 차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액세서리도 요란했고 오디오도 아주 훌륭했다. 마침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봄이 경쾌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서 왼쪽으로 눈동자를 살짝 돌려 슬쩍슬쩍 훔쳐보는 미스 K의 옆 모습은 아름다웠다. “미인은 정면만이 아니라 옆 모습도 아름다운가 보다”라고 K 교수는 생각했다. 운전하는 미스 K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대화는 미스 K의 모교인 이화여대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미스 K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미스코리아 경연대회에 출전했는데, 당시 학칙상 미인대회에는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대회에 나가려면 퇴학을 감수해야 했단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규정이다. 학교 홍보 효과를 고려한다면 미스코리아에 당선되면 큰 상을 주어야 할 것인데 퇴학이라니.

 

그렇지만 미스 K가 미스코리아관을 썼던 1978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 있던 유신시대였다.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경찰이 길가는 청년을 파출소로 붙잡아가 장발이라고 강제로 머리를 깎았다. 젊은 여성을 붙잡고서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재던 그런 시절이었다. 어쨌든 당시에 미스 K는 고민 끝에 결국 퇴학을 선택하고 미인경연대회에 나갔는데, 그만 1등을 해버린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고 한다.

 

승용차에서 옆자리에 타는 사람의 의무는 운전자가 졸리지 않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미스 K의 퇴학 이야기가 끝난 후에 K 교수가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내가 사귄 두 번째 여자가 이화여대 학생이었답니다. 내가 3학년 봄에 그러니까 1970년 봄이었지요. 학교 축제의 마지막 날 쌍쌍파티에 데려갈 파트너가 없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친구에게 점심 사주면서 파트너를 하나 구해 달라고 했지요. 내 친구의 애인이 이화여대를 다녔는데, 같은 학과 여학생을 소개해 주었답니다. 쌍쌍파티에서 설레고 즐거운 시간을 잘 보냈는데, 그녀가 참 미인이었어요. 물론 은경 씨와 견줄 수는 없지만 당시 제 눈에는 미인이었어요. 우리 말에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축제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용기를 내어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지요. 그녀는 그냥 웃으면서 ‘다음에 인연 있으면 만나요’라고 말하더군요.

 

사실 그녀는 나의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홀딱 반했나 봐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용감하게 그녀의 학교로 편지를 썼지요. 학교 주소는 옛날에 있던 두꺼운 우편번호부 책에서 찾고, 학과와 학년 그리고 이름은 알고 있었지요. 용기를 내어 밤새 편지를 썼답니다. 축제에서 당신과 보냈던 즐거운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는 등, 뭐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그때 홍은동 달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편지를 받는 주소는 학교 주소를 적었어요. 그때에는 학교 교무처엔가 학과 별로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우편함이 따로 있었지요.

 

그런데 밤에 쓴 연애편지는 아침에 절대로 읽어보면 안 됩니다. 얼른 그냥 풀로 붙여서 보내야지요. 아침에 해님이 떴을 때 다시 편지를 읽어보면 정말로 유치하고 쑥스럽지요. 은경 씨는 아마 연애편지 써 본 경험이 없을 거예요. 미인이라서 남자에게서 연애편지를 많이 받기만 했을 것 같아요. 맞지요? 대답이 없으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할게요.

 

나는 편지를 보내고 나서 이제나 저네나 답장 오기를 기다렸지요. 두 주일 쯤 지나서 기적처럼 학교 우편함에서 답장 편지를 받았답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편지를 뜯어보니, 아 글쎄 그게 절교 편지였어요. 절교 편지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세요? 짧다는 것이에요. 그 편지는 딱 두 줄이었답니다. 인연이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앞으로 이런 편지를 학교로 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뭐, 그런 내용이었을 거예요. 참 씁쓸하더라고요. 한 번이라도 실연당한 사람은 그 느낌을 알 텐데요. 은경 씨는 실연 경험이 없을 거예요. 남자를 차는 처지지 남자에게 차이는 경우는 없었죠? 아마 그럴 거예요. 미인이니까.

 

그런데 얼마 후에 나하고 친한 동기생이 사귀던 여자와 싸우고서 헤어지기로 했는데, 자꾸 한 번 더 만나자고 여자가 치근거린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그래서 내가 도와 주었지요. 내가 받은 절교 편지를 보여주면서 그대로 베껴서 보내라고 했지요. 인연이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 편지가 효과가 있었나 봐요. 친구는 그녀와 성공적으로 헤어질 수가 있었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