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최경숙 기자] 대장경은 거란의 침략을 불력으로 물리치기 위해 현종 2년에 시작하여 76년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 ‘거란이 침입하자 현종 임금이 나주로 피신하였다가 개성으로 돌아오면서 청주행궁에서 연등회를 열고 대장경 목판을 새기기로 발원한 뒤 거란 군이 물러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비밀이 숨어있다고 하지요.
전쟁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백성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희망을 찾게 마련입니다. 전쟁으로 혼란스런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전쟁의 생채기를 치유하면서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국가재건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대장경에는 불교의 경전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상, 역사, 그림, 설화, 사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경판을 만들어낸 백성들의 땀과 정성, 얼과 혼이 담긴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대장경에는 온갖 위험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천년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중한 초조대장경은 아쉽게도 몽고의 침입으로 국내에 있던 것은 불타 사라졌습니다.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를 선언하고 해인사에 머물던 현대판 대각국사 의천으로 불리는 종림스님(72세) 머릿속에 초조대장경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꼭 있을 거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종림스님은 20여 년간 초조대장경의 흔적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일본, 중국을 뒤져 마침내 교토 남선사와 대마도 등지에 2,500여권의 인쇄본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년의 지혜를 모아 천년 뒤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했던 대장경이 신기하게도 천년이 흐른 뒤에 세상에 나타난 것입니다. 남선사(南禅寺, 교토시 소재)는 한 번도 학계에 보여주지 않았던 초조대장경 인경본을 꺼내 준 것이지요.
▲ 초조대장경 속에 있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판화 형식으로 그린 <어제비장전>. 팔만대장경에 없는 것으로 초조대장경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 일본 교또 남선사(南禅寺) 전경
종림스님이 설립하여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장경 연구소에서는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모으고 도쿄 남선사의 도움을 받아 초조대장경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전산화를 하고 있습니다.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지고 천년이 지난 뒤, 목판이 아닌 컴퓨터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아 누구나 볼 수 있는 대장경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고려대장경 연구소는 1993년 4월 해인사 팔만대장경 전산화와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대장경 전산화를 통해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대장경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천 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두루마리 복간본을 간행하면서 천년을 간다는 살아있는 종이를 비롯하여, 3년간 삭힌 풀로 만드는 제본 기술, 한지 염색 기술 등 사라져갈 위기에 처해 있던 전통방식을 그대로 되살려냈습니다. 복간본을 발행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조상의 얼과 혼이 담긴 전통 문화까지 되살려 내 천년 뒤까지 이어주려는 것이지요.
1996년 12월 세계 최초로 고려 재조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를 이루고, 2004~09년까지 초조대장경 전산화, 2012~16년까지 고려 교장(일명 속장경)의 전산화와 더불어 중국 돈황문헌 대조 연구사업 완료 등 불교경전 및 고문헌의 연구와 전산화를 통해 디지털 대장경 시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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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초대장경 복간본 일본 남선사에 전달 장면 |
▲ 남선사에 전해준 초초대장경 복간본
▲ 초초대장경 복간본 펼친 모습
대장경에 위험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천년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비밀을 남선사에서도 알고 있었을까요? 남선사에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대장경을 고려대장경 연구소에 처음으로 공개한 까닭은 대장경 속에 담긴 내용을 통해 인류가 평화롭게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12월 8일 천 년 전의 모습 그대로 복간된 초조대장경 두루마리 복간본을 남선사에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천 년 전의 숨결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천년 뒤의 미래로 전해지는 현장에서 저는 생각이 곧 미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천년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생각이 천 년 뒤에 나타나듯,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20년 뒤 누구나 볼 수 있게 전산화되어 세상에 나타나듯, 인류가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귀한 자료를 공개했다는 남선사 스님의 생각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천 년 전 만들어진 초조대장경 속에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희망이 숨겨져 있음을 새삼 느끼는 자리였습니다.
2014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새해 새 희망을 찾아 나서겠지요. 생각은 가장 확실한 미래입니다. 미래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내 머릿속에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희망은 내 생각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 남선사 스님들의 초초대장경 검수 장면